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20:16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원(gganna@hanmail.net)
일과건강, 2006년 7/8월호
1. 여름 속으로 들어가면서
여름이 되면 간혹 이런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올 여름을 이겨 낼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많은 계획들 중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답은 “더위를 피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더운 대로 즐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해요.” 즉, 애써 잔머리 굴리지 말고 제철에 순응하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철’ 좀 든 사람의 내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름의 일상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작업현장에서는 상황이 현저히 달라진다. 풍류를 즐기듯 더운 대로 제철을 즐길 수 없을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상황에 따라서 ‘견디거나 혹은 쓰러지거나’가 연출될 수도 있다.
2. 온도에 관한 노출기준
매년 여름이 되면 작업장의 더위 문제로 각 사업장마다 말이 많다. TV 뉴스를 통해서 10년 만에 찾아오는 무더위라는 소식을 접하면 현장은 더욱 뜨겁게 달구어진다. 다행히 올해에는 아직 그와 같은 일기 전망은 예고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더위 문제는 현장 정서를 뜨겁게 데우고 있다.
“한 여름철이면 현장이 너무 더운데 이거 어떻게 안 되겠니?” 혹은 “더위 문제도 작업환경 측정에서 다룰 수 있나?” 혹은 “더위도 소음이나 먼지처럼 기준이 따로 있나?” 혹은 “문제가 되면 개선할 수 있나?” 혹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혹은?
여름철 더위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또는 더위 문제에서 비롯될 수 있는 건강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준이 있다. 그에 따른 예방조치도 있다. 예방을 위한 개선의 예도 있다. 그런 시도가 흔치 않을 뿐이다.
아래 <표 1>은 노동부고시 제2002-8호, 『화학물질 및 물리적인자의 노출기준』 중 <별표 4>의 고온의 노출기준을 예시한 것이다.
--------------------------------------------------------------------------------
<표1> 별표4의 고온 노출기준
작업강도
작업휴식시간비 경작업 중등작업 중작업
계 속 작 업 30.0 26.7 25.0
매시간 75%작업, 25%휴식 30.6 28.0 25.9
매시간 50%작업, 50%휴식 31.4 29.4 27.9
매시간 25%작업, 75%휴식 32.2 31.1 30.0
주 : 1. 경 작 업 : 200Kcal까지의 열량이 소요되는 작업을 말하며, 앉아서 또는 서서 기계 조정을 위해 손 또는 팔을 가볍게 쓰는 일 등을 뜻함.
2. 중등작업 : 시간당 200~350Kcal 열량이 소요되는 작업을 말하며, 물체를 들거나 밀면서 걸어다니는 일 등을 뜻함.
3. 중 작 업 : 시간당 350~500Kcal 열량이 소요되는 작업을 말하며, 곡괭이질 또는 삽질하는 일 등을 뜻함.
--------------------------------------------------------------------------------
고온 노출 기준은 이렇게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주된 작업 내용이 물체를 들거나 밀면서 걸어 다니는 작업이면 ‘중등작업’에 해당하고 이 때 1시간을 기준으로 별도의 휴식시간 없이(휴게실과 같이 휴식을 위해서 별도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쉬는 것을 ‘휴식시간’이라고 말한다. 일하다가 생산 속도 때문에 잠시 여유가 생기거나 기타 사유로 작업현장에서 잠시 일을 멈추는 것은 휴식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계속 작업’을 하게 된다면 온열 기준은 26.7℃가 된다. 물론, 1시간을 기준으로 (별도의 휴식공간에서) 15분 정도를 쉬는 작업 패턴이라면 기준은 28.0℃가 된다. 즉, 쉬는 시간을 통해서 온열 조건에 따른 신체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조금 편안하게 이야기하자면 ‘더우니까 쉬면서 일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현장에서 WBGT를 이용해 온열을 측정하는 모습
여기에서 26.7℃ 혹은 28.0℃라고 표현된 온도는 우리가 흔히 수은온도계를(일반온도계) 사용해서 확인하는 온도와는 다른 수치이다. 따라서 온도라고 표현하지 않고 특별히 ‘온열’이라고 표현한다. 온열은 건구온도(일반 온도)와 습구온도(습도의 영향을 반영한 온도) 그리고 흑구온도(보통 복사열을 측정한다)의 세 가지 온도를 조합해서 만든 수치이다. ‘℃’를 온열 단위로 사용하기 때문에 흔히 일반 온도와 헷갈리는 경우가 있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의 온도이다. 이 때문에 간혹 현장에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현장 온도가 40℃ 안팎인 거 내가 좀 전에 눈으로 확인하고 왔는데 31℃ 밖에 안 된다고? 장난하는 거야? 우리를 호구로 알아? 이런 식으로 측정하니까 매번 기준미만이라고 하지 ! 야, 측정기관 바꿔!!!”
현장 온도가(건구온도 혹은 일반 온도) 40℃ 안팎이기 때문에 온열 온도가 31℃ 정도까지 측정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온열 온도로 31℃ 정도 되면 대략 30분/1시간 정도는 휴식시간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현장 상황에 따라 온열을 측정해보고 작업조건에 비추어 기준과 비교하게 되면 더위 문제가 작업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인지 아닌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3. 온열 작업장 관리
열에 노출되는 작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제안될 수 있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공학적 개선
•열원을 격리시키거나 밀폐한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증기를 배출시킬 수 있는 배기-환기 시스템을 설치한다.
•열을 반사시킬 수 있는 반사막을 설치한다.
•땀의 증발을 촉진할 수 있도록 팬을 설치한다.
•시원한 물을 항상 비치해둔다.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시원한 곳에서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다.
2) 행정적 조치
•힘든 작업은 하루 중 가장 서늘한 시간대에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시원한 장소에서 자주 쉴 수 있도록 한다.
