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투쟁 11. 화려한 경마 뒤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신음하는 마필관리노동자(2007)
화려한 경마 뒤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신음하는 마필관리노동자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 예방활동 시급해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조기홍 국장
일과건강, 2007년 2월호
마필관리 노동자? 일반 사람들에게는 마필관리사란 직업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나 역시 이번 실태조사를 하기 전에는 마필관리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경마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정도,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경주마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탄식이 공존하는 짜릿한 승부의 세계가 머릿속을 스쳐갈 뿐이었다. 경마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도 박진감 넘치고 멋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 속에 마필관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전국 산업재해발생 1위 사업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필관리사란 어떤 직업일까?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경마장에서 일하는 직업이 바로 마필관리사인 것이다. 경마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말을 생산하는 농가인 생산자가 있고, 생산된 경주마가 경주에 임할 수 있도록 유지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있다. 마필관리사란 조교사들의 지휘를 받아 경마장에서 사용하는 경주마를 관리하고 훈련을 보조하는 업무를 주로 하는 노동자로서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서울경마장을 비롯하여 제주 경마장과 부산경마장 등 전국에 약 1,300여명이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마필관리사의 산업재해는 전국 최고를 나타내며 산업재해 발생률은 약 15%(서울경마장의 경우)로 2006년 전국 산업재해 발생률 0.63%(2006년10월 현재)와 비교하여 무려 24배나 많이 발생하는 등 마필관리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었다. 경주마를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직업인 마필관리사 노동자들은 항상 말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해있다. 낙마뿐만 아니라 말에게 떠밀려 넘어지고 말발굽에 채이고, 미끄러지고 심지어는 말에게 물어뜯기기도 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마필관리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 예방활동은 그리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으로 많은 수의 마필관리노동자가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퇴행성 질환으로 취급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는 마필관리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을 낮추고 근골격계질환 발생위험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간공학 정밀조사를 실시하여 근골격계질환 발생요인 및 예방을 위한 대책마련과 이를 근거로 산재인정과 관련하여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고자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 백승렬 교수와 공동으로 실시하였다.
실태조사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경마장의 마필관리사 440명을 대상으로 한 근골격계질환증상 설문조사결과, 한 부위 이상 통증 호소자는 204명, 의학적 진단이 요구되는 정도의 기준 3(인천대학교 기준) 유소견자도 103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자동차관련 제조업(7~8%)에 비해 3~4배 높은 것으로 마필관리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이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서울과 제주경마장을 대상으로 마필관리사들의 대표적인 작업인 기승 조교는 말이 걷는 것부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까지 속도에 따라 평보, 속보, 구보, 습보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조교형태에 따라 대표적인 자세를 파악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작업자세가 신체부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평보를 제외한 나마지 자세 모두 허리에 미치는 부하량이 NIOSH(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안전허용 기준 3400N1)을 초과했다. 특히, 허리를 완전히 구부리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 안전에서 몸을 땐 채 질주하는 구보자세에서는 허리 부하량이 6211.6N으로 허용한계에 가까운 매우 위험한 자세로 평가되었다. (NIOSH 기준: 안전: 3400N 이하, 위험: 3400~6400N, 매우 위험: 6400N 이상)
또한 평균 심박수는 144.02BPM2), 분당 에너지 소비량은 8.14 Kcal/min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조립작업의 평균 심박수 85회보다 훨씬 높고 농구시합 또는 장작패기(8Kcal/min)와 비슷한 에너지 소비량으로 매우 격한 노동에 속한 것이다. 생체역학적 분석결과 허리는 일상적인 요추부의 사용빈도와 강도가 높고 피로의 누적이 높은 작업특성 탓에 퇴행성 변화가 조기에 발생할 수 있고 누적성 질환 발생 위험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목은 작업특성으로 인한 손목․팔꿈치 관련 누적성 근골격계질환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다리․발목은 작업특성상 무릎․발목 관련 퇴행성 변화가 조기에 발생할 수 있고 누적성 근골격계질환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화려한 이면 뒤에 마필관리노동자들은 심각한 사고 위험과 근골격계질환으로부터 고통 받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마필관리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였다.
- 작업시작 전 충분한 스트레칭 등 WARM-UP(준비운동) 과정 제공
- 매 기승 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일정기간의 휴식시간 제공
- 마필(악벽마, 신마)에 따른 세분화된 조교관리 개선
- 작업시 에너지 소비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식단관리
- 정규 휴식시간을 배치하여 충분한 회복기간 제공
- 물리치료실 제도개선으로 초기 증상자 관리방법 강화
이번 실태조사는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대상이 살아있는 동물(말)도 조사 대상이었기 때문에 측정 및 분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마필관리 업무의 특성상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작업을 하는 관계로 졸음과 새벽 찬바람을 맞아야했다. 그러나 경마장을 방문했을 때마다 느끼는 순수함 -순수하고 깨끗한 큰 눈망울의 말들과 가슴으로부터 말을 사랑하는 마필관리노동자의 모습- 에 이런 어려움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화려한 경마 뒤의 또 다른 노동자의 현실. 이러한 현실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마필관리 노동자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더 이상 직업으로 골병이 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