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야 하나?
욕설이 싫어 노동조합 결성한 성진애드컴 노동자, 절을 바꾼다


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꿈틀, 2006년 2월호

서기 2000년을 맞이할 때 혹자는 장밋빛을 꿈꾸었다. 양극화보다는 부의 재분배를 기대했고, 소외된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 놓고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보았다. 가끔 나는 ‘내가 21세기를 사는 사람인가?’ 반문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요즘, 19세기적 상황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얘기는 이렇다. 
성진애드컴분회(언론노조,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사장 아들(당시 과장, 노조 결성 후 이사로 승격)이 노동자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일상 행동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참다못해 자구책으로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당시 상담을 맡았던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 문종찬 위원장은 “인격적 모멸감을 갖게 하는 사장 아들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참을 수 없어했다”며 “상담이 주로 체불임금이나 부당한 징계가 많은 편인데 성진은 첫째, 둘째, 셋째 이유가 모두 인격적 모멸감이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불러서 혼을 내도 업무상 지적이나 제재가 아니라 인격적 모멸감을 주면 안 되는데, 은행처럼 손님을 응대하는 자리에서도 쌍소리를 하는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성진애드컴 사장 아들 ‘김 이사의 언어폭력’

1. (김 이사 의견에 자기의견을 피력하자 담당 부서장에게)
 “이 대리! 개기는 새끼들은 다 짤라 버려!”
2. “경리부 여직원은 뚱뚱하거나 나이 많은 년은 뽑지도 말아라.”
3. “너흰 좋게 얘기해선 듣지 않아... 그래서 내가 나서는 거다. 그게 노예근성이라는 거야.”
4. (몸이 아파 한 달에 두 번 조퇴한 여직원에게)
“김○○는 한 달에 생리 두 번하나?”
5. 일상적 직원 호칭은 “야!” “○○○새끼” 

처음, 노동조합 결성을 통보했을 때 사측은 약간 당황했다고 한다. 인쇄업종이 주로 영세하고 이직율이 높은 편이라 노조 결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쇄업종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유지하기란 실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측도 인격적 모멸감을 인정하고 있어 교섭도 응하고 진행이 잘 되는 편이었다. 그게 작년 여름휴가기간까지였다. 여름이후 사측에 노무사가 개입되면서 태도가 변했다. 과거 일을 가지고 징계를 한다든가, 자리를 한 쪽으로 모는 인사발령을 하는 식이었고 결국 조합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 10월 인사발령에서 “견딜 수가 없다”며 하루 만에 그만두었고 조합원이 이를 집단으로 항의하자 다시 징계가 내려졌다. 불응하자 바로 해고였다. 결국 교섭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쟁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21명으로 출발했던 조합원 수는 해고자 1명을 포함해 8명으로 줄었다.

노조는 일정 정도 양보를 하더라도 타협으로 교섭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사측은 움직이지 않았다. 돌파구도, 협상의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인격적 모멸을 더 이상 당할 수 없어 결성된 노조는 ‘노동조합 깃발을 내리느냐?’ 아니면 ‘노조 존재 인정을 위해 최종 선택을 하느냐’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 와중에 조합원 전체가 정직 2~3개월 징계를 받았다. 

12월 20일 시작한 점거농성은 설 연휴 직전인 1월 27일, 39일차에 교섭이 타결되면서 접었다. 타결된 교섭 내용만을 본다면 처음 진행했던 것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단체협약은 근기법 수준이고 관례적으로 인정된 부분도 다 담아내지 못 했다. 그러나 협상자체를 거부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던 태도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타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것을 잘 살려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노동조합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성진투쟁을 함께 한 문종찬 위원장은 “회사가 ‘노조를 지금 없앨 수는 없다’, 최소한 이걸 인정한 것 같다”며 그것이 잠깐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하는 심정일지, 아닐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여지를 남겼다.  

IMF 이후에는 조직 상담조차 들어오지 않았던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에서 성진애드컴은 이제 유일한 분회가 되었다. 3D 업종에 이직율이 높아, 사람이 자주 바뀌다 보니 수많은 노조가 세워졌다 없어졌고, 노조가 결성되면 사용자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성진애드컴은 동종업계 3위 안에 들 정도로 앞선 자본으로, 인쇄시장 변화의 첨단에 서 있는 업체이다. 축적된 자본으로 시장경쟁을 해서 가격경쟁도 하고 덤핑경쟁도 하는데, 실체는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것으로 가정을 꾸리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 대부분이 미혼이다.

이것은 비단 성진만의 상황은 아니다. 문 위원장은 그런 업종에서 “노조가 결성되고 한 고비 넘어갔다는 것은 다른 사업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성진보다 훨씬 작은 업체에서 일하는 인근 편집디자인 노동자들을 지역적 차원에서 결합시킬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며 단위사업장에 노조가 생겼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성진애드컴 투쟁’에 있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성진애드컴투쟁을 보면서 “문제가 있는 절이라면 끝까지 남아서 고쳐야 한다”로 고치고 싶어졌다. 물론 성진애드컴 조합원들이 넘어야 할 산과 고비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형사 고소고발 건으로 조사도 받아야하고 일련의 노동조합 활동도 찬찬이 되짚어봐야 한다. “7명의 조합원들이 정말 치열하게 싸운 틀림없는 성과이기도 하지만, 조합원이 7명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문종찬 위원장 말이 주는 의미처럼 재조직 사업은 가장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또한, 교섭결과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도록 강제하는 역할도 함께 투쟁한 동지들과 해야 한다.

노동조합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21세기 노사관계로드맵을 얘기하는 2006년 대한민국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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