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노동자 갑상선암 산재 승인을 촉구하는 연서명
산재보험 60주년에 걸맞는 진전,
대법원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기본적으로 사회보험입니다. 노동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불행한 재해나 질병이 발생할 수 있고, 이 불행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사회보험의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산재제도가 사업주나 노동자, 어느 일방에게 잘못을 추궁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는 보험 제도이기 때문에 엄격한 인과관계 아니라 넓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배전 노동자들은 90년대 중반부터 활선 작업을 했습니다. 상시적으로 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정전 없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법 덕분에 우리 사회가 정전 상태 없이 안정적이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전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스트레스도 큰일입니다. 산재 신청을 한 갑상선암 재해자는 21년간 활선작업을 해오던 중 발병해, 2016년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새벽밥 먹고 나와서 9시 뉴스 보다가 잠들고, 그렇게 공휴일이나 일요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 이틀이 되고, 1년이 2년이 되고, 수십 년간 일을 하다 병을 얻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활선작업자 건강상태 및 관련 실태조사’(2017)를 통해 “배전 현장은 반도체 공장보다 더 많은 극저주파 전자기장(전자파)에 노출돼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활선 상태에서 일을 하는 배전노동자의 작업환경에선 극저주파 자기장이 산술평균 1.3µT로 측정됩니다. 이는 반도체 공장 가공 조립공정에서 측정되는 평균값인 0.73µT, 변전소 노동자 작업장 평균값인 0.43µT보다 높습니다.
극저주파 전자기장이 갑상선암의 원인이라는 의학적·과학적 인과관계가 지금으로선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새로운 결과들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극저주파 전자기장이 갑상선 호르몬을 교란시킬 수 있다거나 종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과들입니다. 인류는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곳에 위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위험한 일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 사회는 노동자 질병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사회적 기준, 사회적 인과관계에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고, 산재보험의 존재 이유입니다.
노동조합에서 2023년 4,608명의 배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307명의 응답자 중 24명이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동료나 퇴직자 중 갑상선암 유경험자 10명을 더하면 34명에 이르는데 이 중 아무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9년째 진행되고 행정소송을 지켜보며 ‘해봐야 안 되는 일’ ‘자칫 고용에서 불이익만 생길 수 있다’는 인식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의학적·과학적 인과관계가 충분치 않거나 다소 부족한 가운데 그 인과관계를 평생 밤낮없이 어둠속의 붉을 밝히는 일만 하던 노동자더러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산재보상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60년이 됐다고 합니다.
반도체 백혈병도 10년 전에는 ‘그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느냐’ ‘그게 어떻게 산재냐’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돌았습니다. 과로나 괴롭힘 때문에 자살하면 ‘그게 무슨 산재냐’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20년 전에는 벤젠이라는 환각물질, 발암성 물질이 들어 있는 본드 풍선이 어린이 장난감으로 굉장히 유행했습니다만, 현재에는 우스갯소리로도 하지 않습니다. 첨단산업에서 연구결과들은 새롭게 나오고 있고, 더 도출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산재보험은 사회적 보험입니다. 산재보험 60년을 맞는 가운데, 사회공공성 바로미터는 이번 판결이 될 것입니다. 산재보험 60주년에 걸맞는 대법원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2024년 7월 29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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