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00:58
이제 우리 사회에서 “성인지적 관점”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성인지적 관점(性認知的 觀點, Gender Perspective)의 의미는 대략 이러합니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 또는 상황이나 행동 모두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처한 현실이 다르며,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어떤 정책이나 행위가 특정 성에게만 이롭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특정 성에게만 이롭거나 불리한 것은 아닌가 검토하는 관점을 갖는 것을 성인지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건강권 운동은 금속노조 남성 활동가들이 중심에 서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남성과 여성 모두의 시각에서 “모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있다고 봅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세이프 워크 프로그램(SafeWork)에서 2000년에 성인지적 관점을 노동자건강권분야에 통합하기 위해 제안한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하겠습니다.
1. 국가의 노동안전보건정책 차원에서
건강증진 정책이 여성이나 남성을 위해 효과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과 성의 관계가 지금보다는 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시장, 작업장 배치와 디자인 등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건강증진 정책은 여성노동자의 세 가지 역할을 고려해야만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역할 한다는 것 말이다. 이 세 가지 역할들이 각각 어떤 식으로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상호 어떤 관계를 갖는지 이해해야 한다.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전략은 국가적 단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의 노동안전보건정책에서 기본 골격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특히 이 때 여성노동자가 집중적으로 많이 배치되어있는 산업과 업종에 대한 전략이 먼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특정한 직업에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것은 사고나 질병에서도 특별한 패턴을 발생시킨다. 모든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일반적인 접근법으로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할 때도 많다. 성에 의해 발생되는 건강 문제들은 좀 더 주의 깊게 조사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여성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더 나은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들을 정책에 반영시켜야 한다.
국가는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을 정책목표 차원으로 승격시켜야만 한다. 사업주와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에 여성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연결하고 별도의 정책들을 개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가적 단위에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한다. 특히 법률을 제정하거나,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노동자 참여제도를 만든다거나 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2. 산업 단위에서
산업이나 직업은 여성노동자들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변화가 꼭 필요한 대상이다. 특별한 보호 프로그램들이 시행되어야만 한다. 산업이나 사업장 차원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노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위험요인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각 직업별로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사회심리학적인 요인이나 조직관련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작업방법을 개선한다거나, 디자인을 새로 고치는 것은 위험요인들을 저감시키는데 필요한 대책들이다. 여성들이 월등히 많이 일하는 직군에서 기술 향상이나 새로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3. 개인 수준에서
안전보건 서비스를 통해서 여성노동자들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예방적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작업을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된 여성노동자가 있다면, 기술개발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감소시켜야 하며, 작업자의 필요에 따라 업무를 재배치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재활훈련 등을 제공해야 한다.
임신 중 노동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임신 중의 여성에게는 힘든 일이나 야간근로를 시키지 말아야 하며, 방사능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항상 작업장 내의 모든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하지, “여성만 특별히”라는 식의 접근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 육아나 가정 일에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부담을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4. 개개인 특성 고려해야
여성의 신체적 능력을 일반화하여 여성은 약하고 남성이 필요하다는 식의 생각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떤 남성은 여성보다 약할 수도 있으며, 나이와 성을 떠나서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더 바람직한 것이다. 따라서 안전보건과 관련한 각종 기준들은 나이나 성을 떠나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보호될 수 있는 수준에서 제정되어야만 한다. 남성과 여성에 대해 별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여성은 차별을 받으며, 남성은 직업병이나 사고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게만 만들어져 있는 방사선 노출이나 생식독성과 관련한 문제들은 남성들에게도 확대되어 연구되고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문제이다.
5. 국가 통계 개선
국가의 산재통계에서 여성과 관련한 내용들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성의 안전보건 문제가 무엇이 있는지 정보가 불충분해진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임신 중 산모의 사망과 관련한 통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 자료는 여성 건강과 관련한 중요한 지표로서 기능한다.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관련한 지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들은 많은 경우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거나 비공식적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노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안전보건 문제는 공식적 통계에 전혀 잡히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믿을 수 있는 지표가 없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각각의 산재통계를 제대로 구축한다면 국가의 예방정책을 수립하거나, 국가 기준을 수립하거나, 안전보건 가이드를 만드는 등에서 매우 유용한 것이 될 것이다.
6. 여성 참여
여성들은 더 많이 대표자로 선출되어야 하며 정책 입안과정에 직접 개입해서 여성 건강에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여성들의 각종 경험과 지식과 기술은 여성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여성노동자들을 별도로 조직화할 필요도 있다. 국가와 산업 차원 모두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참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충분한지 검토와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