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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11월호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험은 세상을 알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되도록 많은 경험을 원한다. 하지만, 힘든 고생을 정말 ‘사서라도’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닐까? 

그런데, 11월호 인터뷰 대상자로 만난 분들은 ‘낮은 곳 사람들을 알기 위해’ 직접 그 삶을 살아온 분들이다.  천주교 노동사목회에서 산재사목을 하는 정 세실리아 수녀, 임 엠마누엘 신부, 정영애, 장영순 님이 바로 그 분들이다.


세실리아 수녀는 사실상 산재사목을 처음부터 이끈 분이다. 작업환경이든, 산재보험제도이든 지금보다 열악했던 1980년대 초 산재환자를 만나줄 수도자가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시작한 일을 20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산재하면 손가락 절단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첫 방문에 부부싸움을 봤는데, 이때 벌써 산재가 가정과 사회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는 그에게 1년 반 정도 산재사목을 하다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왔다. 초창기, 세실리아 수녀는 방문 후 수녀원에 가면 울기도 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만난 산재환자들의 고통”을 견디기에는 버거운 나이였다며 고백하듯 밝히는 그는 어느 새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당시 보호자와 산재환자는 세상접촉 없이 격리된 채 살았다. 매일 똑같은 치료와 투약으로 병원은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수용소’라는 느낌을 그들에게 주었다.”

무력감을 느끼면서 활동 공간을 잠깐 이동했지만 그 동안 만난 환자들 연락이 계속되자 1989년, 다시 산재사목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대병원, 광명성애병원 등을 일주일에 2번 꾸준히 방문하고 또한 노동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공부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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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이 25년이나 된 엠마누엘 신부는 프랑스에서 건너왔다. 12살부터 공장으로 일을 가야한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제일 큰 철강공장에 들어가 일한 것이 ‘좋은 체험’이라고 말할 정도로 진심으로 ‘노동’을 신성하게 보는 분이다. 

한국에 와서는 난지도 쓰레기장, 영세한 플라스틱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너무 좋았다”는 그는 당시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꼬박 12시간 노동을 했지만,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었다고 한다. “다시 그 일하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고용이 안 된다.”며 짓는 사람 좋은 웃음은 나는 말로만 노동이 신성하다고 얘기해 온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지게 했다.


네 분 들 중 정영애 님은 산업재해가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직접 경험한 분이다. 남편 분이 산재노동자이다. 두 번의 산업재해로 양 손이 불편한 남편의 장해를 ‘가족’의 이름으로 이겨내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4년 전 세실리아 수녀님의 “병원에 한 번 가지 않을래요?”라는 제안으로 시작한 산재사목 봉사활동을 하면서 산재가족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직접 겪은 것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때 나는 이렇게 했다.”는 말이 본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산재가족에게는 그 말 자체가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일이 있어 봉사활동을 가지 못 하면 산재가족이 그를 찾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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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순 님은 수녀님과 전부터 알던 사이가 인연이 되어 시작한 산재사목 봉사활동을 한 지 2년을 채우고 있다. 그는 “산재를 당한 형을 수발해주던 동생이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하는 형제를 봤다.”며 “기본적인 사회 보장이 안 되어 산재환자도, 가족도 더 힘들어 한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이 말에 “원직장 복귀가 안 돼 너무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정영애 님은 회사에 불을 내겠다는 환자가 있을 정도로 산재 후 노동자와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정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통 환자와 가족이 산재가 주는 고통을 잊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6~7년이라고 한다. 보호자들은 인간관계가 깨지기도 하고 태어나서부터가 아니라 사고로 장해를 얻은 산재환자들은 자신의 ‘장해’를 인정하는 자체가 고통이다. 무엇보다 이런 산재환자와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찾아가는 서비스’ 성토가 시작됐다.


“(그들의) 아픈 마음을 들어주고 함께 있어줘야 할 사람들이 요양연기 여부를 체크하고 법으로만 재단한다. 환자 입장을 가지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입장’을 갖고 찾아온다.”

때문에 ‘찾아가는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환자들 분위기라고 한다.


산재사목은 병원과 가정을 방문해 산재환자와 가족들을 상담해오면서 2003년부터는 주로 재가진폐재해자 분들을 사목하고 있다. 재가진폐환자들 생계, 의료, 가사도우미 지원과 정밀 검진 시 병원을 방문해 필요한 교육도 한다. 또 주로 병원이나 가정에만 있는 환자들 사이의 교류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문화탐방도 진행한다. 지금 재가진폐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같은 대답이 이어진다. 

“기초생활 정도는 하고 지금, 삶에 도움이 되도록 생활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합병증을 따지다보니 ‘재가’니 ‘진폐’니 이런다. 노동부가 합병증 여부를 가지고 양극화를 만들고 있다.” 

진폐를 인정받은 환자는 혜택이 중단될까봐 노심초사하고 노동부가 규정한 합병증이 없기 때문에 진폐임에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라면 사먹을 돈도 없이 지내는 환자도 있다.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이 오히려 불평등을 부르는 셈이다. 

엠마누엘 신부가 프랑스는 다친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려고 기초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준다며 “이런 것들이 쉽게 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작년부터 논의된 산재보험 제도개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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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려 하자 세실리아 수녀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단체와 활동가들은 참 많습니다.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산재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지요.”한다. 자국 노동자의 권리도, 이주한 노동자의 권리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 대한민국, 아직은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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