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수준의 승무 노동자들 정신건강, 대책이 필요하다
교번제 노동, 열악한 지하환경, 사상사고 충격으로 범벅된 그들의 일터
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1월호
15년 전인가, 뜬금없이 1박2일로 강화도로 여행을 가자던, 지하철 4호선을 운전하는 승무원 선배가 있었다. 같은 제안을 받은 또 다른 선배들과 함께 우리는 강화도로 떠났고 그날 밤 술자리에서 선배는 초점없는 눈으로 지하철 운전 중에 사람이 치여 죽었고 그 순간이 잊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은 이 선배가 문득 떠오른 것은 지난 10월 기획교육 토론 자리에서 들은 지하철 승무원들의 사상사고 처리 과정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승무지회 서승권 산안부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시신을 치우고 (운전) 교대자가 있는 역까지 지하철을 끌고 간 뒤, 조서작성을 위해 경찰서로 간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여 사고발생 경위서를 작성하고 (사고처리 지침에 의한) 3~5일의 휴가를 가진 뒤 다시 출근한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고 없는 승객들의 승강장 투신자살이나 출입문 사고 등으로 일어나는 사상 사고는 1평도 안 되는 좁은 운전실에서 홀로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승무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스트레스가 된다. 교육 이후 날을 잡아 따로 만난 그는 “사고 후 수습도 그렇지만 사고 직전에 마주친 눈동자와 절규가 잊혀지지 않아 (사상사고 충격은)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평생 간다.”는 말로 승무 노동자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실제 지난 10월 24일 언론을 탄 ‘도시철도 노동자 특별 건강검진’ 결과는 승무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상태임을 알렸다. 이들은 일반인과 비교하여 우울증 2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4배, 공항장애 7배였고 특히 사상 사고나 사고가 날뻔한 경험, 승객과의 갈등, 비상벨로 인한 운전정지 등을 겪은 노동자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뒤따랐다.
서승권 부장은 “운전 장애 발생으로 열차가 지연되면 빠른 조치가 요구되는 업무상의 중압감과 열차 지연을 이유로 당하는 승객의 폭언, 폭행 등도 정신적 충격을 준다.”며 “이런 정신적 외상 카운슬링 없이 수십 년간 (승무 노동자들을) 방치한 결과”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사상 사고가 나면 승무 노동자 스스로 거의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과 지하라는 열악한 환경 등이 승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것이다.
인명사고가 났을 때 적절한 치료가 전무하다는 서승권 부장은 “다만, 동기들이 식당을 잡아놓고 소주 한 박스를 옆에 놓고 피가 묻었다는 가정 하에 소주로 손을 씻은 후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는 것”이 승무 노동자 세계에서의 치료법이다. 사고처리 업무지침으로 주어지는 3~5일의 특별휴가도 경찰서의 추가 조사 등으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결국 사상사고 충격에서 오는 모든 것을 ‘당사자’ 한 명이 온전히 책임지는 문제를 알려준다. 수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지하철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의 이런 환경은 수천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열악한 셈이다.
같은 유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럽은 심리치료를 먼저 한다고 밝힌 서승권 부장은 “의사와 노동자가 상담해서 결정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운전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 사상 사고는 우선순위가 인명구조, 재산보호, 10분 내 교통회복이다.”라며 이중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 승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승무 노동자들이 겪는 또 하나의 심각한 노동조건은 ‘교번제’ 노동이다. 교대제의 또 다른 변형인 교번제는 주로 지하철, 도시철도, 철도, 항공 등 운행시간에 맞춰 노동시간이 정해지는 기관사(승무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형태이다. 서울지하철은 하루 정해진 열차의 총 운행 횟수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개인별로 세분화해 번호를 부여한다. 부여된 근무를 다이아(DIA, Diagram 약칭)라 하고 개별 다이아에는 식별이 가능하도록 1번부터 수십 번까지 번호가 붙어있다고 한다.
서승권 부장은 자신을 예로 들어 “평일에는 52개 다이아, 토요일은 49개 다이아, 일요일은 47개 다이아가 있다. 06시06분을 1다이아로 시작, 52다이아의 22시54분 출근 사이에서 개별적 출퇴근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초보자가 보기에는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보여준 출퇴근 다이아 표는 복잡했다. 승무노동자들은 자신의 다이아 표와 함께 열차 행로도를 보고 언제 어디로 출근할지 파악한다.
다음 날 출근을 표를 보고 확인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교번제 노동으로 승무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사회생활, 대인관계,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는 것도 제약을 받는다. 서 부장은 “결혼한 사람의 집에는 이 표가 걸려 있다. 집사람도 알아야 나름대로 계획을 짜야하기 때문에. 이것을 파악하는 데 몇 달이 걸린다.”며 웃음을 지었다. 교대제처럼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고 자기 근무에 예측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서승권 부장은 시간대로 조를 짜서 순환노동을 하면 출퇴근을 예측 가능하도록 짤 수 있지만 사측의 인력 손실 문제제기, 부족한 관련 연구, 승무원들의 현 노동형태 적응 등으로 변화를 갖기란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불규칙한 근무와 함께 지하를 달리는 승무 노동자들이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운행 중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생리현상 해결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식사, 배설 등에서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사회공론화가 쉽지 않다.”고 서승권 부장은 토로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화장실 문제를 최소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서울지하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지하철, 버스, 택시, 화물 등에 파급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권고를 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서승권 부장은 여승무원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화장실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전향적인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번제, 지하환경, 사상사고 등은 승무 노동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갖게 되는 노동환경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파생하는 문제해결이나 환경개선은 사람의 힘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들이다. 승객들의 자살사고를 막기 위해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듯이 승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든가 석면과 라돈, 미세먼지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지하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쾌적함에 가깝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인식전환이 그야말로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사측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식전환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지하철 노동자가 파업할 때면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언론의 식상하고 원인을 외면하는 보도(사실, 중앙언론 중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의심스럽다)에 같이 흥분하기 보다는 캄캄한 터널에서 홀로 하루 수천 명 승객의 안전과 이동을 책임지는 노동자를 먼저 봐야 한다.
아차사고에서부터 사상까지 각종 사고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석면, 라돈, 미세먼지 등 열악한 지하터널에서의 근무, 열차 지연은 10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방법들을 되도록 빨리 찾아 시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