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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이경진, 일과건강 2007년 3월호




전남대병원 노동자들은 왜 자살을 해야만 했나?


지난 06년 4월, 전남대병원(화순)에서 일하던 故김남희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故김남희 간호사는 책임간호사로서 15년차 전남대병원에서 일해오던 이른바 베테랑 간호사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저 ‘개인의 우울증, 개인 사생활에 의한 스트레스’가 자살의 주요원인이라 치부되었을 사건이었지만, 故김남희 간호사의 자살은 달랐다. 사건직후 동료간호사들에 의해서 자살 전에 가해졌던 폭언과 모욕이 적극적으로 증언되었고,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수술장 간호사들의 파업이 진행되면서 언론을 통해 자살의 이유가 널리 알려졌다.

더불어 故김남희 간호사의 자살 이전인 05년 11월에 같은 수술장에서 일하던 故전지영 간호사의 자살(화순), 06년 4월초에 시설과에서 관리자로 일했던 故신O준 과장(광주)의 자살사건이 밝혀지면서 병원노동자들의 죽음이 ‘개인적 요인에 의한 자살’이 아닌 전남대병원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음이 드러났다.


병원은 3명의 자살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모두가 ‘개인적인 요인에 의한 자살’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면서 유가족에게 사과는 커녕 사건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어떠한 대책도 내어놓지 않았다. 한술 더 떠 병원의 노무관리시스템은 별문제가 없고, 되레 ‘본인들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라며 자살의 이유를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인들에게 바친 향내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 한명의 병원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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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뉴스





06년 8월, 휴직 중에 자살한 故노병간씨는 중앙공급실 소독담당 기사로 25년간 성실히 전남대병원에서 일해 온 노동자였는데 05년 일하던 도중 무릎을 다쳐 산재를 신청한 후 불행이 찾아왔다. 병원측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며 산재치료중인 고인에게 조기 업무복귀를 요구하였고 일방적으로 린넨실(세탁물실)로 업무부서를 변경하였다. 완치가 안 된 상태에서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린넨실에서 고인은 무릎 통증이 더 심해졌고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적응장애까지 겪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 측 탄압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병원 치료 중에도 계속해서 고인에게 퇴직을 종용하였고,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로 내몰린 故노병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매번 책임을 회피하며, 자살을 ‘개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남대병원의 입장은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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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의 거센 투쟁으로 산재인정!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은 ‘자살 사건은 직장내 경직된 문화와 폐쇄적인 업무환경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병원은 늘 “근로복지공단의 사실관계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며 고인의 죽음에는 어떠한 해명, 책임소지 조사와 책임자 처벌,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격분한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 촉구와 함께 전남대병원을 상대로 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故김남희 간호사의 유가족은 사건 발생이후 노동조합과 함께 병원 앞 천막농성을 진행하였고, 장례식이후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을 인정하라는 1인 시위를 진행하였다.
故전지영 간호사의 유가족들도 역시 故김남희 간호사의 자살이후에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죽음이 아닌 병원의 노동통제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 깨닫고 06년 6월 19일 산재신청과 함께 공단 1인 시위를 7월 16일 산재승인이 날 때까지 전개하였다.
 
故노병간 조합원의 유가족들은 고인의 자살이 개인적인 죽음이 아닌 전남대병원의 폭력이고 불법적인 노동통제(조기복귀 압력, 일방적인 부서이동, 휴직․ 퇴직종용)와 그로인한 스트레스에 있음을 밝히고자 근로복지공단에 07년 1월 2일 산재신청서를 제출하고 매서운 동장군의 칼바람에도 매일 같이 유가족 1인 시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병원 측은 산재신청서의 사업주 날인을 거부하며 시종일관 책임을 회피하였다. 이에 격분한 유가족은 두 차례 전대병원 로비를 점거하고 근로복지공단 1인 시위와 함께 전남대병원 현관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병원을 위해 25년간 성실하게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고 결국 병원 밖으로, 죽음으로 내몬 전남대병원의 파렴치한 행각들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산재보상보험법 ‘제32조’와 전남대병원의 ‘직원 정신안전보건 관리대책’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시행규칙 제32조항을 들어 결국 故전지영, 故신O준, 故노병간씨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여전히 불합리한 요건들이 존재한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자살 및 시도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입증하거나, 업무상재해로 요양 중에 자살(시도)했을 경우’에만 산재로 인정해 왔다. 즉 ‘정신과 치료’ 병력이 없는 자살은 불인정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화순 전남대병원의 같은 부서에서, 동일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을 한 故전지영 간호사(정신과 치료병력 있음, 인정)와 故김남희 간호사(정신과 치료병력 없음. 불인정)의 산재판정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이 객관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정신과 병력’에만 의존하고, 업무관련성 입증을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故노병간씨의 자살에서 ‘정신과 치료’병력을 입증하지 못했더라면 병원 측이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업무상 자살의 입증책임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업무상 재해 불인정을 받은 故김남희 간호사의 유가족은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전남대병원 노동자들의 자살에 대한 산재인정은 객관적이고 명백한 정황, 증거가 있는 가운데 병원 측의 노동자 살인행각을 밝힌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살행진을 막는 근본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부랴부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대비해서 자살방지 대책으로 ‘직원 정신안전보건 관리대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살의 근본원인인 폭력적인 노무관리제시스템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의사의 진단에 의해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 한다는 것은 병원 측의 노동통제와 재해노동자 관리가 더욱 강화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병원노동자들은 더 많은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전남대병원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이 남긴 것들

① 산재인정과 보상에 국한된 노동안전보건 투쟁의 현주소
첫 자살사건인 故전지영 간호사의 죽음에 대응하지 못하고 사업주 논리에 휘말려 개인적인 죽음으로 묻혔던 과거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만약 노동조합이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故전지영 간호사의 죽음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전남대병원에서 故김남희, 故신O준, 故노병간 등 고인들이 자살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현장에서 사측의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 강화, 그리고 ‘인격을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의 박탈’에  일상적인 대응을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런 경향은 안타깝게도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남대병원 노동자들의 자살사건은 사측의 생산성 논리에 휘말려 임금협상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전개했을 때 각 현장에서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이다. 그 결과,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관심과 일상 활동이 미비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산재인정과 보상에 국한된 투쟁에 모든 것을 한계 짓는 과오를 범하며 현장개선을 위한 어떤 발자국도 남기지 못했다.

② 지역 연대투쟁의 기풍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동안전보건 운동 
일련의 사건들이 전남대병원 노동자의 일이지만, 이는 단순히 개별 사업장, 개별 노동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노동강도 강화와 직무스트레스 증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모든 사업장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며, 모든 노동자가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동자가 연대하여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그 중심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할 민주노총은 적극적인 대응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단지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의 일상적인 업무(중에서도 산재인정과 보상에 국한)로 치부된 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강고한 투쟁을 벌이는 민주노총은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핵심사업의 기제로, 노동자들의 지역연대투쟁을 강화하고 복원했어야 했다. 광주노동보건연대 역시, 이 비판과 반성에 자유로울 순 없다. 광주전남지역의 유일한 노동보건운동단체로서 발 빠르게 사건에 대응하며 지역적 연대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하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인격을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보건의료노조와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함께 실시한 전남대병원 노동자 직무스트레스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자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전남대병원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심화된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병원의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폐쇄적인 병원구조, 수직적인 상하관계, 전근대적이고 도제적인 수련구조 속에서 고통을 스스로 참고 견디는 방식만을 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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