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21:28
이 글은 일과건강 2008년 11월호 기획특집 <현대자동차 주간연속2교대가 희망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원고 중 하나 입니다. 원고 필자는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 이종탁 님이며 저작권은 일과건강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노조와 자본의 이해 조절한 ‘생산량’
주간연속2교대제가 논의된 배경은 분명하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고령화 속에서 심야노동을 최소화하여 노동시간단축을 해보자는 견해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자본측은 왜 이러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였을까? 노동조합 요구에 자본이 밀렸다는 ‘순진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힘에서 밀렸다기보다 자본 역시 필요함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추론해보건대, 글로벌 생산체제를 형성한 현대·기아차 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생산체제와 그 관계’를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간단축의 필요성과 생산체제 변화라는 서로 다른 욕구가 어떻게 ‘주간연속2교대제’로 모아질 수 있었느냐이다. 노조와 자본의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절한 것은 바로 ‘생산량’이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면 ‘심야노동’보다는 전체적인 노동시간에 우선 주목한다. 그래서 2조 2교대제를 3조 3교대나 4조 3교대로 전환하면 전체적인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즉 공장가동을 최대화하면서도 노동시간은 단축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차 노사는 ‘주간연속2교대제’, 즉 ‘심야노동’이 없는 2교대제에 합의를 했다. 이것은 사실상 20시간 이상 가동되고 있던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공장 가동률을 사실상 낮추고 떨어뜨리겠다는 ‘야무진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심야노동’이 없는 교대제를 합의했다는 것은 그 시간동안 공장을 가동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을 위한 절대적 시간을 줄인다는 것! 이것이 주간연속2교대제에 대한 노사 합의가 만들어낼 미래이다. 2008년 현대차 노사 교섭에서 8+8+1에 합의를 하면서 애초 노조가 주장했던 ‘8+8’에서 한 발 물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이 있지만 사실 현재의 공장 가동 시간과 비교해본다면 무려 3시간이나 줄인 것이다. 노동시간단축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같은 합의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휴일특근 |
333.6 |
478.8 |
482.4 |
495.6 |
494.4 |
445.4 |
평일연장 |
352.8 |
382.8 |
357.6 |
370.8 |
361.8 |
330.0 |
평일정취 |
1776.0 |
1803.6 |
1735.2 |
1725.6 |
1670.4 |
1621.2 |
출처 : 현대자동차 주간연속2교대제 중간보고서 중 근무형태 부분에서 발췌 |
휴식없는 심야노동으로 대형사고가 난 KTX. 심야노동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 철도노조
물량유지 덫에 걸린 주간연속2교대제 협상
하지만 이번 합의는 전혀 ‘미래지향적’이지는 못하다. 노사가 물량을 유지한다는 대전제 위에서 이번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노동조합은 현재 완성차의 현실, 글로벌 경제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지 못했다. 자본은 10+10 가동 시 생산했던 물량을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하더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초반부터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임금도 보전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노조는 현실을 꿰뚫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현대·기아차 그룹이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한 이래로 국내 생산이 감소하고, 이후에도 감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정하지 못했다.(사실 지금도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 사실을 직감하면서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무척 꺼려한다.)
구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
가동률 |
77.0 |
74.8 |
76.2 |
77.5 |
79.8 |
79.3 | |
|
소하리 |
82.4 |
83.3 |
84.2 |
74.9 |
83.9 |
79.1 |
|
화 성 |
69.1 |
68.6 |
77.7 |
76.4 |
76.2 |
74.5 |
|
광 주 |
90.3 |
79.0 |
64.5 |
81.7 |
81.7 |
85.7 |
출처:기아자동차 근무형태분과 중간보고서 |
10+10 생산량을 8+8에 맞출 수 있나
현장과 노조는 글로벌 생산체제 속에서 오히려 위축되어 있다. 국내공장의 물량이 감소할까봐 어떤 면에서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내부를 보면 신차종을 투입할 때 부서와 공장 간에 노골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이때에는 조직이고 원칙이고 거의 없다. 대의원들은 자기 공장에 신차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서슴지 않는다. 물량이 곧 고용이고, 곧 소득이라는 생각이 현장 노동자들과 대의원, 활동가와 노조에까지 너무나도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생각 때문에 객관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차는(사실 두 기업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향후 국내 생산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자본이 말하는 생산물량 유지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더라도 ‘주간연속2교대’로는 지금(현대차는 2004년, 기아차는 2006년 기준)의 생산물량을 맞출 수 없다. 일단 전반적인 경기침체, 특히 미국의 경기침체가 미국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 물량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둘째, 미국과 유럽에 지어지는 현지 공장들로 인해 해당지역의 물량은 현지 공장으로 대응하는 생산체제를 갖추었다. 미국에는 앨리바마 공장(현대차)과 조지아주 공장(기아차)이 있고, 유럽에는 터키와 체코(현대차), 슬로바키아(기아차)에 공장이 있다. 셋째, 소형차(경차 포함) 및 저가 차 생산은 인도를 생산 거점으로 하거나 국내 위탁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넷째, 국내에서 생산하는 엔진량으로는 현재 필요 생산량을 맞추지 못해서 해외로부터 엔진을 역수입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10+10 시간동안 생산했던 물량을 8+8 시간 동안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점이다. 자본은 이에 대해서 편성효율 제고, UPH 조정, 전환배치 활성화 등의 대책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에 노조가 동의한다면 설비 개선과 라인 합리화와 같은 투자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기도 했다. 자본은 생산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숨기고 물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 측이 설정한 ‘생산성 향상의 조치’들을 노조가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였다.
