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오마이뉴스 블로거 강태선 안전보건칼럼니스트의 글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강태선 칼럼니스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지난 8월13일 국립현대미술관 신축현장 화재 원인조사 보도를 접하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 사건이 하루 빨리 잊어지기를 바라는 관계 당국,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언론을 통해서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교훈을 삼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의 안전시스템은 그 모양일지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사이버 인프라로 사회 곳곳에 흩어진 관련 지식과 경험을 풀어 볼 법도 한데 이런 뉴스에는 모두들 침묵이다. 그 많은 안전 뉴스와 안전 전문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안전캠페인 기사’만 대문짝만하게 내면 안전신문이고, 전문가들은 기업에서 수수료만 잘 받으면 그걸로 족한 것일까? 울림 없는 메아리일망정, 관련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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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8월13일 발생한 국립현대미술관 신축공사현장 화재현장 

 ⓒ오마이뉴스 엄지뉴스



사고와 가장 가까운 관계당국은 고용노동부

언론에서는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방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당국은 14일 KBS 보도에서도 다루었듯 ‘고용노동부’이다. 이 사건의 원인조사와 관련해서는 화재라고 말하기 보다는 산업재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관계 당국을 그 긴밀도와 따져 나열하자면 고용노동부, 서울시소방본부, 경찰청 정도가 될 것이다. 신축 중인 현장으로 소방 설비가 들어가지도 않았으므로 더욱 그렇다. 경찰은 사고의 원인이 방화가 아니었는지를 조사하고, 과실이라면 누구에게 업무상과실이 있는 지를 판단한다. 

고용노동부는 시공사를 비롯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였는지 수사한다. 4명의 근로자가 사망했으므로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조사로 사건에 접근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는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기술적 지원을 한다. 일반인들은 행정안전부 소속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나 소방당국의 화재조사가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시 중요한 작업변수인 산업재해의 속성상 그 한계가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가 훨씬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대형재해에 일사분란하게 조사범위를 조정하는 중앙기구가 있어야 한다. 각 정부 기관별로 전문성이 다르고 또 업무범위에 따라서 밝히고 싶지 않은 사고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한꺼번에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낱낱이 보고할 수 있는 위원회 정도의 정부기구가 필요하다. 미국 화학사고조사위원회(CSB)가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관할 검찰지청에서 경찰(특수사법경찰 포함)에 수사지휘를 하여 송치서류 형태로 사고원인을 비롯한 모든 결과를 검찰에 넘기고, 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끝이다. 

문제는 보통 공안검사가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적 소양이 부족한 검사 한 사람이 과연 매우 복잡한 사고원인과 관련된 판단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문스럽다. 더욱 큰 문제는, 모든 관점에서 제대로 조사된 사건기록은 아닐지라도 가장 종합적인 자료인 ‘송치서류’가 결국 재판이 끝나면 법원기록물로만 고이 잠자게 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사건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는 물론 보관하지도 않는다. 언론이 무지한 이유이고 계속 같은 대형재해가 반복되어도 우리 사회엔 늘 새로운 것이 되는 매카니즘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묻고 따져야 한다

오해의 용어, 안전관리자
보도에서는 경찰이 안전관리자 4명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관리자’란 말에 현혹(?)되어 경찰관들은 업무상과실로 이들을 처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사실 안전관리자란 표현은 문제가 있는 용어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5조의 안전관리자는 그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현장소장에게 관련된 조언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조언자’ 정도가 마땅하다. 

권한이 없는 자가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 업무상과실로 본다면 안전보건관리총괄책임자 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더 적절한 책임의 주체이다. 경찰당국이 참고하기를 바란다. 

1억원 대 92억원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이행 당사자는 사업주이다. 보도를 통해 보면, 국립현대미술관 사건의 사업주는 일단 화재를 발생시킨 관련 작업을 맡은 전문건설업체와 시공주관사인 GS건설(주)을 들 수 있다. 만약 화재 원인과 관련하여 전문건설업체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밝혀지고 해당 작업이 원청 시공사의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른 의무가 부여되는 장소라면 GS건설(주)도 처벌된다. 이 공사의 주관 시공사 GS건설(주)은 그간 몇 차례 노동자 사망재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이번엔 산업안전보건법 제9조와 제29조가 변경되었기 때문에 처벌을 피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꼭 피할 필요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이천 물류센터 신축현장 붕괴사고(9명 사망) 이후 5년 만에 나온 최종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사고 현장의 원청사였던 GS건설은 고작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세계적인 건설사 시공현장에서 9명이나 사람이 죽었는데 법인에 가해지는 벌금이 700만원이라니!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 ① 같은 장소에서 행하여지는 사업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의 사업주는 그가 사용하는 근로자와 그의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 생기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개정 2010.6.4, 2011.7.25>

