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기획특집


소강상태였던 산재보험 제도개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작년 7월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이 발의할 ‘산재보험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하면서 노동자건강권 운동진영의 구체화된 산재보험 제도개혁 내용이 나왔다. 반면 노동부는 2004년 1차에 이은 2차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 용역 연구결과를 11월에 공개했다. 1964년 시행 이후 40년 만에 대폭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산재보험 제도는 그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었다. 여기에 노동부의 용역연구 내용이 자본 논리를 대부분 수용함으로써 노동자의 전면전인 제도개혁 요구 관철은 한 판 싸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립과 갈등은 보이지 않았다. 중간 중간 사안과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보이긴 했지만 전면적인 대결구도는 형성되지 않았다. 2006년 2월 노동부 장․차관이 교체되고, 한국노총이 산업환경연구소를 중심으로 산재보험 제도개혁에 적극 개입하면서 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즉, 한국노총에서 그동안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 중심의 논의 장을 노사정위원회로 가져가자고 김성중 노동부 차관에게 한 제안이 수용되었고, 그것이 5월이다. 당시 민주노총은 사회적대화협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이냐 마느냐 논란이 마무리 안 된 상태여서 노사정위원회로 가져간다는 제도발전 논의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6월 23일, 민주노총이 중앙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에 한정된 것이어서 지금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에는 여전히 민주노총 주장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 무엇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중요한 듯한 산재보험 제도개혁은 어떤 흐름을 가져왔을까? 산재보험제도 문제점이나 노동자건강권 운동진영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내용은 이미 수차에 걸쳐 나와 있는바(혹, 궁금하다면 꿈틀 2004년 8~10월호, 2005년 9월, 11월호를 읽어보자), 여기서는 최근의 흐름을 중심으로 성과와 한계를 정리해 본다.

 

1. 2005년, 쟁점 형성을 얘기하다
2001년 10월 27일 중앙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결성된 산재보험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산재보험과 근로복지공단 전면 개혁을 내세우며 활동하다 근골격계투쟁이 시작되면서 활동이 미약해진다. 2002년부터 촉발된 근골격계 투쟁은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를 법으로 강제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2004년 시작된 자본과 근로복지공단의 반격으로 2004년 근골격계 인정기준 폐기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가 결성된다. 결성 당시 활발한 활동에 비해 2005년 중반에 이러 공투위가 뚜렷한 쟁점을 형성 못 한 사이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공투위에 참여했던 다수 노안단체가 공대위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전국을 아우르지 못하고 서울․경기지역 노안단체와 민주노총만이 남아있던 공투위 역시 이후 발전방향을 내오지 못하면서 해소한다. 일련의 흐름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이슈를 장악하기 보다는 자본이나 근로복지공단이 만드는 문제를 중심으로 공투위 혹은 공대위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5년 후반부터 사안 사안에 대응하다 보니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전선 형성이 되지 않고 싸움의 양상 역시 전면전보다는 지역별, 단위별로 협소화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40년 만에 산재보험이 제도변화나 제도개악이냐를 놓고 노사정이 대립하고 있는 데 이와 관련한 뚜렷한 쟁점형성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립지점을 만드는 기초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단병호 의원실이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입법발의 할 산재보험법 개정안 공청회였다. 7월 6일 열린 ‘산재보험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 ▷선보장(치료) 후평가(정산) ▷산업재해 심사평가기구 독립 ▷재활제도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개정안이 발표된다. 제도개혁 논의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구를 네 가지로 요약했고 이후 선전과 교육에서 이 점들을 부각해서 다룬다.
노동부도 11월 1일부터 그동안의 연구용역 결과 내용을 공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지만 첫 날부터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의 항의를 받게 되고 두 번째 토론회에서 전국진폐협회의 실력저지가 있고나서는 이후 일정을 아예 취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1월 30일, 노동부 앞에서 열린 ‘산재보험 개악저지 산재환자 결의대회’에 원진산업재해협의회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산재보험 제도개혁 논의에서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산재환자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또한 노동과건강포럼2005는 11월 15일 특수고용,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어 노동자임에도 산재보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들이 제도개혁 논의에서 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소통한다.

