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2월호
새벽밥도 못 먹고 출발한 서울 끝, 경기도 자락인 집에서 인천 주안까지의 이동은 피곤과 동시에 적잖은 기대를 주었다. 노동건강연대가 한국산업안전공단 2007년 산재예방 및 안전문화사업 민간단체 지원금으로 추진하는 사업, “‘안전 Start!'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안전교육’이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리는데,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안전’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교육 시작에 앞서 만난 학교 손영배 산학협력부장은 “교육부에서는 인권 문제 때문에 학생 실습을 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취업을 원하는 학생도 있다. 현재 50여명이 취업(실습) 예정이며 실습 후 바로 취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며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들어보니 거제도에 있는 삼성중공업처럼 대기업으로 실습(취업)을 나가는 학생도 있고 인천 주변 10인 이상의 중소기업체에 취업(실습)을 한 학생도 있다. 실습으로 나가더라도 대부분은 취업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손영배 부장은 취업에 앞서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안전교육’을 한다니 ‘참 좋은 일’이라며 좋아했다.
하지만, 교육 장소로 이동하고 강의가 시작되면서 눈에 들어온 학생들 모습에 약간의 실망이 앞섰다.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든, 일을 하든 필요한 내용이 담긴, 이날 교육을 위해 미리 배포된 매뉴얼 책을 꼼꼼히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의에 집중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안전과 나는 상관이 없다는 듯 딴청을 부리거나 잠을 자는 학생들도 꽤 보였기 때문이다. 3학년 전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 1, 2차로 나눠진 교육이 끝날 무렵, 앞의 한 참가 학생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이런 교육 해 줘요?”
“아니요.”
“오늘 교육 내용이 도움이 되었나요?”
“네.”
강의를 내내 진지하게 듣던 학생이었기에 ‘아마 취업이나 실습을 나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표정으로 봐서 예의로 질문에 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날 진행되었던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기본적인 노동인권, 산업재해 예방,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의 교육내용은 분명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게다. 하지만 또 다른 다수였던 ‘딴청 학생’들이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애초 계획하지 않았던 용산공업고등학교로 교육팀과 함께 이동하였다.
용산공업고등학교에서도 3학년을 대상으로 교육 내용은 같고 선생님만 다른 강의가 1,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점심시간 뒤 바로 이어진 교육에다 넓은 강의실, 약간은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학생들의 집중력은 오전의 인천기계공고보다 더 떨어졌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현장에서 본 학생들의 ‘딴청’이 우리나라 교육체계와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교육이 끝날 무렵 들었다. 공업학교, 기계공고 등 예전에는 일찍 사회진출을 해야 했던 공간이 지금은 취업보다는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는 용산공고 관계자의 말처럼 사회가 아니라 공부를 더 할 입장에서 노동이니 안전이니 산업재해니 하는 단어들이 살갑게 내 것처럼 다가올 리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교과과정에서 노동인권이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전혀 다루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바라는 것 자체가 조금은 무리였던 것 같다.
교과 과정은 물론 사회에 진출해서도 노동자 자신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 일상이니 청소년 시기에 경험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에서 이들의 안전과 건강이 챙겨질 리는 만무하다.
노동건강연대 이현진 사무차장은 “과 별로 교육을 진행했던 일산 주엽공업기계고등학교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진지했다.”면서 내가 본 두 곳의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특히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했다(헌법 32조). 활자로만 읽혀지고 실제는 적용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이지만 ‘권리’를 지키고 확보하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는 만큼 빠른 포기는 사절해야 할 것 같다.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안전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노동건강연대는 지금까지 해온 일하는 청소년 건강권 실태조사, 거리 캠페인, 매뉴얼 개발, 안전교육 등의 성과를 모아 곧 공청회를 개최한다. 방학이 아니라 많은 청소년의 참가는 힘들겠지만, 일하는 청소년에게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법이 현장에서 실현되는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