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00:43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 김미정, 일과건강 2008년 10월호 기획특집
나의 어머니께서는 40세가 넘으면서부터 진통제를 자주 드셨다. 두통과 요통, 어깨 결림 등으로 개운치 않은 얼굴을 자주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직장을 다니셨던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일을 도우시던, 장사를 하시던 말이다. 내가 자주 놀러 가던 친구 어머니도 “에이고, 지겨워”라는 말씀을 늘 하시면서 항상 두통에 시달려 머리를 질끈 묶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난 그때 우리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친구의 아버지가 속상하게 해서 어머니들이 아픈 줄 알았다. 그래서, 그 두 분을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다 건강하게 사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분들만의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성인지적 관점 필요한 ‘어떻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 투쟁 100년을 맞아, 여성들이 자신들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위해 투쟁해 온지 100년이 되었는데 과연 현재 여성들의 삶은,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한지 살펴봐야 한다는 고민 속에 그 동안 많이 간과되어왔던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과연,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은 진정 ‘권리’로써 보장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2007년 조사되었던 여성연맹 사례와 보건의료노조 간호사 사례 등을 모으고,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 저하와 건강불평등 심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건강장해 문제점 토론회를 개최하여 사회적으로도, 노동조합 내적으로,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여성노동자 건강권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다. 모인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토론회 제목을 ‘추락하는 여성노동자 건강권 이대로 좋은가?’라고 하자는 것이 중론이었다. 추락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애초 여성에게, 여성노동자에게 건강이 권리로서 보장된 적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강 문제에서 성인지적 관점은 별로 드러나 있지 않았다. 혹자는 건강함에 있어서 여성, 남성의 차이가 있냐고 하지만 ‘어떻게 건강할 것인가’는 분명 성인지적 관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공장에서 선반을 어떤 위치로 놓을 것인가에 따라서 여성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고용차별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차별뿐 아니라 여성다수 직종에 일어나는 ‘간과’ 혹은 ‘무시’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95.8%가 여성인 돌봄 노동의 영역을 보면 그 현실은 여실히 드러난다. 김유선(2008)에 따르면 간병인, 사회복지직, 상담전문가, 보육교사 및 보육사 등 돌봄 노동 종사자는 2006년 현재 모두 40만 6천명이고 이중 38만 9천명(95.8%)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돌봄 노동은 대부분 가정에서 무급으로 행해지던 노동이라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로 간주되기 보다는 의례 여성이 하는 일로 ‘사랑과 희생, 봉사’ 등의 개념으로 포장되기 일쑤이다. 때문에 이들의 노동조건, 즉 정당한 임금은 보장되는지 노동시간은 법에 따라 지켜지는지 휴게시간과 장소는 있는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공정한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조건 속에서 과연 건강권 문제가 거론 될 수 있겠는가?
# 주 6일 근무에 남은 하루는 밀린 가사 일
공공노조 보육분과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2006년 기준으로 주당 53.9시간, 주6일 근무를 하는데 이들은 아이들 식사를 도와주고, 뒷정리를 하며 양치질까지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점심식사 시간은 평균 3.5분이라고 한다. 간병노동자는 더욱 심각하다. 희망터에 따르면 24시간 연속 6일 근무를 하기 때문에 주당 144시간을 일한다.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는 7일 연속 일하는 때도 있다. 중환자는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해 식사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는 것은 일상이고 마땅히 편히 앉아 식사를 할 곳조차 없다. 간병 노동자는 항상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잠을 깊게 잘 수 없어 생기는 안구 건조증, 근골격계질환, 자상 등 부상, 폭력 등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주 6일 근무하는 경우, 토요일 오후에 나가서 일요일에 병원으로 돌아오는데 대부분 가사 일까지 고스란히 떠맡고 있어 그 하루 사이에 밀린 가사 일을 다 해야 한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간병노동자 건강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사족이리라.
이러한 문제는 비단 보육교사나 간병노동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 여성의 경제활동 추이를 대략 보면, 경제활동 참가율은 50.2%, 고용률은 48.9%였다. 경제활동참가율은 40대가 65.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통계청, 2008). 이 여성노동자들 중 70% 이상이 고용형태로 보면 사회적, 법적 보장이 취약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이 상황에서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이 어떠한 수준에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는 어떠한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은 분명하다. 때문에,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여성 집중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건강권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하고자 ‘여성노동자와 건강권’ 연구를 시작했다. 많은 여성 집중 사업장 중에서도 돌봄 노동의 영역은 향후 고령화 사회, 돌봄 노동의 사회화로 보다 광범위한 노동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영역은 대부분 사업주도 모호하고 일하는 현장도 가지각색이며 일하는 형태 또한 다양할 것이기에 보다 집중적이고 세밀하면서도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우선 간병노동자를 중심으로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건강권 문제를 현장 실태 조사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향후 노동조합은 무엇을 할 것인지 법과 제도 차원에서는 어떠한 근거를 마련할 것인지 또 여성노동자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이 연구가 보다 포괄적인 돌봄 노동 영역의 여성노동자들, 더 나아가 전체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건강권을 위해 진일보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