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정유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난 주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회사로 곧바로 복귀하겠다는 노동조합과 개별적으로 팀장면담 등을 통해 복귀를 시키겠다는 회사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엘지정유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난 주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회사로 곧바로 복귀하겠다는 노동조합과 개별적으로 팀장면담 등을 통해 복귀를 시키겠다는 회사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 동안 고임금 노동자의 파업이라며 나팔을 시끄럽게 불어대던 언론들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 잠잠해 지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노동조합이 집단적으로 복귀하면 조정실을 점거할 우려가 있다며 전경의 상주를 1개월 더 연장신청한 상태이다.
8월 7일, 엘지정유 정문은 너무나 낯설었다.
엘지정유 노동조합이 지난 6일(금) 단국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회사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6일 밤새 서울에서 여수로 버스로 달려온 노동자들은 7일 아침 9시 굳게 닫힌 엘지정유 정문 앞에 모였다. 엘지정유는 담벼락 대신 콘테이너 박스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콘테이너 박스에는 회사의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엘지정유 조합원들은 공고문의 내용에 혀를 끌끌 찼다. 그 동안 십 년 넘게 일해온 내 회사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기에 공고문에 동요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조합원들의 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바빴다. 마중 나와 있을 부인이, 아이들이 어디쯤 있는지 찾고 있었다.
공 고 문
불법파업을 끝내고 우리의 신성한 일터로 복귀하고자 하는 여러분들께 아래와 같이 복귀와 관련한 사항을 알려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첫째, 회사는 향후 무노동 무임금 적용, 사규에 의한 징계절차 등을 처리함에 있어 근로자 본인의 복귀의사를 기준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는 바, 조업을 희망하는 근로자 여러분들은 개별적으로 업무복귀를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별도 제공된 서식을 참고하여 자필로 복귀의사를 기재하고 서명한 후 Fax로 송부함)
둘째, 회사는 오랜 기간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의 경우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해소하고 업무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귀 하고자 하는 조합원은 해당 팀장에게 개별적으로 복귀 신청을 하신 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 집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째, 복귀 신청 이후부터 집에서 대기하는 기간은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여 정상적인 급여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단, 팀장의 면담요청 등 지시에 불응시 복귀의사 표명은 무효가 되어 위 대기 기간은 근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네째, 회사는 비상사태 선포 이후 임시 근무조를 편성, 전 공정을 운영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조업과 인수인계를 위해 시간이 소요됩니다. 집에서 대기하는 동안 다소간 불편이 있을 지라도 공장의 조속한 정상운영을 위해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라며,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LG칼텍스정유 여수공장 사장 명 영 식 |
비대위 구성, 힘차게 복귀투쟁을 결의하다
곧바로 대오를 정렬하고 집회에 들어갔다. 화학섬유연맹 장현황 수석부위원장, 공투본 임영기 본부장, 그리고 여수건설노조 위원장의 발언이 있었다. 여수건설노조 위원장의 경우 “조합원 여러분 폭력은 절대로 쓰지 마십시오. 만약 폭력을 써야 할 상황이 오면 차라리 저희를 부르십시오. 저희가 대신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투쟁은 건설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해 조합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엘지정유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인력충원의 문제를 진심으로 주장했다는 것을 건설노동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건설노동자들의 뜨거운 마음이 엘지정유 조합원들에게 느껴진 것은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고병용 동지(13대 수석부위원장)가 단상에 올랐고, 조합원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 속에 복귀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조합원들은 어느 한 명 개별적으로 회사에 무릎꿇고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로의 눈빛 속에 강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정문을 열어라
고병용 직무대행의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라는 해산선언 이후 조합원들은 아이를 안아보고, 쑥스럽지만 고생했다는 한 마디 부인에게 건네고서도 미처 아쉬운 듯 곧장 정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산개투쟁을 함께 한 같은 팀 동료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권하고, 끌어안고 월요일 조별 복귀시간에 만나자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4조 3교대의 출근 일정에 맞춰 조합원들은 정문 앞에 집결했고, 출근하려 했다. 그러나 정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회사는 당황했을 것이다. 수백억의 돈을 뿌려가며 언론을 장악하고, 결국 복귀하도록 만들어냈다고 자평하고 있었을 테지만, 조합원들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으며 지도부의 지침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조합원들의 대오 앞에 회사는 “이렇게 복귀하면 조정실을 점거할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다시 언론플레이를 시도했다. 조합원들은 이미 각오한 일이었을 뿐이다. 『오마이뉴스』조차도 8월 6일 기사를 통해 “조합이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고 했지만, 엘지정유 정문 앞에는 어떠한 백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회사는 정문을 열어야 한다. 엘지정유 노동자들은 당신들이 거짓말 한 것처럼 공장의 불을 끄지도 않았으며, 조정실을 점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공장을 안전하게 가동시키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다. 산개투쟁 또한 미리 작정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경찰력을 투입하기에 회사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고. 정문을 열어야 한다.
30년 역사의 엘지정유여, 언론에 수백억 뿌려가며 장난하지 말고, 이제 당신의 가족들을 받아라. 정문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