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로 인한 피해, 문제의 원인인 사업장관리가 중요하다.
법원의 삼성전자 안전진단보고서 공개 결정을 환영한다
지난 2013년 삼성 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당시 노동부는 안전진단을 실시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은 산업재해 소송과정에서 이 자료의 공개를 요청해왔는데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영업비밀을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국민의 생명, 건강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알권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에 우선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법원도 14차례나 제출을 요청하거나 명령했으나 삼성전자는 거부했고 고용노동부도 방관해왔던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의미있는 판결이다. 이에 따라 향후 산재 소송에서 작업자 이름이나 흐름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삼성반도체 피해자들(반올림)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해야 한다. 진정으로 사과하고 제대로된 보상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일과건강은 사업장 안전보건활동을 중심에 두었으나 2012년 구미불산 누출사고와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거치며 노동자와 주민, 소비자의 화학물질 알권리 운동에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2013년 27개 노동, 환경, 여성, 소비자, 지역단체 등으로 구성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각 부분별 법제도적 개선운동을 펼쳐왔다.
그동안 화학물질 알권리는 확대되어 왔다. 주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2015년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95%의 사업장별 물질별 연간 취급량과 유해성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소비자의 알권리 측면에서 2015년 6월 어린이제품안전관리특별법이 제정되어 2016년부터 안전한 제품이 생산판매되고 있다.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 안전관리법은 지난해 환경부에 의해 입법예고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2019년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유해화학물질에 가장 노출위험이 높은 노동자의 알권리 측면에서는 바뀐 게 없다. 우리는 지난 4년간의 노동자, 주민, 소비자 알권리 운동을 통해 모든 위험이 시작되는 곳인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관건임을 알게 되었다.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업환경관리가 안 되면 노동자가 피해를 입는다. 사업장 안전관리가 안 되면 화재, 폭발, 누출사고로 주민이 피해를 본다. 또 제품성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생산품이 유통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2017년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운동의 방향을 사업장 화학물질 안전관리법 개정으로 잡았다. 이러한 법개정 내용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노동자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1988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직업병 사건이 있은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삼성전자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시력손상을 가져온 메틸알콜 중독사건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 알권리가 보장되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정보를 사전에 교육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사고의 원인은 주로 취급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특히,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의 기재내용 중 영업비밀이 많아(67%) 알권리 보장에 제도적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MSDS 상 영업비밀에 대한 노동부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하고 노동자들이 과거에 자신이 사용했던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면 이에 응해야 하는 사업주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쉽게 정보에 접근할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MSDS를 작성하는 자가 영업비밀로 기재하려 할 때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의결를 통해 인정될 때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사업장 고독성물질 사용을 줄여야 한다.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 중 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 물질로 대표되는 고독성물의 사용 및 배출을 줄이려는 사업장의 움직임이 전무하다. 고독성물질을 사업장에서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온다면 화학물질로부터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독성물질저감법 등을 통해 고독성물질 배출저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해가고 있다.
고독성물질 취급사업장은 매 2년마다 배출저감 계획서를 작성하여 환경부 장관에게 제출한다. 환경부장관은 관할 지자체에게 이를 제공하여 사업장 자료의 제출을 명하거나 공무원이 출입하여 검사할 수 있도록 한다. 사용 및 배출 저감을 위한 기업의 노력을 지역사회가 논의하고 견제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학물질 안전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조례제정이 마무리되면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는 더욱 효과적으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9월30일 현재 조례제정 지역은 광역 8개(경기, 충북, 인천, 전북, 부산, 광주, 전남, 울산), 기초 11개(군산, 양산, 수원, 평택, 여수, 영주, 청주, 나주, 성남, 파주, 구미)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