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이지 마라!
한국지엠 정비 노동자 분신사건과 일련의 자살 사건에 대해 고함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한국지엠지부의 정비부품지회 조합원이 분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직 위중하다. 같은 날 밤 이번에는 천안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또 자결했다. 게다가 10월에는 이 사건 말고도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가 또 한 사람 자살했다. 지난 1년 6개월 사이 3명의 기관자사 자살한 사업장이다. 잔인한 10월인 것인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노동자 자살 및 분신은 업무관련 정신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 자살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좁은 지하터널을 오롯이 혼자 운전해야 하는 불통의 시간, 러시아워 시간대에 1~2천명의 승객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과 고충, 출입문 사고라도,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강력한 인사조치가 기다리고 있는 승무사무소.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차별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2003년 자살을 보고로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은 이제 아주 익숙한 소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달라진 현장의 그 무엇도 없다. 기관사를 자살로 내몰면서 책임지는 자도 없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는 또 어떠한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눈에 밟히는 어린 자녀와 사랑하는 배우자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을 만든 곳은 바로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삼성이다. 삼성이 노조탄압과 직업병 제조사라는 익숙한 악명은 알려져 있지만 이젠 자살 노동자 양산소가 되어 가려는 모양이다. 위장도급에 인권유린, 폭력적 노무관리와 노조탄압까지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고용작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이다. 얼마나 노동자를 더 죽이고 싶은 것인가? 비수기에 조합원들의 물량을 빼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고 감시 감독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노동자를 죽이기 위해 고용한 것인지, 노동력을 사기 위해 고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관리방식이다. 삼성의 최고 경영자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도대체 한 것이라고는 노동자 죽이기, 노조 탄압하기, 노동시장 왜곡하기, 불법증여를 통한 세금 회피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만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높은 수익률을 나타내고 존경까지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되지는 않겠는가?

한국지엠의 사태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산업재해 처리 해달라는 요구에 관리자는 “우울증은 산재로 간주하기 어렵다”, “개인질환이기 때문에 산재처리해 줄 수 없다”며 개인 신병휴직을 요구했다한다. 노동자가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매년 20명 내외, 우울증으로만 매년 5명 내외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이미 인정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무지의 소치로 몰랐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산업재해 신청을 막을 권리는 없지 않은가?

최근 일련의 자살과 분신은 우리나라의 사업장 문화와 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굴지의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가 이 지경이라면 압도적으로 많은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는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한국은 지난 8년 동안 자살률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런 문제를 자랑스러워하듯이 행정당국은 결코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고 있다. 자살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난다고 한다. 문제는 분노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노의 폭발력이나 그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한국사회는 이렇게 노동자의 분노를 키우며 불안한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4대악 추방 슬로건이 이런 구조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가?

이제라도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3명의 기관사 직무상 자살과 관련하여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 더 이상의 불명예를 안고 싶지 않다면. 삼성전자서비스는 한국 사회를 퇴행시키는 구시대적 작태를 버리고 굴지의 대기업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지엠은 초국적 기업으로서 한국 내에서의 지위를 손상 받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경영을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노동자의 내면화된 분노가 자결로 나타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순간 이 분노의 방향은 다른 곳을 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5일
일과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