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삶은 고통인가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글쎄다아~ 내, 삶은 계란은 들어봤어도 삶은 고통은 처음 들었구나…”[이현정의 삶은 고통]은 ‘삶은 고통’은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아버지의 위트와 같은 좌충우돌 이현정의 세상살이 입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심화 워크숍 전체 모습 중 하나. 사진은 지역네트워크 공유 시간에 광주지역의 활동과 고민을 들어보는 모습이다. ⓒ 이현정
참여하는 노동안전보건교육 만들자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만나는 폭은 좁아진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고정된 관념이 생겨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지면서 혹은 구축된 자기 세상에 머물러서 일 수 있다. 아니면 정말 나이 때문에 활동공간이 축소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도 있겠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공간이 있다. 주로 나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다른 생각 다른 활동 다른 고민… ‘다르다’는 것을 접할 때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고민도 생긴다. 무엇보다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지난 1월 31일(토)~2월 1일(일)에 열린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심화 워크숍’이 내게 그런 자리였다. 처음 워크숍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내용의 노동인권 교육을 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걸로 알았다. 하지만 핵심은 -적어도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잘 할까’를 참여형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형식 안에는 그들이 고민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노안계(?)에 입문한 지 만 3년인 내가 접한 모든 교육은 오로지 ‘강연’이었다. 한 번에 많은 수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는 강연이란 교육 형식이 가장 효과적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늘 다수 노동자를 상대하지는 않았을 게다. 어쩜 노안계는 너무도 익숙한 교육방법 그 자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인권 위치를 파악한 뒤 조건에 따라 위치를 바꿔본 놀이체험. 노동인권 위치의 높낮이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중이다. ⓒ 이현정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전 안전’
첫날, 크게 세 개 마당으로 구분된 교육기법 프로그램은 ∇연극·놀이 체험 ∇영상·음악미술 ∇강연·쟁점토론이었다. 모든 마당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이 모여 실제 현장에서 진행하는 인권교육에서 부딪히는 고민을 나누면서 해결법을 찾았다.
나는 놀이 체험, 영상, 쟁점토론에 들어갔다. 놀이 체험은 처음에 몸 풀기로 ‘노동의 소리는 블라블랄라’(“아이 엠 그라운드 나라이름 대기” 리듬에 맞추면 된다.)로 각자가 생각하는 노동의 소리를 가지고 게임을 했다. 주로 육체노동자와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여보세요 여보세요’(전화상담원) ‘안전 안전’(실업계 고등학교 교사) 등도 나왔다.
다음으로 최근 노동 정책 변화에 따라 노동자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체험하였다. 방식은 이렇다. 각 팀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보기 :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45세의 남자 최민욱 씨)을 보고 급여, 노동환경 등을 고려하여 위치를 선택한다. 위치는 중간 기준을 정해놓고 끈이나 도구를 이용해 몇 단계로 나눈다. 그 다음 “기업들이 직급에 따라 임금을 똑같이 주다보니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다며 개별성과에 따라 임금을 준답니다.” 식의 조건을 알려주면 자신의 위치가 올라갈지 말지를 정해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처한 상황이 다른 노동자 위치도 고려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 지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토론 속에서 쟁점을 만들고 합의된 쟁점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어 다시 전체 토론을 해본 쟁점토론. ⓒ 이현정
경매를 이용한 정책토론과 대안 만들기
둘째 마당에서는 영상으로 갔다. 간단한 TV광고를 보고 관련 주제 Yes or No 게임을 한다. 게임 마무리는 주제와 관련된 정책과 문제점 대안들을 논의한다. 쟁점토론으로 간 셋째 마당은 쟁점이 생길만한 하나의 내용이 주어졌다. 각자 먼저 생각한 뒤 팀으로 모여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합의된 쟁점, 여전히 논란이 되는 쟁점으로 정리가 된다. 정리된 것은 종이에 적는다. 모든 팀들의 내용을 큰 벽보에 붙인다. 이것을 가지고 다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
2월 1일의 주제별 모둠 토론 중 정책대안 마당은 경매를 이용한 것이어서 신선했다. 내용은 이렇다. 청소년 정책의 세부내용이 경매대상이 되고 참가자에게는 1억 원이 주어진다. 물론 마음속의 1억 원이다. 경매가 시작되면 참가자들은 자신이 사고자하는 대상 경매에 참여한다. 경매 뒤 경합이 치열했던 대상은 그만큼 현실에서 중요한 것들이었다. (참고로 이날 경매에는 ‘기업 살인법’이 추가되었다.) 이것을 추려 다시 구체 토론에 들어간다. 주제별 모둠 토론은 ∇청소년 주체화·조직화 ∇청소년 노동침해 사례 구체 해결방법과 지원방안이 있었다.
정책의 세세한 내용을 경매대상으로 삼고 경매에 입찰 중인 참가자들. 경매대상은 청소년 노동정책이었다. 이날 최고가는 6천6백만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을 사회교과목으로 편성하는 것이었다. ⓒ 이현정
자연스런 의견개진, 열띤 토론 인상 깊어
이틀 동안 참여한 다양한 교육방식은 지금 당장 안전보건 교육에서 쓸 것도 있고 살짝 변형하면 꽤 괜찮을 교육방법도 있었다. 각 방법들은 참가자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의견을 밝힐 수 있어 토론과 논의가 풍성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모습은 앳된 대학생, 머리 희끗한 중장년층, 청년층 등 여러 세대가 모여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열띰이었다.
워크숍 참여는 노동안전보건 교육도 (늦었지만?) 이제 다양한 교육방법을 생산해야 한다는 고민을 던져주었다. 노동자를 강의 받는 대상자로만 머물게 하지 말고 교육내용에 참여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 주제는 2009년을 조금 더 신나게 보내도록 만들어 줄 것 같다.
1박2일의 워크숍 주최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였다. 인권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한 단체들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이다. 인권교육센터 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 개인 활동가 등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