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네팔 이주노동자의 스트레스 및 정신건강 실태조사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그들에게 한국은 왜 죽음의 땅이 됐을까.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서울신문, 이주노조와 함께 ‘국내 네팔 이주노동자의 스트레스 및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다.
실태조사는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경기·울산·대구·청주 등에서 네팔인 140명을 상대로 진행됐다. 분석결과 응답자는 남성이 121명, 여성이 19명이었으며 평균연령은 31.9세, 학력은 대학 입학 이상이 56.7%였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할 때 가장 힘든 일로 ‘한국 입국 전 생각했던 노동환경과 너무 달라 느낀 실망 또는 절망감’(28.0%·복수응답)을 꼽았다. 또 25.1%의 응답자는 ‘가족 또는 연인, 음식 등 네팔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겹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떠나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쌓였는데 기대와 달리 가혹한 노동환경을 경험하면서 절망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이 매일 12시간씩 일했는데 네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노동환경이라는 것이다. 실태조사 응답자 중 45.6%는 주당 노동시간 한계치인 52시간을 넘겨 일한다고 답했다. 또 과로 산재 인정 기준인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노동자도 19.1%였다. 주5일제를 보장받는 노동자는 10명 중 2~3명(26.1%)뿐이었다.
아무리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은 3년간 최대 3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폐업이나 장기간 임금 체불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여전히 고용주 허가 없이는 일터를 옮길 수 없다. 이주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를 견디지 못해 허가 없이 직장을 옮겨 미등록 처지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네팔에서 만난 유벅 라이 갈레는 비전문인력 (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지 13일 만에 미등록 상태가 됐다고 털어놨다. ‘일이 고될 것’이라는 건 각오한 터였지만 노골적인 폭언과 무시 등 마치 ‘계급’이 다른 사람처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그를 힘들게 했다. 또 2009년 당시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84만원. 주말수당이나 잔업수당은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 조사는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에겐 자살 또는 우울 성향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에서 유의미한 결과치를 얻지는 못했다. 응답자들이 솔직히 답하지 않았거나 응답 대상자 선정 때 ‘선택 편향’(이주민단체와 평소 접촉하는 등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답변)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과정 파악을 시도한 첫 번째 조사였고,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충을 충분히 파악한 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전히 한국행을 준비하는 네팔 청년들은 많다. 한국에만 가면 중동이나 말레이시아 보다 나은 환경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한국행을 택한다. 한국도 이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미 공장은 물론 식당, 농어촌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자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구조가 됐다. 취업비자를 받아 현재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재외동포 포함 모두 104만 58명. 여기에 정부 추산 불법 체류자 수 36만 2931명을 더하면 전체 이주노동자 규모는 약 140만명에 달한다. 더이상 그들의 죽음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