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휩쓴 노동안전뉴스, 안전한 2016년을 위한 밑바탕이 돼야
글 :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2015년 한 해 동안 문제되었던 노동안전 관련 뉴스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모두가 똑같은 산재 피해자이고, 너무도 소중한 노동자이고, 가족이며,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 중 향후 발전을 위한 시사점을 던지는 뉴스를 중심으로, 다분히 주관적으로 지난 한 해 의 주요 뉴스들을 정리해 보았다. 과거를 정리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말>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 ‘사회적 해결’ 방식, 거부한 삼성
지난 2015년 7월 23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의 ‘보상’, ‘대책’, ‘사과’에 대한 ‘사회적 해결’ 방식을 주요 골자로 한 최종 조정권고안이 발표되었다. 그동안 직업병 문제의 해결 방식은 ‘과학적 인과관계’라는 배타적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권고안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발전적 해결방향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향후 직업병 문제 해결방향의 역사적 전기가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겠다’는 식으로 모든 사람의 희망을 저버렸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공장의 유해요인과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조사한 후 제안한 보상제도, 안전보건 개선방안 등을 회사가 모두 수용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고 외부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개입을 막은 채 독단적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메르스, 산업 전반에 노동자 보호 대책 부실함 증명
지난 1년 동안 가장 핫한 뉴스는 단연 메르스 확산이었다. 총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됐으며 이중 38명이 사망했다. 사실 2014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가 1,850명(1일 평균 5명 사망), 직업병 환자가 6,820명인 것과 비교하면 그리 놀랄만한 수치도 아니다. 왜 우리는 메르스 문제에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이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낳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는 무관심할까?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한편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건강문제가 얼마나 등한시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안전장비와 관리 대책의 부실함으로 인해 의료진의 감염이 확산되었다. 메르스 환자 중 35명이 보건의료 노동자였다. 아예 안전관리 대상에서 배제된 간병, 환자이송,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대처시스템은커녕 중앙콜센터에 모국어로 된 통역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신종질환이 발생·확산될 때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노동자 안전보건 문제
2014년 11월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비인격적 대우를 견디지 못해 분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5년에는 경비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해 8월 29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협력업체 직원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고, 불꽃놀이를 준비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으며, 사내하청이나 외주 사용 비율이 높은 조선, 건설업은 2014년 하청업체 사망자 비율이 93.7%(32명중 30명), 52.9%(425명중 225명)로 심각한 수준이다. 산업계 전반의 외주화가 확산되면서 안전관리 능력이 취약한 하청업체로 위험이 전가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중국 텐진항 폭발사고, 우리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15년 8월 12일 중국 동북부의 톈진항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다. 그 동안 국내에서 발생했던 크고 작은 사고들을 보면서 텐진항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현재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중 20%만이 자신들이 취급하는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만을 공개하고 있고, 주민거주 인근 지역에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이 무분별하게 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9월 화학물질안전원 <2015 상반기 화학사고 보고서> 분석결과, 사고 발생 시 골든타임이 지켜지지 않고, 현장대응팀이 출동한 사례는 40%에 그치며, 사고 사실을 지역 주민에게 재대로 알리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가 화학물질 지역사회 알권리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참고 : 화학물질안전원 <2015 상반기 화학사고 보고서> 분석결과)
노동자·주민의 알권리와 여전히 충돌되는 MSDS 영업비밀
환경부는 2015년 12월 ‘화학물질 조사결과 및 정보공개제도 운영에 관한 규정’을 고시로 발표했다. 이는 화학물질 배출량조사로 수집된 사업장별 화학물질 취급현황과 독성 정보 등을 공개하도록 한 것으로 지역주민 ‘알권리’와 관련된 진일보된 변화다. 공장 안에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은 물질안전보건정보(MSDS)를 통해 상당 부분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질들은 여전히 영업비밀이라는 미명아래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와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은,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사고 발생시 대응 매뉴얼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안전해질 수 있다. 선진국에서 영업비밀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건설업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화, 실효성 있는 관리 기대
2015년 1월 1일부터 건설업 보건관리자 선임이 의무화 되었다. 공사 금액 800억원(토목공사는 1,000억원)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600명 이상인 건설현장은 보건업무를 전담하는 보건관리자를 별도로 선임해야 한다. 그 동안 건설업은 안전사고는 중요한 문제로 여기면서도 유해화학물질 및 기타 건강관리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방치하면서 보건관리지 선임 의무가 없었다. 건설현장의 수많은 용접과 도장작업, 요통과 같은 근골격계질환 등 향후 직업성질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가 기대된다.
이밖에도 작년 한 해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하고, 때론 부끄럽게 했던 안전보건 문제들이 있었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있었던 수은 중독 문제는 우리 사회의 30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자비로 구입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위험한 작업에 내몰리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소방공무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로 인한 과로사 문제, 그리고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건설현장의 원시적인 사망사고 문제들을 보면서 왜 우리 사회는 발전되지 못하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2016년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는 것 같다. 매번 반복되는 문제에 둔감해지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해본다. 2016년에는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해왔던 과로사문제와 감정노동 문제의 정책적 성과를 기대해 본다. 또한 화학물질 정보공개와 관련된 최근 환경부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면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의 영업비밀 문제가 해결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