 

2.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당초 2005년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됐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노동부의 연구용역 결과가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안 자체를 만들지 못하고 노동자건강권 운동진영의 제도개혁 요구 속에 해를 넘긴다. 그리고 1월 19일, 노동과건강포럼2005는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개혁과제 정립을 위하여’라는 토론회를 국회헌정기념회관에서 주최한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노동부에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논의에 산재노동자 당사자들이 참여주체로 참여해야 하고 산재보험 혁신을 위해 노사, 산재단체 회의 틀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어쨌거나 일방적으로 법 개정안을 만들 수 없는 노동부로서는 노사정 의견을 수렴해야 했기에, 2006년 4월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든다. 그러나 책임있는 주체가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노동부 팀장이 판을 좌지우지 하는 자리가 되어가는 도중,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노동부 차관에게 “논의를 노사정위원회로 가져가자.”고 제안하고 차관은 앞뒤 재지 않고 이를 덜컥 받아들인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당시까지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노동부는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산재보험 논의를 노사정위원회로 가져간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로 노동부의 이런 행태를 비판했으나 노사정위원회로 공은 넘어가고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가 8월까지를 기한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발전위가 정한 시한이 산재보험 제도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점과 내용에서 산재보험 문제점을 충분히 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6월 23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민주노총은 산재보험 논의를 대표자회의로 격상시켜 논의와 내용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이런 주장은 7월 5일 열린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 선포식’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에 전달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사정위원회는 이 제안을 ‘(노사정위 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할 것도 많은데 산재보험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며 거부했고, 민주노총이 참여한다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전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자리는 사실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8월 16일 진행된 공익위원과의 만남에서 공익위원 중에는 간사인 윤조덕 박사만이 참석해 당초 향후 추진에서 예상되는 개악에 경고를 보내려던 계획이 수정, 면담 수준으로 정리되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내용과 민주노총 요구안을 가지고 공개토론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노사정위 측은 답이 없었다. 민주노총은 8월 23일 ‘산재보험제도 개악저지와 노동자건강권 확보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공개적으로 다시 한 번 ‘공개토론회’를 요구하고 산제보험 제도개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뜻을 밝혔다.

 

작년부터 투쟁과 소강을 반복해 온 ‘산재보험제도’ 개혁과 개악의 갈림길에서 이제 노동자는 투쟁으로 개혁을 쟁취할 것인지, 아니면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부로 노동부에서 국회로 넘어가는 제도개악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산재보험 제도개혁이 노동자건강권 운동진영이 혹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산업안전보건)을 담당하는 간부들만, 지금 산재노동자인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 고용철 노동안전부장은 “그 동안 계속 뒷전이다 보니 중요하게 부각되었음에도 여전히 뒷전인 상황”이라며 “비정규직 문제로 총파업은 하면서 왜 산업안전 관련 총파업은 안 되는지 임원들이 고민해야 한다.”며 총연맹 임원과 단위노조 임원, 활동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전남지역본부 문길주 노동안전부장 역시 “임단협 시기는 많은 교육을 할 수 있는데 노안 교육은 항상 빠져있다.”며 임원들 의지가 산재보험 제도개혁 문제를 전파하는 고리일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두 노동안전보건 부장 말에 따르면 교육을 하면 조합원들 ‘반응이 달라진다’고 한다. 산재보험 제도개혁 중요성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의 차이라고 한다.

 

당초 8월에 마무리하려 했던 노사정위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는 이제 두 세 차례의 회의만을 남기고 있다. 시기적으로 법안이 11월 국회에 상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잠깐 생각해보자. 산재보험 제도개혁이 다친 사람들만의 문제고 일부 활동가들만의 문제인지… 정규직이 언제든지 비정규직이 될 수 있듯이 건강한 노동자도 의지와 상관없이 다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지, 외양간을 번듯하게 고쳐놓고 소를 지킬 것인지는 그 누구의 몫도 아닌, 바로 당신의 몫이자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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