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00:09
일과건강 2008년 10월호 기획특집
광산에서 일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갱도가 언제 무너져서 매몰될지 모르고 각종 먼지 때문에 폐에 먼지가 쌓여 숨쉬기도 어렵다. 그 무거운 것을 힘주어 작업하니 근골격계질환이 없을 리 만무하다. 광산노동자의 산업재해자 수를 보면 남성이 월등히 많다. 2006년 산재통계에 따르면 광업에 종사한 노동자는 15,656명이었다. 이 중에서 1869명이 재해를 당하였는데, 재해자 중에서 1828명이 남성이었고 여성은 41명이었다. 남성이 여성보다 45.6배나 재해를 많이 당하고 있다. 이것을 이유로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까?
# 10분의 1로 줄어든 재해율 비교
2006년 당시 남성과 여성의 노동인구 비율은 2008년 노동통계연감 자료에 나와 있다.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2월 현재 광업에 종사하는 인구수는 총 16,884명이다. 이 중에서 남성은 15,250명이고, 여성은 1,634명이다. 이 들 중에서 사업주와 무급종사자를 빼면 총 16,091명이 노동자이다. 이 중에서 다시 남성은 14,670명이고, 여성은 1,421명이다. 숫자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재해자수를 적용하여 남성과 여성의 재해율을 구해보면 각각 12.5 %와 2.9 %가 나온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4.3배 정도 재해율이 높다. 애초 45.6배에 비하면 딱 1/10로 줄어든 셈이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2006년 산재통계에서 집계한 제조업 노동자수는 3,032,667명이다. 노동통계연감에서 제조업 종사자는 3,251,803명이며, 이 중에서 자영업자와 무급종사자를 제외한 노동자는 3,073,508명이다. 매우 유사하다. 제조업에서 남성과 여성의 재해율 차이는 2.5배 정도 된다.
그래도 남성이 더 많이 다치지 않느냐고 한다면, 이제는 각 산업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이 맡고 있는 일을 비교하여 그 속에서 직위와 직업에 따른 재해율을 다시 구해서 비교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런 예를 보여줄 수도 있다.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과 교육․서비스업에서는 직업병 환자가 여성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이 두 업종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위험한가?
남성과 여성의 재해통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좋지 않은 의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산재은폐 많은 비정규직 대다수는 여성
산재은폐가 심각하면 산재통계는 믿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은폐는 매우 심각하며, 이 때문에 노동자건강권운동 진영에서는 재해율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해율이 0.7%라지만, 실제 재해율은 4% 이상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바로 이 산재은폐가 성별 차이를 크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어떤 사업장의 누가 산재은폐의 희생자가 될까?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여도, 공상처리를 하거나 개인이 자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잘 알고 있듯,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이 2007년도 비정규직 실태를 분석한 글을 보자.
“남자는 정규직이 479만 명(52.6%), 비정규직이 432만 명(47.4%)으로 정규직이 많다. 여자는 정규직이 216만 명(32.5%), 비정규직이 447만 명(67.5%)으로, 비정규직이 2배 이상 많다. 남자는 2명중 1명, 여자는 3명중 2명꼴로 비정규직인 것이다. 이러한 남녀 간에 차이는 주로 장기임시근로와 시간제근로 및 특수고용, 가내근로에서 비롯된다. 장기임시근로는 남자 25.9%, 여자 40.9%, 시간제근로는 남자 4.4%, 여자 12.5%, 특수고용형태는 남자 2.4%, 여자 6.4%, 가내근로는 남자 0.2%, 여자 2.1%로 격차가 크다.”
출처 : 2007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김유선
그리고 이것을 다시 주요 산업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 같은 자료, 2006년과 2007년 자료만 발췌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도소매업이나 숙박․음식점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제조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근거로 여성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하여도 산재처리가 수월치 않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 미용사는 산재 없어서 신청 안 할까
산업과 업종, 직종에 따라서 산업재해 형태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광업에서는 주로 부상과 진폐증이 심각하다. 건설업에서는 추락과 전도 같은 재래형 재해가 많다. 제조업은 근골격계질환이 많고, 다양한 재해가 발생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여도 좋을까?
우리나라 근골격계질환은 114 전화교환원 여성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양상은 사무직군과 서비스직군의 근골격계질환은 묻혀버리고,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의 근골격계질환이 부각되었다. 왜냐하면 1990년대 말부터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한 근골격계질환 인정투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근골격계질환이 위험이 가장 높은 직군 중 하나가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간호사들의 근골격계질환은 미미한 수준이다. 산업재해는 싸워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여성들이 많은 직종에서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지 않거나 직업병을 인정받는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미용사들의 피부질환과 천식, 근골격계질환 같은 것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2000년에 미용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용노동자들은 천식이나 피부질환에 시달리는 비율이 매우 높지만, 산업재해로 신청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근골격계질환에 걸려도 산재신청은 한 명도 못하고 있었다.
출처 : 2007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김유선
그리고 이것을 다시 주요 산업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그림 1. 언제 피부가 안 좋아지는가?
▲ 그림 2. 피부증상이 나타난 시기는?
▲ 그림 3. 건강문제 때문에 일을 쉬어본 경험
▲ 그림 4. 일을 쉬게 만든 질병
# 광산에서 일해야만 먼지 마시진 않아
2006년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산업별 성별 발생수준은 아래 표와 같다. 전체 재해자 중에서 남성은 83.17 %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수치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다섯 배 더 위험하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재해율을 비교하여 남성이 여성보다 재해가 더 많다는 주장을 하면 어떤 정책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남성안전보건을 따로 만들어낼까? 남성만 모아서 따로 교육을 해야 할까? 딱히 정책적인 이득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더 위험한 곳에 일하니까 남성이 더 우월한 것일까? 그러니 남성에 대해 사회가 더 잘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일까?
위험을 비교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위험을 비교하는 행동은 노동자들이 하지 않는다. 오직 못된 사업주들만이 위험을 비교한다. 의자를 달라는 서비스노동자들에게 “네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라고 쏘아붙이는 점장들이 있다. 더 위험한 일을 얘기함으로써, 눈앞에 놓인 위험을 무시하는 것이다. 약 20여 년 전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 “너희가 광산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먼지 때문에 죽겠다고?”
위험을 비교하지 말자. 우리 노동자에게 몸뚱아리는 하나뿐이다. 내 몸이 아픈 것이 중요하다. 그 아픔을 겪는 당사자 입장이 중요하다. 그것이 참을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고통을 비교하여 스스로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 우리 노동자들은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