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월호
성수동.
서울시내 산업재해 최다발지역, 대기오염․수질오염도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곳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2천여 개의 일터가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섬유, 인쇄, 금속, 제화 등을 생산하는 영세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지난여름, 이곳에서 아주 소중한 활동이 펼쳐졌다. 영세사업장 밀집지구인 성수동을 중심으로 ‘영세사업장 화학물질 사용 실태조사’이다. 성동건강복지센터, 원진교육센터, 노동건강연대,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준), 금속노조, 인쇄노조가 함께 유해물질사업단을 꾸리고 2006년 여름을 거리 캠페인과 각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노동자와 사용자를 만나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어떻게 노출되어 있는지 조사한 사업이었다. 무작위로 선별된 69개 사업장 사업주와 노동자, 거리 캠페인에서 만난 노동자 등 모두 83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사업 총괄을 맡은 문종찬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준) 실행위원장은 “비록 조사대상 사업장 수와 노동자 수가 적었지만,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초의 조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유해물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MSDS 허점이 많이 발견된 점을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사업주가 조사를 환경규제로 여겨 협조가 안 돼 사업장 진입이 쉽지 않았던 점, 제조 공정을 이해해야 조사가 가능한 사업이나 물리적 시간의 제약으로 충분한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한 채 투입된 조사원의 한계로 사업 진행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지난 12월 20일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사무실 입주식 날 열린 영세사업장 화학물질 사용실태 조사결과 보고 결과를 잠깐 보고 넘어가자.
1. 조사 대상 특징
○ 사업장 대부분이 1인 이하 사업장 규모였으며 5인 이하 사업장은 36%
○ 참여 업종은 인쇄 37%, 금속업종 35% 제화업종 12%, 기타 사업장 16%
○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은 약 22%, 이주노동자 고용은 16%
2. 사업주의 안전보건 책임의식과 관리실태
○ 화학물질 선택기준 : ‘예전부터 써오던 대로’라는 대답이 50%, 그 다음이 가격으로 노동자 건강을 고려한 독성여부보다 품질안정과 소비자 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원료를 우선 선택하여 사용
○ 안전보건 교육 실시 : 응답자의 절반이 ‘아예 안전보건 교육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음. 교육을 수행하는 곳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요구하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 함
○ 클린 3D 사업 : 사업을 아는 영세사업장 사업주들은 24%에 불고, 극소수 이용자는 이 사업이 효과가 있었다고 응답
3. 작업현장의 유해물질 사용 및 관리 실태
○ 전체 환기시설 : 약 65%의 사업장이 ‘있다’, ‘없다’고 답한 사업장은 35%. 그러나 현장 조사과정에서 전체 환기라는 것은 대부분 자연환기로 인공적 환기체계를 가진 곳은 전무. 전체 환기시설이 있는 곳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도 부정적 응답이 많았음. 자연환기가 어려운 겨울철은 유기용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
○ 보호장갑 : 약 60%가 지급받고 있으나 면장갑을 쓰는 경우가 많았음. 참고로 유기용제를 취급할 때는 유기용제별로 다른 유형의 보호장갑을 사용해야 함. 보호앞치마, 보호장화, 방진마스크, 방독마스크 등의 지급수준은 20% 내외이나 효과성에는 ‘불편하다’와 ‘불편해서 착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다수
4. 노동자의 안전보건 의식 및 실태
○ 조사대상 노동자들은 해당 업종에서 일한 경력이 5년 이하가 26%였지만 현 직장에서 일한 근속이 5년 이하인 경우는 80.9%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불안정 고용구조를 보여줌
○ 화학물질 취급 : 노동자 자신이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음에도 MSDS 정보가 거의 없음. 특히 현장에 사용하는 유기용제 용기에 붙어 있는 상표와 내용물이 다른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음
○ 작업 중 느끼는 호흡기, 피부, 신경증상 : 노동자들은 가장 심각하게 냄새 문제를 제기, 그 다음이 피부증상으로 응답자의 1/4 가령이 가렵거나 따갑다고 했으며 피부가 빨갛게 된다는 노동자도 15%에 이름. 기침이 자주 나는 노동자,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비율도 20% 수준으로 나옴
○ 건강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적절한 보호구나 환기시설 ▽정부의 영세사업장 지원 대책 ▽건강검진 순으로 나타남
5. MSDS 분석
○ 확인된 화학물질 제품은 총 121개로 업종별로는 인쇄 58개, 금속 45개, 제화 6개, 기타 12개로 대부분 제품의 용도는 파악되지만 제품명의 정확한 명칭을 알고 있지 않음
○ 121개 제품 중 7%의 제품만이 MSDS가 있었으며 79%는 MSDS가 없다고 조사됨. 응답을 하지 않은 14%도 MSDS가 없는 경우로 볼 수 있음.
(1) 인쇄
○ 파악된 총 제품 수는 338개로 MSDS가 있는 제품은 323개, 없는 제품은 15개. 검토결과 306개의 MSDS가 ▽영업비밀 ▽정확하지 않은 명칭 ▽함유량 정보 부정확으로 MSDS로서 부적합. 특히 영업비빌이 표기된 경우는 303개에 이름
○ 기존 MSDS로는 현장 작업자가 성분의 유해성 및 기타 자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
(2) 금속
○ 총 235개의 물질 확인. 140개(60%) 물질은 ‘구성성분 및 함량’에서 정확한 정보 제공. 그러나 기계업종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으며 영업비밀이거나 기름 또는 오일 등으로만 표기한 경우가 대부분
요약된 결과에서 보듯이 성수동 일대 인쇄, 금속, 제화 노동자들은 대부분 안전과 건강문제에서 크게 소외되어 있으며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상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무엇인가 유해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골이 나서 괜찮다.”고 대답하는 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는 건강과 안전문제가 사치일 뿐이며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문종찬 실행위원장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앞으로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안에 ‘지역안정보건사업단’과 ‘유해물질사업단’을 꾸려 이번 조사사업에서 얻은 과제들을 중심으로 지역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은 조사했던 사업장을 다시 방문해 발간된 보고서와 앞으로 개발될 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유해물질 매뉴얼을 배포하고 교육사업도 계획 중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바로 조직되지 않은 90%의 노동자다. 성수동에서는 그동안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연대가 기반을 닦아 놓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문제의식이 있는 주체들이 모여 돌파구를 찾는다면 어렵지만 안 될 일은 아니다.” 문 실행위원장은 노동자들의 작업과 건강이 연결되었다는 문제를 기반으로 지역안전보건센터 설립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2007년 여름도 지난 해 못지않은 뜨거운 활동을 예고했다.
영세소규모사업장이 성수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건강과 안전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 사업장과 지역은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성수동은 조직되지 않은 90% 노동자들의 안전보건문제를 풀 수 있는 ‘어떤 모범 답안’을 만들어낼 조직과 인력이 있다. 우리가 성수동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