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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노동사목회 산재사목 장영순

일과건강 2006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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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녹색병원에 정밀검진을 오신 분들을 만난다.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유난히 최 할아버지(77세)는 마음이 가는 분이다. 처음 녹색병원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최 선생님은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머리는 다 벗겨지고 등은 굽어있고 오랜 세월 참으로 고생한 흔적들이 보이는 듯 했다. 몇 주 후 최 선생님 댁을 방문했는데 그분은 집을 정리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빌라 지하에 살고 계셨지만 집은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최 선생님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광산생활을 10여년 하셨다. 그 당시(1960년)는 일거리도 없었고 선생님이 막 결혼한 신혼이었기에 일자리가 필요해서 선택한 직장이 광산이었다.


비교적 남들에 비해 짧은 광산 생활이었지만 그 때문에 얻은 진폐는 그분을 평생토록 괴롭히는 병이되었다. 그분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참으로 안타까웠다. 몸이 아프고 숨이 차고 괴로워도 당신이 진폐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진폐 정밀 검진이라는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폐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이 병이 진폐의 합병증으로 요양이 된다는 사실도 모르셨다. 아무도 그분에게 진폐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그저 숨 쉬는게 힘이 드니 가까운 동네 의원만 다녔고 동네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 드셨다. 그러던 중 10년 전 우연히 동네 의원에서 “혹시 광산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렇다.”고 이야기 했더니 의사는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노동부에 진폐 정밀검진을 신청해 주라고 지시를 했지만 직원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폐결핵이기에 인천에 큰 병원으로 갔더니 두 달간 독방에 가두어놓고 무조건 링겔과 노란색 약만 주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임종을 준비하라고 해서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장례까지 준비했다. 그 상황에서 최 선생님은 살아야 한다고, 투병하는 중에 친구가 공주 결핵 요양원을 소개해줘 6개월간을 공주요양원에서 보냈다. 몇 개월간 독한 결핵약을 복용하니 몸무게는 39Kg까지 줄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곧 죽을 것 같았다. 매일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에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휠체어에 의지해서 병원 복도에서 걷는 연습을 하셨다. 6개월 후 퇴원해서 국립의료원에 갔더니 의사로부터 그동안 복용한 약을 보고 이렇게 독한 약을 여태 복용했냐며 당장 끊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독한 결핵약 때문에 머리는 다 빠지고 몸은 형편없이 말랐고 위도 다 버렸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을 본인이 진폐라는 사실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낭비하면서

지내셨다. 그러던 중 이제 마음으로 죽을 준비를 하고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당신 몸 상태를 설명했더니 진폐임을 알고 10년 만에 녹색병원 산업의학과에 제대로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10년 전 그 원무과 직원이 제대로만 일을 해 주었더라면 이분은 요양 승인을 받아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노동부가 진폐를 제대로 홍보만이라도 했으면 이분이 10년간 죽을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시간을 잘 이용하고 계셨다.


우리가 가서 잠깐 방을 둘러보니 문갑위에 스탠드가 놓여있고 한문과 한글로 된 논어 책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는데, 논어 필사본이 놓여있었다. 환자가 그것도 호흡이 불편한 진폐환자가 일반 사람들도 쓰기 힘든 논어를 필사하고 계신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깨알 같은 한문은 일일이 옥편에서 찾아서 토를 달아놓고 한글은 너무나 힘이 넘친 글씨체로 가지런히 쓰여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분은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하고 한글도 모르는 분이셨는데 병이 깊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7년 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더불어 한문까지 배우셨던 것이다. 그것도 혼자 산책 나갔다 만난 친구를 통해서 한글도, 한문도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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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환자들은 친구가 없다. 이분들은 기침을 많이 하기에 동네 경로당에 가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기에 담배 연기가 싫어서 안가고 가서, 기침하면 사람들이 폐병환자라고 해서 가까이 하기를 꺼려해 스스로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다보면 우울증도 오는데 이분은 몸 상태가 안 좋은데도 남는 시간을 죽음을 준비하며 글을 필사하는 동안 당신의 마음을 다스린 듯싶었다. 그렇게 쓰신 논어 필사본이 5권의 노트가 되었다. 노트를 보면서 더 놀라웠던 것은 졸면서 쓴 흔적이 없고 줄이 틀린 것이 없었다. 나도 가끔 성서를 필사 하지만 쓰다보면 피곤해서 졸거나 줄을 빼놓고 쓰고 2장 넘겨쓰기도 하는데 실수한 곳 없이 쓴 것을 보면 이분이 보통 이상의 집중력이 있음도 보게 되었다. 당신은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끄러워 하셨지만 자신의 삶을 의미있고 품위있게 만드신 것을 보니 저절로 존경심이 나왔다. 좁은 방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글씨 연습 하는 동안 그분은 진흙 속에 묻힌 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분과 이야기 할 때 그분의 눈을 보면 참으로 맑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논어를 통해 글씨 연습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다보니 저절로 눈동자가 맑아지고 이름없는 수도자가 되었나 보다. 그분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다보면 강의를 듣는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정부의 무관심이 많은 산업전사들을 방치했지만 그래도 고달프고 힘든 자신의 삶에 꽃을 피우는 것은 자신의 몫인 듯싶었다. 아직도 정부의 무관심에 방치된 진폐환자분들이 제대로 된 정밀검진을 받을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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