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오마이뉴스 블로거 강태선 님의 글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강태선 블로거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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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사고소식을 전한 경향신문 1989년 5월25일 기사. 기계 ‘선반(旋盤; lathe)’을 물건을 올려두는 ‘선반(shelf)’으로 이해하고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져서 머리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했다. 신문기자가 금속가공의 대명사 선반을 몰랐다는 것으로 그만큼 제조업 노동현장은 일반에 생소한 곳이었다.






1989. 5.24 오후 3시 서울 성수동의 영세 금속가공업체 영전기계에서 한 학출 노동자가 등 뒤의 선반에서 날아온 균형추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사망한 노동자 조정식(서울대 제적생,25세)은 ‘학출’이었다. 학출은 ‘학생출신 노동자’의 줄임말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생운동 출신의 생산직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정권은 ‘위장 취업자’라고 불렀고 공안당국의 주요 관리대상이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학출은 많은 사업장에 있었다. 이들은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가장 비극스런 노동자의 현실인 ‘산업재해’까지도.


이 사건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 4월 4일 새벽 1시, 안산의 전선 생산업체인 대붕전선에서 또 다른 학출노동자가 연선기(cable making machine)에 감겨서 사망했다. 노동자 강민호(한신대, 25세)는 롤러에 남아 있는 알루미늄 폐선을 치우기 위해 1.5미터 되는 연선기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가 메고 있던 폐선이 회전하는 연선기에 말리면서 몸도 따라 감겨 들어갔다. 


기본시설인 방호울만 있었어도 두 참사는 모두 막을 수 있었다. 대형 선반에 척방호구를 설치했거나 혹은 선반 옆에 격막을 설치했다면 회전하던 균형추 비래를 중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연선기에 방호 덮개만 있었더라도 감김 재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0년 전의 노동현장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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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반에 가공 중이던 물체가 비래해도 선반공이 다치지 않도록 척방호구가 설치돼 있고, 인근 작업자가 비래하는 물체에 맞지 않도록 투명한 방호울이 설치돼 있다. ⓒ 사진=http://www.tdt-technology.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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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선기(cable making machine)는 전선을 감는 기계로, 사람이 감겨 들어가지 않도록 방호울을 설치해야 한다. 매우 간단한 설비인데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현장에서는 작업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방호울이 해체돼 있는 경우가 많다.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은 적잖은 변화가 있었지만 안전보건은 그에 비해 거의 바뀌지 않았다. 범용선반에 물체의 비래를 염려하여 철그물 형식 등 격막을 설치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방호덮개도 여전히 소홀하다. 근본 변화없이 20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혹독한 노동현장을 바꾸려다가 비명에 먼저 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자들이 가장 미안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