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데 이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가는 것 같다. 매일 매일 작업현장에서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죽었다는 얘기들이 흔하디흔한 흘러가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지난 3, 4월은 정말 더 많은 소식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고로 추락해서 죽고, 무너져서 죽고, 유기용제 중독으로 죽고, 과로로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는 얘기들을 거의 매일 같이 들렸다.
그 가운데 산재노동자의 자살 소식도 있었다. 현장에서 죽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받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산재가 승인 되면서 모두들 이제 됐다싶겠지만 이것도 이제 옛말이다. 필요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통증을 호소하고 치료받기를 원하고 있지만, 또한 주치의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절실한 환자들은 주치의 소견을 100% 믿지만, 그러한 절실함과 믿음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암울함으로 변하고 만다.
어떻게 환자의 고통과 통증호소가 증상고정이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는지? 그러면 평생을 통증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데 그것을 아는 순간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의학적으로 지식이 있거나 관련자는 아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갑갑할 뿐이다.
고 표만영 산재환자 자살
2007년 3월 28일 뇌출혈로 쓰러져 우울증과 적응장애로 치료받고 작년 9월 30일로 치료종결 된 산재환자가 자살했다.
처음 이 얘길 들은 것은 3월 29일 인천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남현섭 사무국장이 인천중앙병원에 병원상담을 갔다가 전해 듣고 나에게 알려 준 것이다. 처음 듣자마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싶었다. 치료 종결되고 6개월 만에 자살, 그것도 우울증과 적응장애를 안고 있는 환자가 자살한 것은 치료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유족들은 장례식과 충격으로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약 2주가 흘렀고, 다시 인천산재노협으로 유족보상신청과 관련해 상담이 들어 왔다.
문제는 유족보상신청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유족을 만나 이번 건은 단순히 유족보상만의 문제로 정리해서는 안 된다는 설득을 했고, 유족 측에서도 너무 억울하고, 분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폭력적 자문의사협의회와 뻔뻔한 근로복지공단
문제는 강제치료종결 이었다. 장기치료환자에게 근로복지공단이 강제로 치료종결 결정을 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보장하지 않은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프다는 환자에게 증상고정으로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이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황당했다. 그런데도 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를 통해 치료종결 결정을 내렸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자문의사협의회에서는 정신과 자문의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자문의사협의회에서 증상고정을 말하며,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치료종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자문의사협의회라고 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폭력적인 기구에 의해 산재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문제가 있었으면, 당시에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하면 되고 또는 재요양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환자가 잘못한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물론 다양한 제도가 있고 문제가 있으면, 이의제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종결 결정을 하면서 그들은 얼마나 신중한 판단을 내렸는가?’ 이다. 종결을 결정하는 기관의 당연히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으로 가족과 환자들에게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신중하고 책임 있는 판단이어야 하지만 지금의 자문의사협의회․근로복지공단은 그러하지 못하다.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치료 종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 보다 우선시 생각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이다. 반신불구의 환자는 하루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고 항상 곁에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고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을 위해 움직일 수는 없다. 또한 그럴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도 그들에겐 없다.
통증, 아픔, 병든 것…, 장기치료환자들의 심리상황
장기로 치료받는 산재환자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심리평가보고서 상의 질문문항에 고 표만영 산재환자가 답한 것을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너무나 절실하게 볼 수 있다.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 쓰러짐, 내가 늘 원하기는 - 안 아팠으면 좋겠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것은 - 통증,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나만의 두려움은 - 아픔,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 병 든 것․아픔,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 병 안 걸리고 열심히 사는 것. 넓은 장소나 거리에 나가면 두렵다, 혼자서 집을 나서기가 두렵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기가 두렵다, 혼자 있으면 마음이 안 놓이거나 두렵다,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까봐 걱정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근로복지공단이 말하는 장기치료환자들이 나이롱환자인 것처럼 매도하는 근로복지공단을 용서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말 빨리 치료가 끝나고 다시 예전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부러 치료기간을 늘리거나 아프지 않는데 치료를 받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아주 소수의 일이다. 그것이 전체 산재환자들로 매도하며 일단 장기 치료환자들을 치료종결 대상으로 결정하고, 또는 종결 시키고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이의신청을 하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오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강제치료종결의 실체가 드러나다.
기간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남발과 강제치료종결 문제가 심각하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불승인 관련해서 많은 싸움이 있어 왔다. 강제치료종결이 실질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거의 이번 건이 처음이었다. 실제 강제치료종결이라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으며, 싸움의 주체로 나서려는 환자의 가족이 없었다. 대충 짐작으로, 들리는 소문으로 강제치료종결이 많다고 들어 왔다.
그러나 이번 건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환자를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고 표만영 산재환자의 자살은 산재보험 재정고갈을 운운하며 산재보험개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이 강제치료종결로 산재환자들의 당연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요구했는가?
크게 요구되었던 것 중 하나가 법정기한 내 유족보상결정을 내라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 가지는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유족보상 결정은 청구 이후 13일 만에 결정을 내렸다. 보통 자살사건은 한 달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 처음에 공단에서도 20여일 이상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렸을까?
공단도 이번 건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이런 건들 대부분이 보상이 이루어지면 실질적인 싸움이 안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공개 사과 부분은 5월 10일 지사장을 통해 들었다. 물론 쉽게 그들이 사과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한 구체적으로 강제치료종결에 대한 사과도 아니었다.
지사장 왈 “행정절차상 오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지사장의 이름으로 사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사장의 이름으로 사과를 하면, 공단의 직원들이 일한 내용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면 공단의 직원들은 지사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사장이 아닌 개인적으로 정말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며 유족에게 사과하였다. 비록 지사장의 이름으로 사과한 것은 아니지만, 지사장이든 지사장 개인이든 그 두 인물은 동일한 인물임을 보았을 때, 그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쉬운 투쟁의 성과
이런 죽음 앞에 아직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기간 많은 열사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실제 제대로 된 투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위에서 공단이 급하게 유족보상 결정을 내고 지사장이든 개인이든 간에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이었다면, 좀 더 근로복지공단을 공격적으로 몰아붙이고 강제치료종결과 자문의사협의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대시키고, 동의 받을 수 있는 투쟁이 될 수도 있었는데 유족보상과 지사장 개인의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주체와 운동이 좀 더 내공이 있었다면, 좀 더 다른 성과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