1. 사업의 일부를 분리하여 도급을 주어 하는 사업
2. 사업이 전문분야의 공사로 이루어져 시행되는 경우 각 전문분야에 대한 공사의 전부를 도급을 주어 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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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미국산업안전보건청의 벌금 순위 10대 업체, 2008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백서 

 : 2008 OSHA FACT BOOK 


이쯤에서 우리는 1995년 9월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삼성중공업의 괌 지부 격이었던 Samsung Guam, Inc에 부과한 총 8,260,000 달러의 벌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OSHA는 괌 국제공항(Antonio B. Won Pat International Airport) 공사현장에서 1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여 총 118건의 위반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따른 벌금으로 약 8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92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참고로 OSHA가 부과한 역대 최고의 벌금형은 2009년 BP에 부과한 81,340,000 달러였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이 법인에 부과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은 1억원이다. 

관리비 2%로 책임에서 자유로운 발주자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주자는 공사비의 약 2% 이하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지급하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 발주자는 오로지 건축물 품질과 가격만 신경 쓰면 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국립현대미술관은 비교적 글로벌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 CM사(건설사업관리자)가 관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CM이란 기존 감리와는 달리 건설공사에 관한 기획 · 타당성조사 · 분석 · 설계 · 조달 · 계약 · 시공관리 · 감리 · 평가 · 사후관리 등에 관한 관리업무를 발주자를 대신하여 전부 또는 일부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한 현장이 왜 한 두 명도 아니고 29명이나 사상당하는 대형 산업재해의 현장이 되었을까? 

추측컨대 CM에 의한 관리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CM사인지 그리고 전근대적인 우리나라 기존 시스템이 얼마나 새로운 시스템과 불협화음을 겪었는지 등이 관건이 아닌가 한다. 건설경영시스템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잘 연구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결국 안전은 시시콜콜한 안전지식이 아니라 경영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영국은 산업안전과 관련하여 건설 발주자를 처벌하는 법이 있어 산업안전보건에도 전문성이 검증된 CM사가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 

용접, 우레탄 뿜칠, 페인트 신너 

기술적인 문제는 사실 위에 언급한 조사 방안과 책임 문제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경영관리 부실이 문제의 근본원인이 되고 구체적인 사고는 현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끊는 형태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재가 아니라면 붕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대기업 시공사의 건설현장이라도 화학물질 안전보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매우 부족하다. 화재나 폭발 그리고 중독이나 직업병이 대기업 시공의 건설현장에서 앞으로 더 발생할 수 있다. 

용접작업이 있었다면 시공사에게 책임이 있고 용접작업이 없었다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접 이외에도 건설현장에서 그것도 지하공간과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레탄이 뿜칠 된 벽체에 직접 불이 붙기 위해서는 용접과 같은 고열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벽이나 바닥에 신너를 쓰는 페인트 작업이 있었고 환기가 불충분한 상태였다면 인화성물질 증기에 의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고열이 뿜칠 된 우레탄에 점화되었을 수도 있다. 화재 발생 원인을 찾지 못하더라도 화재 발생에 대비한 긴급 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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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뿜칠용 폴리우레탄은 이소시아네이트류인 MDI(A액)와 Polyol계 화합물(B액)을 발열반응시켜    얻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 중 기계설비작업안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건설현장에서 폴리우레탄은 내화피복제로 철골이나 벽체에 스프레이로 분사한다. 현장에서도 액상원료[(diisocyanate : A액)과 (polyol : B액)]를 혼합시키면서 내화피복이 필요한 지점에 분사하면 점도가 있는 발포체인 폴리우레탄이 만들어진다. 두 물질의 반응은 발열반응으로 약 200도씨 정도로 온도가 오른다. 

하지만 A액과 B액 그리고 반응생성물인 폴리우레탄은 인화성물질은 아니다. 따라서 우레탄 뿜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화재 위험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페인트 신너와 같은 인화성물질 증기가 같은 공간에 있다면 발열반응으로 발생한 온도가 위험요인이 될 수는 있다. 

이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사건에 대한 단상을 두서없이 나열하여 보았다. 부디 이 부족한 글을 많은 뜻있는 이들의 좋은 정보와 훌륭한 댓글로 보강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이러한 재해를 예방하는데 교훈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 글은 일과건강 편집방향에 맞게 맞추었습니다. 원문은 ‘강태선의「살림」살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태선의「살림」살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