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시대,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의미

2012.03.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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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범 교육실장, wioeh@paran.com

 

1. 노동자 건강권 문제는 근무조건 때문에 발생
노동자건강권 문제는 노동자의 근무조건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근무조건의 열악함은 곧바로 또는 일정 기간 후에 건강의 문제를 낳는다. 예를 들어보자.

 

정규직으로 일하던 노동자가 구조조정으로 “건물 및 창고 등의 관리업”에 속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경비가 되었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았다. 몸에 전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났지만 일을 건너뛴다는 건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 내 몸뚱이를 팔아먹을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악물고 일했다. 그리고 쓰러졌다. 뇌출혈.

 

핸드폰 액정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한 여성노동자는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겨받고 있다. 남편이 산재를 당해 일을 쉬고 있어서 점점 잔업과 특근에 목을 맸다. 액정 검사하는 과정에서 쓰는 물질이 냄새가 심하긴 했지만, 오래 일하다보니 전보다 더 머리가 띵했다. 참고 일했지만 결국은 하반신을 못 쓰는 신경마비가 왔다.

 

2. 양극화는 근무조건 후퇴의 주범
만약 경비업을 서면서도 힘들 때 일을 쉴 수 있었다면, 유해물질을 취급하면서 잔업과 특근을 전혀 안할 수 있었다면 노동자들에게 건강문제는 극단적인 형태로 발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 벌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몸 관리할 시간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삶의 처지가 점점 더 궁핍해져가는 과정은 직접적으로 근무조건을 후퇴시킨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덜 가진 노동자, 즉 저임금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은 양극화 심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노동빈곤층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3.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
안전보건문제에 대응하는 사회 유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 기준을 지켰는지 여부를 따져보고 일정 수준 작업조건을 관리하는 사회(사전관리형 사회)이다. 또 하나는 기준이 없거나 있어도 감독기능이 약해서 문제가 터졌을 때에야 대응하는 사회(사후대응형 사회)이다. 당연히 사전관리형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사전관리형 사회의 관심은 기준의 충실성과 감독 범위이다. 사후대응형 사회의 관심은 당장 터진 문제 밖에는 없다. 그나마 문제의 대책도 미봉책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집행결과에 관심도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두 번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터져야만 그때 가서 대책을 마련한다. 올해 중국인 노동자가 DMF로 사망하자 전체 특수건강검진기관 감사를 실시했다. 노말 핵산으로 앉은뱅이 병이 발생하자 노말 핵산 쓰는 사업장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사전관리형 사회  사후대응형 사회   
정책적 관심  기준의 적합성과 사업주들의 기준 준수 정도  발생된 문제(집단중독, 폭발사고)
정책집행 수단 - 현실적인 작업환경 및 근로조건 기준
- 실질적 감독행정과 강력한 처벌
- 노동자 참여 및 기본권(작업거부 등)
- 명목상의 작업환경 및 근로조건 기준
- 사업주가 무서워하지 않는 낮은 처벌수준의 법과 허술한 감독행정, 이벤트성 집중 단속 
결과 - 재래형 산업재해의 지속적 감소
- 새로운 직업병 및 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 재래형 산업재해는 존속되는 채로 저임금 노동자에게 위험전가 집중
- 새로운 직업병이나 재해를 인정할 수 없음 

  
4. 사후대응형 사회에서 노동자 건강권 투쟁과 양극화
사후대응형 사회가 사전관리형 사회로 전환되는 계기는 노동자 건강이 어느 수준 이상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확립이다. 이를테면 1990년대 초반부터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알권리가 문제제기 되었으나, 화학물질에 의한 노동자들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던 중 80년대 들어 인도 보팔 화학공장의 폭발사고로 경각심이 확대되면서 미국에서부터 알권리법이 제정되는 과정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사전대책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보건 문제는 매우 다양하며, 어떠한 문제에 관심 갖고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느냐는 운동주체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진영이 조직노동자에게만 관심을 갖는다면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대안으로 노동조합 권리 확대를 제시하게 될 것이고, 제조업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교대제에 의한 심혈관계질환, 단순반복 작업에 의한 근골격계질환이나 유해물질에 의한 직업병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너무도 당연히 옳은 것이지만, 양극화 심화과정에 의해 나타나는 재래형 안전보건 문제 집중이라는 문제는 또 다른 관심 속에 제기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남게 된다. 즉, 빈곤노동층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구조 속에 발생되는 건강과 안전의 심각한 결과물들을 우리 사회에 드러내고 문제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투쟁은 별도의 관심과 활동으로 조직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빈곤노동층의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은 화학물질 관리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능한 임금 지급과 과도하지 않은 노동시간의 조절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빈곤노동층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 자체는 양극화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양극화 확대저지 대책을 요구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무슨 문제가 있어야 관심 갖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5. 희망을 만드는 움직임
불행히도 빈곤노동층 노동자들은 잘 조직되어 있지 못하며,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총의 산하 연맹 중에서도 여성연맹, 서비스연맹, 건설연맹, 택시연맹 등은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면서도 역량이 되지 않아 문제제기를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수많은 지역노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 또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외부에서 이들을 지원할 필요성은 매우 큰 상황이다. 그러한 지원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입장에서 스스로 문제제기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첫 번째 희망은 민주노총의 노동안전보건위원회가 취약계층 분과 건설을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산하 연맹 중에서 금속, 화섬, 공공, 보건을 제외한 나머지 연맹에 대해 각 조직별 조합원들 상황을 정리하고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일을 논의하고 집행하기 위한 취약계층 분과가 마련되는 것이다. 앞으로 취약계층 분과는 민주노총 정책자문단과 해당 연맹들로 구성될 것이며 각종 조사사업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희망은 노동자건강권 문제와 노동복지 문제를 연결하여 풀어나가는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연대와 같은 활동이다. 이들은 올해 성수동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지역 내에 어떻게 유통되며 어떠한 상황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영세사업장의 빈곤노동층이 집중된 지역에서의 안전보건 활동들은 주로 여러 단체의 활동 속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전국에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는 안전보건 단체들의 역할에서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등에 관심과 사업 확대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과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적극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간단히 마무리 해보자. “조금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다가가서 함께 안전보건 문제를 드러내고 투쟁하는 것”이야 말로 시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분명 역사적으로 정당하며 의미있는 활동 속에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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