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20:33
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7,8월 합본호
▲용광로. 공정 자체가 고온을 동반하는 작업에서 노동자는 쉽게 지칠 수 있다
“이번 여름 무더위는 유난히 심해서 냉방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현장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로서는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저희 작업장은 용광로를 사용하는 주조 공장으로 냉방설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여 ‘살인적인 찜통더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중략) 고열 작업장의 작업환경 및 작업방법 개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퀴즈, 위 질문은 몇 년도에 나온 것일까?
①1980년대 ②1990년대 ③2000년 이후
소크라테스가 ‘요즘 세대들은 버릇이 없다’고 쓴 글이 있다는 걸 보면 위 질문 역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겠다. 해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노동현장은 노동자들이 무더위에 지치지 않게 일할 만큼의 설비 개선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자! 일단 질문을 던졌으니 답을 골라 보자면 ②번이다. 질문은 1994년 노동과건강연구회 발행 잡지 ‘노동과 건강’ 8월호 <상담실에서>에 실린 내용이다. 벌써 12년 전 얘기지만 벌써 다가온, 혹은 늘 고열 작업장이 상존하는 노동현장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여기서는 고온에 노출된 노동자들 얘기를 중심으로 들어보았다. 유리나 고무를 녹이는 공정이 있는 화학섬유 사업장, 건설현장, 조선소 등 내부와 외부에서 ‘열 받아’ 일하는 상황을 보도록 하자.
먼저, 고무로 타이어를 만드는 금호타이어 상황을 보자. 금호타이어 평택 사업장은 현장 전체로 볼 때 온도가 30℃ 정도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적정 노동공간온도 혹은 허용온도(최소기준이란 뜻)가 16℃~24℃라고 하니 30℃면 상당히 높은 셈이다. 민주노총 화섬연맹 최춘식(금호타이어 평택) 노동안전보건지도위원은 “고무를 성형하고 가류하는 무지 더운 공정도 있고, 또 상대적으로 너무 시원한 UT(건물전체를 컨트롤 하는 곳)도 있다. 두 곳은 지옥과 천국 사이다.”라며 문제는 덥기 때문에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크고 작은 화상질환’이라고 한다.
여름이라 반팔로 일하다 보니 기계의 협소한 곳에 손이 들어가면 화상을 입는데, 온열 장갑이 있지만 불편해서 사용을 꺼리게 돼 대신 두툼한 면장갑을 끼고 일한다. 고무를 압출하거나 타이어를 찌는 가류공정처럼 공정자체와 주변온도가 높은 곳에서 일을 마치면 작업복은 소금꽃으로 덮여 있다. 땀을 많이 흘린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위해 회사는 식수대에 알약 포도당을 비치하고 아주 무더운 시기에는 비타민 과립을 한 통씩 지급한다.
금호 타이어 평택의 온도 낮추기 해법은 천장으로 각 공정마다 배관을 연결해 AHU(공기 조절기)라는 냉동기 시스템으로 시원한 바람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 밑에 있으면 나오던 소금꽃도 어느 새 사라지는데 문제는 이 효과가 전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관 주변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배관에서 벗어난 곳은 이 효과가 미치지 않는다.
유리섬유를 생산하는 한국 오웬스코닝에는 용융로 공정이 있는데 노동자는 1200℃가 넘는 용광로 바로 앞에서 일한다. 최고 온도가 1630℃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주변에 있는 것 자체가 고온과의 싸움이고 피부화상 위험이 다분하다. 이 공정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방열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는데, 고온에 땀을 많이 흘리는 작업이다 보니 30분 작업하고 나와서 잠깐 쉬고 다시 작업”한다. 어지럽다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은 작업자는 쉬게 하고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주변에 먹는 포도당을 비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공기를 유입하는 방열 보호구가 있지만 공기가 통과하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덥고 보호구 자체가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용융로가 워낙 뜨겁고 벌겋다보니 노동자들이 일단 조심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태양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여름철 작업 조건은 어떨까?
▲여름이면 지층보다 높은 온도와 좁은 공간의 고온에서 일해야 하는 타워크레인 작업.
① 지하층 : 고온에 다습까지 겹쳐 그야말로 사람을 잡는 작업이다. 2005년 7월 두산중공업에서 사망했던 故유용만씨도 일차적 원인은 낙하물에 의한 두부 충격이었고, 고온다습한 지하층에서 엘리베이터 작업 노동조건이 이차 원인이었다.
② 철골작업 : 철골은 한 여름이 되면 거의 살을 데이기 직전까지 달구어진다. 고층의 달구어진 철골 위에서 하는 용접 작업은 기본적으로 30℃를 넘나드는 온도, 철골 온도, 용접 불꽃 온도까지 겹쳐져 엄청난 고온 작업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용접 불꽃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해 땀이 비 오듯 한다.
③ 타워크레인 : 고공 70~100m 상공에서 작업을 하므로 여름에는 직사광선으로 지층 온도보다 더욱 고온이다. 타워기사들은 작업시 마스터라고 하는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데 더위에 좁은 공간에서 일해 고온 작업에 시달린다.
④ 도로 포장 작업 : 도로 위 포장 작업 시에는 아스팔트라는 재료 자체에서 고열이 발생한다. 여름에는 뜨거워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일 정도이다. 포장 작업시 장비 운전자뿐만 아니라, 도로를 평평하게 하는 작업 노동자는 도로 위의 고열을 그대로 받으면서 작업한다.
또 플랜트 현장에서는 탱크 작업 등 엄청난 고온에서 작업을 하는데 울산에서는 건설일용노동자가 탱크 작업을 하면서 일사병 등으로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과 건강 대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설연맹 최명선 산업안전부장은 “마실 물도 수돗물로 제공하는 현장도 있고 더위에 샤워 시설도 없어 땀에 전 옷을 입고 출퇴근 하는 지경”이라며 “여름에 건설현장에서 ‘냉수’라도 제대로 지급하라는 요구를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옷 갈아입을 곳도 없어 현장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최 부장은 이어 “한 여름, 보건 문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현장이 포항제철소인데, 포항제철소는 얼음조끼 지급을 생색내지만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의 것이지 하청 건설일용노동자는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4년, 노동자들은 어떻게 더위로부터 건강을 지켰을까? 질문에 대한 답 중 몇 가지를 골라보면, 대우조선은 노동자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관리자가 작업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했다.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는 주간 가동률을 70% 수준으로 낮추고 야간에만 완전 가동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시켰고 한국타이어는 45일간 삼계탕 등 영양식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건설현장 예로는 청구건설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를 낮잠시간으로 정해 실시했고 낮 기온이 35℃를 넘으면 직원들 모두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고 한다.
2006년 온도와의 전쟁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궁금하신가? 다음 장을 펼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