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구슬기, 일과건강 2007년 9월호
환경보건을 전공하는 나는 산업위생에 대해 일전에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캠프를 처음 가게 되었을 때는, ‘깨끗한 白紙에 새로운 것들을 써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다음 학기에 들을 과목인데, 가면 뭔가 배우고 올 수 있겠다.’라는 어쩌면 조금은 가벼울 수도 있는 호기심에 캠프에 참가하였다. 실제로 그 곳에서 만난 학형, 학우들은 나와는 달리 이미 산업위생을 모두 배우고 산업위생 전문가(이하 산업위생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다 마친 듯 했고, 자기 자신 나름대로의 산업위생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 상태였다.
산업위생에 어느 정도 간단한 지식을 알긴 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나조차도 이번 캠프를 통해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았고, 이미 산업위생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학형과 학우들은 나보다 더욱 더 값진 것을 느끼고 깨달아 ‘진정한 산업위생 전문가’로서의 주관이 뚜렷해졌을 정도로 이번 캠프는 단순하게 캠프로 끝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구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직업에 직업의식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직업이 ‘환경’측정이라는 범위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 가운데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동물’을 ‘사육’하는 곳도 아니고, ‘사람’이 ‘작업’을 하는 곳에서의 환경을 측정하고, 사람이 얼마나 위협적인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지 조사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상당부분 책임져야 하는 산업위생가로서는 더더욱 양심이 부각되게 마련이다.
사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이하 원진연구소)에서 주최했던 산업위생 캠프를 다녀오기 전 까지는 과거 산업위생가들의 양심이 얼마나 잔인하고 왜곡된 사실 속에 묻혀 있었는지, 또한 노동자들에게 있어 그 양심이 얼마만큼 중대한 것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고용주들을 위해 일해 왔는지, 얼마나 많은 비양심 전문가들이 노동자들의 건강할 권리를 박탈하고 진실을 숨겨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돈과 자기안일을 위해 일해 왔던 악덕 고용주와 비양심 산업위생가들에게 노동자들이 받았던 상처는 너무나 깊고도 지워지지 않을 큰 상처였다.
일례로 원진연구소가 창설(創設)된 계기이기도 했던, ‘원진레이온사건’에서 피해를 입었던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게다가 그 가스를 마시면서 눈에 모래가 들어가 압박하는 것 같은 심각한 통증을 느꼈는데 그 당시 관리자들은 소주를 먹으면 안 좋은 것들이 모두 빠져나간다면서 부추기기까지 했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그 말만 믿고 일이 끝나면 밤마다 이황화가스가 들어가 있는 몸에, 발암물질을 유발하는 알코올을 들이부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의 충격은, 동영상 자료를 보고난 후 환자 대표 분들이 오셔서 직접 경험하셨고 느끼셨던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셨을 때 절정으로 치달았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는가!’하는 탄식의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조금씩 몸에 이상 증상이 오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환경에서 몸이 망가져 가는 줄도 모르고 비양심적인 업주와 얼토당토 않는 환경측정을 한 산업위생가들에게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 분들 중에는 그러한 사건이 있은 후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생존하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과거에 치료를 받던 도중 사망하신 분들만해도 그 수가 엄청났으며, 아직도 고통 중에 투병 중이신 분들도 있었다. 그 분들의 권리는 우리들의 것과 같아서 꼭 지켜져야만 하는 권리임에도, 사건이 발생한지 19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직업병 판정을 받지 못하여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고통 중에 여생을 살아가시는 안타까운 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 우리 나이와 비슷했던 대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투쟁을 해가며 피해 노동자의 보상과 건강할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러한 노동자들 입장에 직접 선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고, 영상자료를 보면서 산업위생가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과 자질들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보았다. 캠프가 진행될수록 산업위생가로서 너무 한쪽 편만을 지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포럼이 끝나고 학생들과 연구원 분들이 함께 조별 토론을 하는 중에 ‘진정한 산업위생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입장―노동자나 고용주, 둘 중 하나의 입장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 필요한 덕목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사실 그 말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연구원 분께서 말해주셨듯이 이미 ‘진실’의 편이 ‘노동자의 편’이어서 어쩌면 너무 주관적인 것 같아 보였던 것은 아닐까.
대기업의 돈과 명예라는 것 앞에 진실은 왜곡되었고, 그 피해를 온몸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과 피해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본다면, ‘진정한 산업위생가’가 된다는 것은 이미 답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노동자와 내가 가족이며 파트너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건강뿐 아니라 모든 권리를 보호하고 함께 호흡하며 나아가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고통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1박 2일밖에 안 되는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참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깨달을 수 있던 이번 캠프는 단지 좋고 즐거웠다는 것 그 이상으로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진행하다 보니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포럼을 하거나 서로를 알아가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약간 짧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캠프로 끝이 아니라, 캠프 때 다하지 못한 얘기도 함께 나누고 산업위생캠프가 전통적으로 몇 년 후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카페도 개설하여 학생들 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여러 대표 분들과 연구원분들, ‘산업위생’에 포함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나눔의 장(場)’을 열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진실 추구와 함께 나아가는 기쁨을 위한 원진산업위생캠프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1기 참가자들이 캠프를 다녀왔던 2007년 7월 여름의 그 날을 잊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만 애정을 갖는다면 해가 지날수록 자신과 후배들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산업위생을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앞으로 해마다 개최될 ‘원진산업위생캠프’는 산업위생 전문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을 위한 귀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캠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