안타깝게도 노조는 자본의 전략과 공세 속에서 ‘자기 대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에서는 ‘생산허브 전략’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생산체제 속에서 국내 공장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제안들이 있었고, 국내 공장 증설의 요구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노조는 이것을 현장의 투쟁, 조합원의 요구를 승화하지 못한 채 노사 협의 속에 묻어두고 말았다.
노사전문위원회는 또한 생산체제와 관련하여 노동의 인간화가 결합된 새로운 생산표준을 정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기아차 전문위원회에서는 주로 노측 위원에 의해서 ‘노사공동결정제도’에 기반한 작업장 체제의 인간화가 주장되었고, 현대차에서는 노사전문위 차원에서 ‘직급에 맞는 교육·훈련 체계 개발 및 보급’,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 ‘작업자 참여 제도화’ 등이 제안되었다. 그렇지만 노조는 이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하지도 못했다.
생산물량 유지, 이를 위한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국내 공장 증설과 글로벌 허브 전략을 전면적으로 요구하지 못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생산방식 혁신도 주장하지 못한 노동자와 노조는 결국 ‘물량유지’를 전제로 하는 ‘임금보전’에 거의 올인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주간연속2교대제 협상을 심야노동 폐지와 이에 따른 노동시간단축의 논의가 아닌 ‘생산물량’과 ‘임금보전’의 힘겨루기로 변질시켜버렸다.
물론 임금보전은 노동시간단축을 하는데 있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협상 대상으로 삼은 자본의 행위는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그렇지만 노동자와 노조 역시 자본이 벌여놓은 ‘물량’과 ‘임금’의 판에 스스로 갇혔다는 점에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간노동을 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천장 위 시계가 24:52분을 알려준다. 주간연속2교대 시행은 과연 시계가 새벽으로 가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 울산노동뉴스
노동의 인간화 가져올 생산방식을 꿈꾸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주간연속2교대제는 심야노동을 폐지하여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교대제이다. 이것은 이미 ‘공장 가동시간’을 축소·단축을 이미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10+10을 기본으로 하는 현재의 생산물량을 주간연속2교대제로 모두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생산물량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오로지 두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첫째는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것이다. 15만대 규모 정도의 신공장을 새롭게 설립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가장 빠른 방법이다. 둘째, 자본이 기존 생산공장들의 설비를 합리화하고 재구성하는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일정정도의 작업체계 혁신에 동의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두 번째 방법은, 작업체계의 혁신이란 자본이 말하는 의미의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듭 밝히지만 현 국면에서 장기적인 생산물량 유지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생산물량 유지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양(量)의 생산체제’를 ‘질(質)의 생산체제’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는 자동차 산업 차원에서는 매우 오래된 이야기이다. 자본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천만 원짜리 소형차가 아니라 2천만 원짜리 소형차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포디즘적인 대량생산방식,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컨베이어벨트의 흐름생산방식 자체를 다른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주간연속2교대제가 공장의 절대 가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여야 한다.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대기를 오염시키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그런 자동차가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저임금 노동력에 기초한 저가 차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고, 다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생산방식과 새로운 작업체계가 필요하다. 더 오래 일해서 더 많이 받는 그런 체제가 아니라 적게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노동체제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주간연속2교대제는 그런 체제를 만드는 첫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