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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직업성 암 산업재해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문길주 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이 일하다 암에 걸려 죽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와 가족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 신동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습니까. 20년을 일하다 죽었는데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줘야죠. 근로복지공단이 이름은 근로자편이라면서 이제와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 끌기나 하고…”

전말련씨의 남편 故(고) 나규철씨는 조선소에서 20년 동안 도장 일을 했다. 그리고 지난 해 5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 11월 사망했다. 지난 해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접수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아직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 뿐이다. 역학조사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나규철씨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업체에서 협조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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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직업성 암 산업재해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죽은 한 노동자의 부인이 직업성 암환자 산업재해 인정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경 의원(민주당)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 신동준




“남편은 20년 동안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했어요. 마지막으로 일한 곳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고요. 그런데 역학조사 담당하는 곳에서 회사가 문을 안 열어 준다면서 다른 데는 다 끝났는데 거기 조사를 못해서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미뤄온 것이 벌써 몇 달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전 씨는 “산재 접수하는데 그냥 일만 하던 사람이 뭘 알겠어요. 그런데 그 어려운 서류를 우리가 다 준비해야해요. 그거 어렵게 해서 냈는데 또 미루고 있으니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근로복지공단 가서 물어봤더니 꼭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더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하다 암에 걸렸다는데 어떤 회사에서 협조를 해주겠냐. 그런데 근로복지공단법이 그러면 회사가 협조 안하고 시간 끌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몇 십 년이라도 기다리라는 거냐. 우리나라에 조선소,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 최소한 일하다 병들고 죽었으면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 근로복지공단에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금속노조는 지난 해 7월부터 35명 노동자의 직업성 암 산재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접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6명만 판정을 받았고 나규철씨를 포함 29명은 여전히 역학조사 등이 진행 중이다. 이 중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은 단 2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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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직업성 암 산업재해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시욱 노조 부위원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 신동준





근로복지공단은 시간끌기 일쑤고 회사는 산재 관련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현재는 직업성 암에 대한 입증 책임이 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자료 준비부터 근무 환경의 위험성에 대한 증거 제시까지 모두 피해자들의 몫이다.

전 씨와 마찬가지로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와 가족들은 치료 외에도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 노동자와 가족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산재 판정 절차의 부당함을 토로하며 제도 개선과 조속한 산재 인정을 촉구했다.

인천 모 회사 도금부서에서 3년 동안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다 최근 사망한 故 박성철씨의 누나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렇게 냄새나고 환경 안좋은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면 못하게 말렸을거예요. 산재 인정이라도 받아야 할텐데 역학조사 하는 사람들이 공장에 갔더니 이미 동생이 일하던 라인이 비어있다고 하더라고요.”

박 씨의 경우처럼 일하던 라인이 없어지거나 변경된 경우도 많고, 10년, 20년 전에 사용하던 화학물질도 없어지거나 자료 찾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 씨의 경우처럼 회사에서 출입 자체를 봉쇄하거나 회사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금호타이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는 정찬수 씨는 “이미 공장에는 사용하는 약품이 많이 바뀌었다. 오래된 약품 근거자료나 조사 자료를 확보하면 좋지만 그걸 보관해두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며 “노조가 있는 곳에서 노조가 도와줘도 어려운데 개인이 회사한테 자료 받아내고 증거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전한다.


금속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신청 불승인 및 조사와 승인결정 지연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신속 공정한 치료와 보상을 규정한 산재보상보험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심각한 직무유기 행위”라고 규탄했다.

노조는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직업성 암 유발 물질이 7가지 밖에 없는 협소한 산재보상보험법의 직업성 암 인정기준 △노동자에게 직업성 암 입증 책임 부과 △사업주의 비협조와 사실 은폐 등 방해 행위 등이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와 가족을 더 괴롭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한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오늘 국정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직업성 암 산재 인정과 산재 판정 과정의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 굴지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백혈병, 암환자가 발생했고 유족과 피해자들의 투쟁 끝에 3년 동안 국회에서 직업성 암이 문제시 되고 있다”며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아닌 근로복지공단이 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2011년 10월 5일 금속노동자 (ilabor.org)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