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21:22
○○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 오종진, 일과건강 2006년 10월호 기획특집
1. 맨/아워 협상에서 배제되는 사내하청 노동자
얼마 전 키퍼 직책을 가진 조합원이 허리 통증을 호소해 요양신청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척추 분리증 불승인”이었다. 이제 갓 20대 중반인 동지가 척추분리증으로 드러누운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장에서 키퍼는 곧 여유인원이다. 여유인원은 상대적으로 직접 공정을 타는 노동자들보다 힘이 덜 들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이 동지의 근무환경을 보면 오히려 더 빡세다. 말이 여유인원이지 항상 라인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공정이 사고자도 많이 생기는 공정이어서, 키퍼는 항상 부담공정을 돌아가며 일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특근은 한 번도 거르지 못하고 때로 지원특근(교대조에 결원이 생길 경우, 키퍼가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도 나가야 했다. 그 고충이 오죽했을까?
신차투입, 공정개선, 아무튼 온갖 명목으로 현장은 일상적으로 맨아워 협상이 진행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배제된다. 분명 같이 라인에서 일하고, 맨아워 협상의 당사자임에도 배제되는 것이다. 그 결과 맨아워 협상이 끝나면 비정규직은 더욱 힘들어진다. 정규직의 맨아워 협상에서 비정규직 공정은 “어떤 공정을 업체로 돌리는가?” 형식의 거래 대상일 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비정규직 확대 금지”를 하자고 한다. 공정은 늘고 일은 힘들어지는데 사람을 보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 몫이 된다.
2. 아파도 말 못한다.
몸이 아파 하루를 쉰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 다음 날 출근하면 기다리는 건 동료들의 질책. “너만 몸 아픈 게 아니다. 사람하나 빠지면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아느냐. 너 주차, 월차 있고 없는 게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리고 이런 말 뒤에 항상 따라오는 말.
“너 그러다가 잘린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건 “나는 몸이 약해 라인을 못 타요. 나는 정신력이 약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아파도 일단 출근을 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 하긴 이건 정규직도 마찬가지더라. 괜히 정규직들이 과로사로 죽어갈까.
3. 첩첩산중, 비정규직 건강권 쟁취 투쟁
노조 활동은커녕 노조 인정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건강권 쟁취 투쟁은 정말 첩첩산중이다. 사업장 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여유인원 한 명 확보하려 하면 바로 전면전이 된다.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 하더라도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문제는 곧 ‘불법파견’ ‘원청 사용자성’이 걸리기 때문에 회사는 단 하나의 요구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지회는 여유인원 확보를 위해 싸우다가 해고자 1명, 그리고 무수한 징계자가 생겼고 이외에도 투쟁간 후폭풍이 장난이 아니다. 여유인원 확보는 분명 ‘근로조건’의 핵심임에도 법원은 여유인원 확보 투쟁이 쟁의행위 목적이 될 수 없는 ‘경영상 문제’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여유인원 요구는 불법이라는 말이다. 건강권에 관련한 모든 문제들이 마찬가지이다. 쟁의행위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미친 사용자가 쟁의행위도 없는데 요구를 수용할까.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건강권 쟁취 투쟁은 ‘커다란 희생’을 요구하는 투쟁이고, 아직 조직력은 미약하다. 안타깝게도 정규직들은 이 문제를 외면한다. 정규직 역시 “물량에 목매달고 돈에 건강을 파는” 입장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생산성을 높여주길 원한다. 생산성이 높아야 “돈 되는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과 내 건강은 노조가 지켜주는 것이란 믿음이 합해진 원청과 원청노조의 담합으로 비정규직 노동강도는 강화된다.
비정규직 건강권 투쟁은 넘어야 할 산, 깨야 할 벽이 너무나 많다. 거꾸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노동운동의 바닥을 치고 나가는 투쟁이기도 하다. 방금 또 전화가 왔다 산재문제로 누군가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한다. 걱정 반, 기대 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