•신입사원이나 휴가 혹은 병가에서 복귀하는 근로자는 열원이 존재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통 열원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5~7일 정도 근무하면 열순응(열적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할 수 있다.
3) 교육/훈련
•열로 인한 스트레스 증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작업자들을 교육한다.
4) 열적환경에서 더욱 위험한 요인들
•body size가 작은 경우
•과체중
•영양섭취가 좋지 않은 경우
•40 세 이상의 연령
•과거에 열병을 앓은 경력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경우
•고혈압/당뇨/피부병이 있는 경우
•간, 신장, 폐 등에 문제가 있는 경우
즉, 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첫째, 설비 개선을 통해서 열을 쫓아내거나 막거나 하라는 것이며, 둘째, 적절한 휴식 시간을 배분하고 시원한 장소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며, 셋째, 교육 등을 통해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환경에서 일하다가 어지럽거나 두통이 느껴지면 열적인 환경에서 몸이 힘들어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즉시 시원한 장소로 옮겨와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만 참지 뭐’ 혹은 ‘이것까지만 하지 뭐’하고 버티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으므로 몸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고 정직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한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일정량의 시원한 음료(커피나 탄산음료 말고 10 ~ 15℃ 정도의 냉수나 주스 혹은 이온 음료 등)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는 것보다 주기적으로 정량을 조금씩 마시는 것이 좋다(20분에 1컵 정도). 한 가지를 더 붙이자면 땀의 증발을 촉진할 수 있도록 팬을 설치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 온도가 일반 온도계로 35℃가 넘는 상황이라면 선풍기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체온을 더욱 높일 수도 있으므로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온도를 관리하기 위한 방안은 소음을 줄이기 위한 방안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시설 개선을 해야겠으나 역시 소음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설 투자 자본과 시간 등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 두 번째로는 시간 고려이다. 즉, 적절한 휴식시간을 배치하는 것인데 이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을 한 번 거들떠보자.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32조의8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근로시간제한등) ③항에 의하면 사업주는 …유해·위험작업에 대하여는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하여 … 유해·위험예방조치 외에 작업과 휴식의 적정한 배분 기타 근로시간과 관련된 근로조건의 개선을 통하여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작업에는 ‘1. 갱내에서 행하는 작업 2. 다량의 고열물체를 취급하는 작업과 현저히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행하는 작업, …(중략)… 6. 강렬한 소음을 발하는 장소에서 행하는 작업…’ 등이 포함된다. 휴식시간 배분은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다만 현장 내에서 어떻게 실현해 낼 것이냐가 관건이다.
시설 개선과 적절한 휴식 시간 배분 이외에 더운 환경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 등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교육 받은 내용이나 훈련된 사항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그리고 누구나 그 내용을 실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4. 너무 더워서 일 못하겠는데!
『일과건강』2006년 6월호의 편집후기 내용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일과건강』 애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기억하리라 믿는다. 건설산업연맹 최명선 산업안전부장은 “호주에서는 일정 기온 이상이 되면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해 작업을 중지시킵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위로 작업을 중단해도 일당 걱정 안하면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올까요?”라고 토로하고 있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까? 일정 기온 이상이 어느 정도일까? 덥다고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을까? 안전사고도 아니고, 중대재해도 아닌데, 덥다고 작업을 중지시켜?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여전히 낯선 상황이다. 정말 그럴까?
호주에서는 옥내와 옥외 작업을 구분하고 건설 현장과 같은 옥외 작업은 일반 온도계로 30℃ 이상의 온도가 2시간 이상 지속되는 온열 환경에서 작업할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도록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현장 온도(일반 온도계) 조치
30 ~ 32℃ 시간당 10분 정도 휴식
32 ~ 35℃ 시간당 15분 정도 휴식
35 ~ 36℃ 시간당 30분 정도 휴식
37℃ 혹은 그 이상 작업 중지
▲호주의 공공서비스연맹(PSA; Public Service Association)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의 표어,
“더운 작업, 일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휴식 시간을 배분하는 온도 범위와 작업을 중지시켜야 할 온도 범위는 상황에 따라 혹은 조합과 회사의 협의 내용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37 ~ 38℃ 이상의 온도 상황에서는 현장 온도가 떨어지거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작업을 중지시키거나 혹은 귀가조치 시키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고되는 가이드이다. 이 때 <표 3>에 적용된 작업은 경작업 혹은 중등작업에 해당하는 경우이며 만약 중작업(삽질과 같이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면 휴식시간을 50 %씩 더 배분하고 있다. 당연히 휴식시간이나 업무 중지에 따른 시간은 법적으로 임금이 보전된다.
실내 작업도 마찬가지다. 실내에서 작업할 경우에는 26℃ 이상이 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만약 30℃ 이상일 경우에는 외부 작업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즉, 실제로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조치는 더운 환경에서 일할 때 경험할 수 있는 열적 부담을 사전에 줄이기 위함이고 그럼으로써 작업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호주에서 실제로 작동되고 있는 가이드라인,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5. 여름을 맞으며
곧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태세다. 현장에서 온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측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측정한 결과 더위 문제가 신체에 열적 부담을 초래할 정도라는 평가를 내리더라도 개선이 쉽지 않다.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의 온도조건에 맞게 휴식시간을 철저히 보장하고 실제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테지만 대한민국 현실에서 쉬이 올라가는 현장 온도에 역비례해서 그만큼 시원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고 지켜내는 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올 여름에도 온열 측정을 요구하는 사업장은 점점 늘어날 거 같다. 그 현장에서 ‘열’나게 온열 측정을 하게 되겠지만 그 와중에 눈치 보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정말 맘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현장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정말 더~~~업~~~~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