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사업 보고서
올해 초 현대차지부 고인섭 노안실장으로부터 어떤 사업을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 것이 바로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 사업이었다. 고인섭 실장과는 2010년 현대차 발암물질조사사업에서 호흡을 맞추었고, 금속노조 노안실장 때에는 전국으로 발암물질 조사사업을 확대하고 암환자를 찾아내는 일을 같이 하였다. 금속가공유의 독성물질을 줄여내는 협약을 체결한 것도 함께 한 일이다. 발암물질이 얼마나 많은지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하여, 발암물질을 줄이는 일, 암환자를 찾아내는 일까지 같이 하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과거 발암물질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였고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고인섭 실장께서도 얘기를 듣자마자 즉각 사업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동의하였다. 그리고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걱정이었다. 회사의 도움 없이 우리가 얼마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오로지 노동자들의 기억에만 의존하여 과거의 발암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 자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을 줄 알기에, 차라리 이제라도 기록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일을 해보자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해외의 자동차 산업 직업성 암 연구를 리뷰하였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자욱하게 안개 낀 새벽에 길을 잃은 느낌으로 현장을 찾아갔다. 선배 조합원들이 현장연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우리의 손을 잡고 현장을 안내하였다. 그러다가 의외의 기록들을 만나게 되었다. 엔진공장에서는 부서에 보관되어 있던 서류철에서 염소계 솔벤트의 사용흔적을 찾아냈다. 제품 대체를 위한 협조전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염소계 솔벤트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추적의 실마리를 확보했다. 도장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의 1988년 제1차년도 사업보고 책자에서 유해수당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었고, 뒤이어 1990년 노동과건강연구회의 현대차 현장 조사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냈다. 노동과건강연구회의 전수경씨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조사책자를 찾아내 인편으로 보내왔다.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25년 전의 현대자동차 작업환경을 만날 수 있었다. 선배 조합원들로 현장연구위원을 임명한 것이 이런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최상준, 강충원, 김승원 세 분의 공동연구진과 함께 토론하는 시간은 너무도 즐거웠다. 최상준 교수는 자동차산업에서 석면이 언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려내었다. 이 작업은 현대차 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산업의 석면노출에 대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여긴다. 최상준 교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라, 이 보고서의 가치가 그만큼 더 높아졌다. 강충원 선생은 신너 중의 벤젠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조사를 한 연구자이다. 강충원 선생은 놀랍게도 신너 중의 벤젠에 대한 정리는 물론이고, 노말헥산이나 TCE 중의 벤젠오염 문제를 새로이 제기하였다. 이것은 이번 보고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는 않았으나, 향후 중요한 연구주제로 큰 가치가 있는 테마라고 할 수 있었다. 김승원 교수는 금속가공유 중의 다핵방향족탄화수소를 중심으로 금속가공유가 호흡기계암 뿐 아니라 소화기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주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연구결과들을 볼 때, 우리도 시급히 금속가공유와 다양한 암의 관계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심도 깊은 연구를 수행해야만 할 것으로 본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경우과 같이 전미자동차노조가 지엠과 포드사와 노사교섭을 통해 역학조사를 이끌어낸 사례처럼 금속노조와 현대차 지부가 이 주제를 맡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염소계 솔벤트를 맡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염소계 솔벤트가 언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추정하기 위해 미국의 염소계 솔벤트 유통역사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현대차의 염소계 솔벤트 사용 역사를 정리하였다. 미흡하지만, TCE와 PCE 등 다양한 염소계 솔벤트가 여러 세척작업, 이형제 분사 작업, 도장작업 등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결과는 신장암과 같은 암의 발생에 대한 대비가 될 것으로 본다.
이 조사가 노동조합과 연구진만의 힘으로 이루어졌기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애쓰고 노력한 결과이기에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도 비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화학물질의 성분은 여전히 기업의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 언제까지 비밀의 시대가 유지될 것이냐 하는 것은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의 손에 달려있다. 이 보고서는 비밀의 시대를 끝내려는 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이 보고서를 읽을 분들에게 간절한 당부를 드린다. 이 보고서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이 보고서에 담겨있는 과거의 작업환경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미흡한 증거들을 보완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를 얘기하자. 그런 면에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발암물질 사용 이력조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본격적인 조사와 논의를 위한 마중물로서 이 보고서를 보아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자욱한 새벽에서 시작하였지만, 이제 간신히 아침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환히 비출 때까지 발암물질 이력조사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끝난 것은 즐거웠던 2014년 여름이면 족하다.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사업 보고서>가 필요한 분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영은 연구원(ye.choi@hanmail.net)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