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재해 중 사망자 가장 많아 … 노동부, 현장 산재예방 지도·감독 시급
2012년 8월 7일 매일노동뉴스 제정남 기자의 기사 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매일노동뉴스에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 여름철 야외근무 중인 철도노동자가 휴식실이 없어 철도 옆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건설노조) |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폭염 속 산업재해 발생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하루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6월1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열사병 등으로 인한 폭염피해자는 사망자 6명을 포함해 366명이나 된다. 실외 사망자(305명)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고 발생장소를 살펴보면 실외작업장이 96명으로 가장 많았고, 논·밭이 55명, 길 위 54명으로 집계됐다. 사고는 주로 정오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집중(209명)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전국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집된 사례만 취합하고 있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염 관련 피해자 통계를 정확히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상재해 중 가장 위험한 '폭염'
최근 국립기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01년에서 200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태풍·대설·폭염 등 기상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유발한 재해는 폭염이었다. 실제 미국 예일대 산림환경대학원 손지영 박사팀이 올해 4월 국제학술지 '환경보건전망'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폭염이 사흘 이상 지속되면 이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13.5%까지 늘어났다. 연구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대도시 7곳의 매년 여름철 기온과 사망자 증가율 간 상관관계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07년 발표한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적응대책' 보고서에도 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동안 일사병 등 무더위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서울 등 4대 도시에서만 2천131명이나 됐다.
산업현장 무더위 대책, 권장은 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재해 발생은 특히 산업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폭염으로 인한 산재를 예방하고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폭염 대비 사업장 행동요령'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노동부는 6월에도 "폭염 상황에서 장시간 야외활동을 하면 일사병·열경련 등 직접적인 건강장해를 입게 된다"며 "6~9월 중 각종 사업장을 지도·감독할 때 폭염에 취약한 고열작업장과 옥외사업장 등은 행정지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어 "노동자에 대한 적정 휴식이 이뤄지는지 유무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며 "건설현장처럼 옥외사업장은 폭염특보가 발령될 경우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쉴 수 있게 하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운영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노동부의 행동요령은 '권장' 사항이지 '의무' 사항은 아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달 1일 폭염 속에서 일용노동을 하다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한 20대 청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 보수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강아무개(28)씨는 사고 당일 보도블록 교체작업을 하다 쓰러졌다. 정오께 동료들이 쓰러진 강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경찰이 사인 조사를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사망원인은 열사병이었다. 이날 청주는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었다.
기온이 오르면 건설현장뿐 아니라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조선소와 건설현장에서 철골을 다루는 경우 한여름이 되면 살이 데이기 직전까지 철골이 달궈진다. 보호장비를 착용한 탓에 통풍 등 땀 배출도 잘 안 된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고공 70미터 이상 상공에 있는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최근 건설노조를 중심으로 에어컨 설치 등을 강력히 주장해 일부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뙤약볕 아래에서 사다리를 타고 크레인에 오르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도로포장을 하는 건설현장의 작업환경은 더 열악하다. 재료로 사용되는 아스팔트의 온도는 140도 이상이다. 건설기계노동자와 도로를 다지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아스팔트의 고열을 그대로 받으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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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기온이 해마다 높아져, 무더위에 따른 적절한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www.a2gov.org |
산재인정 과정도 노동자에게 불리
폭염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가 발생하면 재해자의 안타까움은 산재인정 과정에서 더해진다. 최근 근무 중 무더위로 쓰러지거나 피해를 입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장하고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원 판결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고 법원까지 가는 과정은 재해자와 가족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달 2일 서울행정법원은 냉방장치가 없는 작업장에서 근무 중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사망자는 냉방장치 없이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작업을 하다 사망했다"며 "무더위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회사가 수시로 충분한 수분과 휴식을 취할 수 없게 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의무를 게을리 한 점 등을 고려해 회사 책임을 70%로 정한다"고 판결했다. 관리자의 지시 없는 행동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장 노동자의 현실임을 감안하면 재판부가 지적한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의무'는 하나 마나 한 얘기다.
법원의 보수적인 판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미화하는 사회분위기도 한몫한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여름철이 되면 용광로 작업 등 '이열치열 산업현장'을 언론들이 앞서 보도하며 미화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안전문제가 제기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무더위 속 재해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일정 온도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005년 소방대책의 일환으로 무더위시 옥외작업 금지를 골자로 한 법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법안은 작업금지시 임금보전에 대한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무더위 맞서지 말아야" … 현장 관리·감독 필수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폭염시 작업을 중지하고 거기에 대한 임금을 보전하는 외국의 사례가 있다"며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종국 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극심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휴게소와 휴식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준수하는 현장은 거의 없다"며 "노동부가 폭염 대비 행동요령을 발표한 만큼 그 내용이 산업현장에서 안착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팀장은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세우더라도 강제력을 갖지 않으면 사업자들이 스스로 경제활동을 중단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팀장은 "확실한 것은 '무더위에 맞서자'거나 '무더위를 이겨 내자'와 같은 불량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무더위에 따른 적절한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제정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