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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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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지난 10월 2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바로 “오토바이 퀵서비스 배송기사도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법원은 퀵서비스 배달업체 배송기사가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상해를 입은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지만 ‘업체가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제외 사업장’이라며 요양신청서를 반려한 사건에서 배송기사의 ‘근로자성’과 업체의 ‘상시근로자 1인 이상 사업장’ 해당여부를 인정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였다.

판결문에 나온 퀵서비스 배송기사의 근무 내용은 이렇다.
배송업체 운영자에게 배송 주문전화가 오면 운영자는 배송기사들에게 물품배송을 지시한 후 배송기사가 수령해 온 배송료 중에서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오토바이 택배영업을 해왔다. 배송내용은 전적으로 운영자가 결정했다. 운영자와 배송기사들은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복무규정 등을 작성한 바는 없어 배송기사들에게 정해진 제재수단은 없었지만 기사들이 운영자의 지시를 어긴 적은 거의 없다. 운영자는 배송기사 별로 사번을 부여, 배송횟수, 배송지, 배송료 등 배송 실적을 전산으로 집계해 놓았다가 1주일에 한 번씩 배송료 집계액 중에서 15%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배송기사들에게 지급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무실 운영이 어렵게 되자 운영자는 일을 주는 대가라는 의미의 ‘일비’를 출근 여부와 관계없이 주당 6만원을 내고 아울러 5천 원 이상의 배송 건에 건당 7백 원 상당의 쿠폰비를 중복해서 지급하게 하였다. 배송기사들이 사용한 오토바이는 모두 본인 소유이거나 자체 마련으로 유류비, 수리비 등 경비를 모두 본인 부담하였으며 점심식사도 자신들 돈으로 계산하였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본부 김창현 위원장은 판결문에 나온 퀵서비스 노동자의 근무 내용이 “현재 기사들이 일하는 형태 그대로”라며 “노조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판결이다.”라고 했다. 근로계약을 작성하거나 월급을 받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퀵서비스 배송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15년 째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김창현 위원장이 말하는 퀵서비스 업종은 정부조차 제대로 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인권위에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지만 다른 특수고용노동자 조사과정에 포함된 것이라 충분치 않다”며 보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내년에는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배송기사가) 100명 이상인 업체가 5% 정도이고 나머지 95%는 10명에서 20명 정도의 기사로 운영되는 영세업체”라며 “업종이 시작된 지 17년이고 종사자가 최소 13만에서 최대 17만 임에도 제도로 마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그가 이런 비판을 서슴지 않는 데는 제도로 마련된 것이 없다보니 ‘제도 미비’로 마련되는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조건을 보자. 
4대 보험 혜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에도 퀵서비스 노동자가 가져갈 수 있는 벌이는 150만원에도 못 미친다. 사고 위험성이 높지만 개인이 위험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하며 물품 배송을 주문 받을 때 주는 쿠폰비용이나 할인, 물건 배송에 문제가 생겨도 모두 노동자 몫이다. 사장들이 떠안아야 할 할 부분이 전가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계약서라는 것이 있지만 ‘노비문서’ 수준으로 계약서 자체에 ‘~하면’ 다 노동자가 책임지는 형태라고 말했다. 
건강문제 또한 심각하다. 겨울철에는 헬멧에 마스크를 착용해서 덜하지만 여름에는 도심 도로 매연에 그대로 노출된다. 김창현 위원장은 “퀵서비스 몇 년 하면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일반인보다 10배라는 보도가 공중파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며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을 먹자.”는 얘기를 동료들끼리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한 배송이 우선이다 보니 불규칙한 식사는 기본이고 각종 사고로 팔, 다리에 상처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배송 요금이 낮다보니 물품을 많이 배송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신호위반을 하고, 사고도 날 수밖에 없다.”는 김창현 위원장은 정상 요금을 받아 1:1 배송만 받아도 일부러 신호를 위반하거나 속도를 내 사고위험을 감수할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고 피력했다. 정상 요금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요금보다 30%는 올라야 한다.”고 답했다. 만원은 받아야 할 거리를 7~8천원에 배송하는데, 꾸준히 올라가는 물가나 유류비 반영이 전혀 안 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퀵서비스 노동조합은 정부에게 ▽표준요금제 실시 ▽적정 알선료 적용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적용 ▽이륜차 통행금지 구간 완화 ▽노동자 인정 등을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창현 위원장은 신고제로 영세화가 심각한 퀵서비스 업종을 허가제로 바꾸고 표준요금제를 실시하여 이를 어기는 업체는 경고나 폐업 등으로 엄하게 조처하면 지금보다 상황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전무한 상태인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퀵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알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김창현 위원장은 지금도 한손에 쥘 수 있는 리플릿을 들고 다닌다. 같은 처지에 있는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나면 나눠주는데, 앞면은 노동조합 소개와 요구사항이, 뒷면은 고속버스 탁송 노선 및 요금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설사,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더라도 고속버스 탁송 노선과 요금은 알고 있어야 해 많이들 보게 되어 있다.”며 1석2조의 효과를 보이는 리플릿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개별로 움직이는 특성과 오늘 못 벌면 안 되는 절박함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는 상황 때문에 조직화가 쉽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이 직업 초창기에 들어온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정당한 대가와 보다 나은 생활’을 주고 싶다며 노동조합 활동 이유를 밝혔다.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이제 퀵서비스가 ‘물류’의 한축을 담당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퀵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벌써 17만이면서 이와 관련된 법적, 사회적 제도가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명백한 정부의 책임방기이다. 배송기사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 밤에는 대리운전, 새벽에는 신문배달 등 두 가지 일을 하는 어떤 퀵서비스 노동자는 샤워하다 과로로 죽음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사회는 이들의 사고와 죽음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직도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나라에서 불안정하고 소외된 노동을 하는 이들은 성장을 위해서 얼마든지 희생해도 될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08년, 퀵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실행할 정부가 들어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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