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건강연대 회원 임형준
바야흐로 본격적인 규제완화 시대가 왔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후반 IMF 체제 이후 한국경제는 자본의 압력으로 자본의 자기증식을 방해하는 각종 규제 완화라는 큰 흐름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난 정권까지의 흐름이 규제완화를 은밀하게 뭔가 비밀스럽게(?) 처리해왔다면, 현 정부는 아주 선명하게 노골적으로 규제완화를 외치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사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의 경영자로 사업을 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숫한 규제들에 얼마나 치를 떨었으면 규제완화를 저토록 목청껏 부르짖을까. 이러한 점에서 특히 직업안전ㆍ보건과 관련한 영역에서도 수많은 ‘규제’ 들이 단지 ‘규제완화’라는 이유만으로 그 득실을 따져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폐지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 중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직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전보건 문제의 총 규모와 현황을 분석하고 구조적인 요인을 진단하고, 기존의 산업안전보건체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할 목적으로 수행하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이 글의 내용도 과거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내용을 최신의 증거와 함께 다시 한 번 발췌하고 정리하였을 뿐임을 밝힌다.
직장에서의 사고, 산재보험 가입자 1% 미만?
직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국가안전관리를 위한 직업안전 연구를 위해서, 먼저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이 다치는지를 파악해야만 다음 단계의 연구로 진행할 수 있다. 기초적인 통계가 있어야 문제의 크기가 큰 부분을 확인하고, 대책을 세울 수가 있고, 그리고 대책을 수행한 후 그 효과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식통계로는 이런 기초적인 사항도 확인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직장에서 사고로 인하여 산재보험을 이용한 사람은 전체적으로 79,675명에 불과하였다. 2006년 산재보험가입자가 1,168만 명 이었으므로, 산재보험가입자의 1%도 안 되는 사람만이 직장에서 사고를 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전체 사고의 극히 일부분만이 산재보험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적절한 통계라고 보기 힘들다.
때문에 본 연구진은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직장에서 사고 발생 총량을 추정하였다. 그 방법을 간략히 소개한다. 어떤 이유로든 다치는 경우에는, 그 다친 정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가볍게 다친 경우에는 굳이 병원을 이용할 것 없이 대부분 소독약 등으로 직접 치료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다친 정도가 중하여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곤란할 때는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은 의무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진료를 받은 기록은 모두 전산처리 되어 저장된다. 연구진은 이 점에 착안하여 2006년 한 해 동안 사고로 인하여 건강보험을 이용한 사람들을 성별, 연령별, 그리고 손상의 중한 정도에 따라 무작위로 표본추출 하여 전화설문을 수행하였다. 전화설문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이루어졌으며, 전화설문 전에 본 연구의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전화설문에 동의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설문조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약 18,000명이 전화설문에 응답하였으며, 이 중에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다는 응답자는 총 4,045명으로 전체의 22.5%를 차지하였다. 건강보험을 이용한 전체 사고 중 약 5분의 1 이상이 직장에서 사고를 당하여 병원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전화설문결과를 이용하여 2006년 한 해 동안 직장에서 사고로 다친 사람을 추정하였는데, 그 결과 한 해 동안 직장에서 사고로 다쳐 건강보험을 이용한 사람은 약 277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이 수치는 추정된 수치이므로 실제 숫자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산재보험 이용자 79,675명과 비교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다치고, 또한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이에 덧붙여 직업성 사고 추정자인 약 277 만 명 중에서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는지도 추정해 보았다. 이는 우리나라 산재보험이 전체 직업으로 인한 손상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계속 제기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다는 응답자 총 4,045명의 직업을 구분,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림어업, 자영업, 공무원, 군인인 경우를 제외하니 2,094명으로 전체 51.8%에 해당하였다. 또한 사고를 당했더라도 사고원인이 교통사고인 경우에는 자동차보험의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원인으로 교통사고를 제외하면, 1,460명으로 이는 전체 직업성 사고자의 36.1%에 해당하였다. 이러한 수치들을 이용하여 추정한 결과 277만 명 중 실제 산재보험의 혜택을 입는 사람은 약 100만 명에 불과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에 비하여 보장성이 강하여 건강보험에서는 보장하지 않는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의 혜택을 입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체계에서 소외된 건설・농림어업・비상용직・영세기업 노동자들
우리나라에서 전체 직업으로 인한 사고의 규모를 추정함에 덧붙여 본 연구에서는 직업의 특성별로 사고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직업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한 사람 2,000명과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사람 2,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역시 전화설문을 통해 직업의 특성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 농림어업, 제조업 등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직업ㆍ안전체계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노동자 개념을 채용하는 근로기준법의 부속법이다. 그러므로 자영업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림어업이나 임시ㆍ일용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업은 실질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망 바깥에 있어 이러한 취약 부분을 포괄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하겠다.
이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직업 특성으로, 고용형태별로는 일용직, 파견직 등 비상용직이 상용직에 비해, 그리고, 하청과 파견업체가 원청 기업에 비해 사고 발생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고용형태는 안전보건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상용직은 상용직에 비하여 안전보건체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많고, 하청이나 파견업체는 형식적인 사용자와 실제 작업장에서 업무를 지시하는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안전보건체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많아 이의 대책이 필요하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서는 근로자수 5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 기업의 사고발생 비율이 대규모 기업에 비해 높았고,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의 사고 발생비율이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 비해 높았다. 또한, 안전보건관리수준별로 볼 때 직장에서 사고예방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 사고발생비율이 높았고, 61시간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의 사고발생비율이 높았다.
직업안전보건청・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 도입 검토하자
지금까지의 결과를 종합하면, 직업안전 분야에서는 현재 존재하는 ‘규제’마저도 그 효과가 충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분야의 ‘규제완화’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사업장의 사고발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판단되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을 운영하기에 나쁜 나라’를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향후 직업안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체계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인 특수고용종사자, 농림어업인, 자영업자 등을 포괄하여 모든 직업인을 위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직업안전보건 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의 안전보건조직과 인력으로는 역부족이이다. 그러므로 직업과 관련된 안전ㆍ보건문제를 총괄하는 새로운 정부부처인 직업안전보건청 설립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 입장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각각의 조항에 준수 의무를 부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사업주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많고 복잡한 개별 조항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기계적으로 개별 조항 준수 의무만을 다하려는 경향을 보일 뿐 보다 적극적인 예방 활동으로 사업주를 끌어내기에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앞서 제시한 직업안전보건법 제정에는 열거주의 방식보다는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포괄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법이 사고에 예방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법을 어겨 처벌을 받는 것보다 이득이 된다는 생각을 사업주가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행 법체계에서는 위반해도 처벌 수준이 낮기 때문에 법적 억지력을 갖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하므로 이 부분의 개혁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안전보건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안전보건수준을 높이는데 유리하므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범위를 확대하고 그 역할과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크다. 그리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확대하고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를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대한민국 95%는 건강이 재산
따지고 보면, ‘규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직업안전ㆍ보건 분야의 규제들은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먹고 살기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95%에게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건강이 가장 소중한 재산일 터이므로 직업안전ㆍ보건 분야 규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규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