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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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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은 저녁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다음날 새벽 1시부터 파업을 참가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배낭을 싸는 일에 시간을 너무 소비했고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지각을 면하고 저녁 7시부터 근무를 시작하였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이 직장에 들어와서 세 번째 맞는 파업이지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처럼 파업에 관심 없는 사람조차도 참여할 정도로 이번 파업은 무엇인가 달랐다. 파업하면 항상 떠오르는 임금인상이라는 조건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대신, 철도 공공성 강화라는 생전 처음 보는 조건을 내건 파업이었다. 

야간 근무를 하며 초조하게 시간은 흘러 3월 1일 1시에 이문 차량기지로 이동하였고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만 명이 훨씬 넘는 철도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철도 생활을 하며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보였고, 지나치며 인사만 나누었던 사람들도 보였으며, 철도에서 같이 일하는 부부가 둘 다 참여하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런 모습들을 본 순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하여 안심했고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차량기지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틀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틀 간 차량기지에서 농성을 하고 각 지부장 지시에 따라 각 지부별로 산개를 하였고 거기에서 우리 지부는 하루를 같이 보낸 후 10명 이내의 조 단위로 다시 흩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소수로 움직여서 그런지 다 같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여 조금씩 복귀를 서두르게 되었다. 결국은 노동조합에서 복귀지시가 내려와서 3월 4일 오후, 소속에 복귀하였다. 근무 중에 무단으로 직장을 이탈했던 나는 소속 복귀 시한을 어긴 이유로 직위해제를 당했고 직장 내에서 약 일주일가량 교육을 받던 중 3월 10일자로 현업에 복귀하였고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파업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느낀 것은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노동조합은 나름대로 열심히 파업을 준비했지만 여론을 이용하는 방법이 조금 부족한 듯 했다. 파업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우리가 왜 파업을 해야만 하는가?’를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설득시키고 시작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들 생각은 “저것들 툭하면 시민을 볼모로 파업하는구만”’ 이었을 것이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없고 단지 파업을 한다는 자체에 거부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설득 작업에 더 오랜 시간을 투자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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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왜 파업을 하는지’에는 관심없고 앵무새처럼 ‘시민불편’만을 반복했다.




다음으로 느낀 점은 우리나라 언론이 너무나도 편파적이라는 점이었다. 파업을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신문과 방송사 뉴스는 ‘교통대란’에 집중되어 있었다. 위에서도 약간 말한바와 같이 ‘왜?’ 라는 내용은 없고 바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여 뉴스를 접하는 국민들이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다른 말을 한들 들릴 리가 있겠는가...  

 그 예로 산개를 하던 중 전철 안에서 들은 A와 B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한다.

 A : 저 사람들도 파업하는데 이유가 있겠죠.

 B : 이유는요. 저 사람들 월급을 5백만원이나 받는데요. 

 A : 설마요. 그런데 파업을 한데요? 

 B : 그러니까 나쁘다는 거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뿐 이었다. 이런 것이 여론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중 하나이다. 5백만원을 받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30년 이상의 경력자가 보너스에 수당 포함이 다 되는 달) 그것이 전부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과연 알고는 있을까? 하물며 이번 파업은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하여튼 이번 파업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파업이었고, 앞으로도 정당한 요구 조건을 내세우고 싸우는 파업이 있을 때는 언제라도 다시 참가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사건이었다. 끝으로 파업에 참가한다고 말했을 때 나보다 먼저 나서서 “꼭 성공하고 오라”고 말해준 나의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참고로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요구한 내용은 임금인상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 △철도 공공성 강화 - ex) 장애인 및 노약자 할인 축소 반대 △해고자 복직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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