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20:42
원진교육센터 교육실장 김신범,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기획특집
한참 산재보험 논의가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답답했다. 워낙에 뻔뻔한 경총인데 회의록마저 공개되지 않는다면 안에서 도대체 얼마나 난리를 떨고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단병호 의원실을 통하여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발전위원회 회의자료를 요청했고, 몇 가지 자료를 받아보았다. 헉, 이럴 수가!!! 경총이 아예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래는 산재보험료 징수와 관련된 경총의 주장이다.
2006년 6월 20일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발전위원회 간사회의 자료 중에서
1.개별실적요율 수지율 산정방식에서 최근 연도 보험급여지출 가중치를 높이고 작업관련성 질환을 제외시켜야 함.
2.개별실적요율 적용 대상을 10인 이상 모든 기업으로 확대하고 규모와 업종에 따라 보험료 증감 폭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함.
3.안전교육을 이수한 위해·위협 업종 중소사업장의 보험료 할인 실시해야 함
※ 개별실적요율 :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에 따라 보험요율을 정하는 것으로 재해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 반대말은 평균요율.
이게 무슨 얘기인가? 보험료를 기업마다 매길 때 산업재해를 반영하고 있는데, 직업성질환은 빼고 사고만 다루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중에서 직업성질환은 주로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근골격계 질환은 대형조선소, 자동차 완성사 등에서 집중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그 이유는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서 그나마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근골격계 사업을 진행해서 환자를 찾아내고 산재신청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고성 재해는 주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업성질환을 빼고 사고성재해만으로 보험요율을 정하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대규모 사업장의 보험료율은 낮아지고, 중소영세사업장의 보험요율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보험기금 중에서 대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을 낮추고 그 부담을 중소영세사업장에게 전가하겠다는 뜻이다.
두 번째 얘기도 같은 얘기이다. 현재 개별실적 요율은 30인 이상 사업장만 적용되고 있다. 그 이하는 그냥 종업원 수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있다. 경총 주장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들은 사고가 많이 나도 보험료를 똑같이 내니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10인 이상 모든 기업이 개별실적 요율을 적용하면 대기업 부담 중의 일부가 10인~30인 사업장으로 전가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주장을 펴면서 마지막으로 생색내듯 중소사업장은 안전교육을 이수하면 보험료를 할인해주자는 식으로 도망갈 길을 터놓는다. 정말로 경총이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왜 중소기업협동중앙회는 경총을 상대로 들고 일어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이란 무릇, 연대와 평등 정신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능력있는 기업들은 따로 산재보험 가입하고, 능력없는 기업들은 가입도 못하는 식의 사보험이 아니라 대규모 사업장에서 많이 낸 돈으로 중소영세사업장까지 보호되는 그런 공공보험이다. 그리고 돈 많이 낸 기업에서 더 많이 치료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산재노동자 모두에게는 소속과 상관없이 고른 치료와 보상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총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왜 우리가 산재 많이 발생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부담까지 책임져야 합니까? 그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십시오.” 아마도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닐 테다. 능력있는 기업들은 따로 사보험 가입하고 능력 없는 기업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산재보험 가입하자고, 즉 산재보험을 민영화하자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민주노총의 주요 대공장 노동자들이 잘 알아야 한다. 경총의 이러한 주장에 치명적 공격을 날릴 수 있는 세력은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아니라 경총의 주요 회원사 노동자들이어야 한다. 이번 하반기 산재보험 개혁투쟁과정에서 주요 대공장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여하여 이렇게 외쳐준다면 이 무더위 싹 가시고, 시원스레 승리하는 투쟁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본이 정말로 더럽게 나옵니다. 산재보험료 몇 푼 아끼자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 다 죽이려고 합니다. 부품단가 낮춰서 고생시키고, 비정규직 증가시켜서 노동자들 힘들게 하더니만 산재보험 가지고도 장난질입니다. 우리 대규모 사업장들은 사회에 책임이 있습니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 많은 것을 사회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산재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많이 내서 중소영세사업장에 의해 발생되는 미수금을 채워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업의 이름에 따라 치료와 보상수준이 달라지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기업이 조금 더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