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20:49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 조합원․영세사업장노동복지연대 집행위원 문종찬,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기획특집
사회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2~3일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그 달 수입에 손실이 생기고 틈이 생기는 사람들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치료 받고 일하는가? 아니면 그냥 참아가며 일하는가?’를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2~3일 일하지 않으면 당장 그 달 생활에 틈이 생기는 노동자들, 그들이 바로 비정규직이며 영세업체 노동자들이다. 2~3일 치료 받을 정도면 아프거나 다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이며 영세업체 노동자들이다.
‘2005년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실태와 복지요구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주 동안 통증이 있거나 생활 불편을 느낄 정도로 아픈 경험이 있는지의 응답에서는 일반 인구집단보다 남성은 23.5배 여성은 25.3배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주당 노동시간은 52.4시간으로 조사되었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야근 한 번 더하기 위해선 평소에 절대 지각, 조퇴가 없어야 하며 중간관리자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런데도 아프지 않다면 말이 안 된다. 또 같은 조사에서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 ‘가벼운 사고나 질병이기 때문에(40.3%), 잘 모름(19.4%), 사업주 강요(11.3%)’로 나타나 다치거나 아프긴 한데 정도가 심하면 사장이 치료비 정도는 보태주고, 그도 아니면 내돈주고 치료하거나 그냥 참는다는 것이다.
또 병원 이용시 느끼는 어려움은 ‘시간이 없어서(43.2%), 치료비 부담(33.3%)’으로 답하고 있다. 한 마디로 돈도 없지만 시간이 없다. 근무시간 중에는 엄두도 못 내고 퇴근하면 병원이 문을 닫는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회보장제도(산재보험) 수혜자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이와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위 조사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산재보험 가입률은 61.1%에 불과하다. 그것도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더 낮아져 2~4인 사업장은 44.5%, 1인 사업장은 10.5%에 불과하다.
#살인강도에게 형법 해당 조항 개선을 맡겨?
사태가 이지경인데 정부와 자본가 집단에서는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며 산재인정기준 강화를 뼈대로 하는 산재보험제도 개선안을 낸다고 한다. 이들에게 양심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지만 차제에 제도 개선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당사자 참여 문제가 제고 되어야 한다. 정책 결정과정과 시스템 운영과정에서는 철저히 소외시키면서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앙과 지역에서 노동자들 의견이 개입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산재인정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비정규․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휴일도 없는 장시간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수도 없이 다치고 병에 걸리지만 정작 산재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 태도는 ‘당신 아픈 것을 당신네 사장이 인정하겠소? 업무상 얻은 병이라는 것을 증명을 하던 사장에게 인정을 받아오든 하쇼.’라고 나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앞서 실태조사를 예로 들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는 비정규․영세업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거의(?) 100% 업무와 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만 요인으로 보더라도 언젠가는 병들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열악한 작업환경은 어찌 볼 것인가? 퇴근길에 넘어져 다친다고 해도 분명 일반 인구집단에서 그럴 일이 일어날 개연성보다는 수십, 수백 배 비정규․영세업체 노동자들 경우에서가 높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는 군림하려는 근로복지공단, 수익을 내려는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구조적 수술을 단행하지 않고 산재보험 제도개선을 운운하는 것은 살인강도에게 형법 해당 조항의 개선 방안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휴업급여 등에 관한 문제다. 현재 70%의 휴업급여는 다시 말하면 30%의 임금손실이다. 당장 눈앞의 1, 2만원 때문에 연장근로 경쟁을 벌이고 국민연금 들지 않으려는 노동자들에게 평균임금의 30% 손실을 감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일 할 수 없을 만큼 다치거나 아프더라도 웬만하면 하루빨리 작업장으로 돌아가 일하기를 원한다. 웬만하면 참거나 스스로 치료를 조기에 종결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지방정부에서 보전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이외에 좀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비정규․영세업체노동자들-불안정노동자들은 항상적인 해고 위험에 노출되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노동자들, 술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내 살 파먹고 뼈 깎아 먹고 사는 거지 뭐. 2부제 공장 20년이면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늙어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그래도 새끼 하나보고 사는 거지. 뭐. 지가 한다고만 하면 해줘야지 애비 된 입장에서.”
정말이지 목숨 던져서 다음 세대를 키우고 이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가끔은 정말 누구를 위해서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산재환자 도덕적 해이 운운하면서 나이롱 뽕 교통사고 환자 같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없던 병도 생기려한다. 차라리 개선이라는 말을 하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