취약노동자 안전보건
2012.03.08 21:15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아파도 참고 일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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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10월호 기획특집


굳이 어떤 증거를 들이대지 않아도 소규모 사업장은 일반적으로 작업환경이 열악하다. 열악한 작업환경은 노동재해나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고, 실제 국내 산재보험통계에 따르면 재해율이 높은 순서가 5인 미만, 5인~9인, 10~29인 순이다. 사장이 곧 노동자이기도 한 1인 사업장은 산재보험 가입 여부가 본인 의지에 달렸고 영세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대개 자비로 ‘알아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한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안다고 해도 제도를 쉽게 이용할 정도로 산재보험제도가 그들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그리고 ‘사업주’와 ‘노동자’ 관계라기보다 ‘식구’라는 개념이 알아서 치료하거나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처리되는 때도 있다.

 

2005년 국정감사 당시 단병호 의원실은 근로복지공단에 화학물질 때문에 중독 또는 그 속발증 재해와 관련, 5인 이상 사업장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구분해 요양신청 자료를 요청한 결과에서 5인 미만 영세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실태를 보면 제도 접근성이 이들에게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화학물질 중독 또는 속발증 재해 요양신청 결과>               (단위 : 명)   
년도                     구분                    신청                승인                 불승인   
2003                 5인 이상                  69                    49                     20   
                        5인 미만                   3                      1                      2   
2004                 5인 이상                  67                    35                     32   
                        5인 미만                  11                     5                       6     
2005.7              5인 이상                  31                    18                     13   
                        5인 미만                   6                      1                       5 

 

20여명 규모의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고현호씨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15년을 일했고,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더 일할 텐데, 인쇄할 때 사용하는 여러 유기용제들로 내 몸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이런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규모가 큰 인쇄소는 특수건강검진을 받기도 하고, 의사들이 직접 와서 간단한 진료를 1년에 한두 번 정도 보기도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전무한 일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규모에 따라 노동자들이 접하는 건강권에는 이처럼 차이가 발생한다.
인쇄공정에서 옵셋을 담당하는 고현호씨는 벤졸같은 유기용제를 수시로 다루지만 이와 관련한 교육을 따로 받아본 적이 없다. 다만, 선임자로부터 “이 물질은 조심해라. 냄새는 없지만 눈에 들어가면 안 좋다.”는 말을 듣는 정도가 안전교육의 전부라고 한다. 또, 일하다 다쳤을 때 산재처리는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고현호씨 업무 중 종이를 쌓는 일도 많이 하는데,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간다. 전 회사에서 허리를 다쳤지만 ‘산재처리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산재신청을 안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후회가 된다고 전했다. 산재신청을 하면 일 하기 힘들어지는 것이 뻔했고,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아예 접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치료받을 것 하는 아쉬움이 후회로 남아 앞으로 행여나 다치는 일이 생기면 하겠다는 입장으로 변했다.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에는 비좁은 작업공간에 냄새도 심하고 먼지도 많아 그는 ‘작업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첫 번째로 꼽지만, 사업주가 관심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안전보건교육도 기회만 주어지면 하고 싶지만 이 역시 사업주가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쇄공장이니만큼 각 공정마다 사용하는 유기용제도 다양하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어떤 물질이 몸에 어떤 해를 끼치는지 당연히 관심이 많지만 MSDS를 비치한 사업장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들의 열악한 작업환경, 제공되지 않는 안전보건교육으로 노동자들이 재해에 노출되고 산재보험 접근이 어렵다는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노동부가 2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2005~2009)를 세우고 홍보할 당시 자료를 보자. 2004년 12월에 만들어진 책자 ‘앞으로 5년 산업재해예장 이렇게 하겠습니다’를 보면, 최근 5년간(1999~2003) 규모별 산업재해 분석에서 “300인 미만 중소 사업장에서 전체 재해의 87%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전체 재해의 68%가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또한 1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2000년~2004년) 기간 중 50인 미만 사업장 재해 비중이 꾸준히 높아졌다고 밝혔다.
 
<50인 미만 영세사업장 재해비중>   
                     1999       2000     2001     2002     2003   
재해비중        61.7%    64.4%   69.1%   71.2%   69.1%   


*노동부, 2004 

노동부는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을 비롯해 산업재해 취약부문 해소 정책으로 클린(CLEAN)사업을 실시하고 해마다 사업 예산을 늘려가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예산이 늘어난 만큼은 아니다. 실제 이들 계획이 정기적인 점검과 피드백 과정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2차 산업재해예방 계획은 여전히 클린사업장 조성, 재해 취약 사업장에 지도·지원 강화를 중심에 놓고 있지만 현장이 느끼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먼저 보완하지 않고서는 노동부 정책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감을 두는 제도로 남을 것이다.
눈을 돌려 역시 건강권이 취약한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들어보자.
직업병 문제로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이하 이주노동자모임) 상담소를 찾은 모기씨(몽골)는 우리나라에 온 지 2년 된 산업연수생이다. 사철공장에서 물량을 분리하고 전산포장도 하고, 원료 준비 등 여러 단계의 일을 하는 모기씨는 지난해에 허리를 다쳤다. 당시 25kg 정도의 물량을 매일 반복해서 적재하는 일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를 사장에게 알렸지만 4대 보험조차 가입이 안 된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2005년 11월, 결국 적십자 병원을 통해 무료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퇴원 3일 만에 허리 보호대를 하고 파스를 붙이고 바로 일을 해야 했다. 사장이 “일 안하려면 몽골로 가라, 몽골로 보내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사업주에게 얘기해도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말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잘릴까봐’ ‘월급이 깎일까봐’ 알아서 치료하거나 고통을 참고 일한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어소통이 쉽지 않아 건강에 이상이 와도 이를 제대로 알릴거나 소통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신청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난다. 모기씨 역시 이주노동자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안전보건 교육을 받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합법인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이든 불법으로 들어와서 일을 하든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보호장구 없이 일하고, 다쳤을 때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 선전에나 나올 법한 ‘착한 한국인 사장님’을 만나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등 노동안전보건 취약계층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대책이라는 것은 효과가 미미한 클린사업, 구속력 없는 이주노동자 대책, 노동자성 인정 없는 산재보험 적용 등 눈 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현실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제도 입안 과정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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