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는 전쟁터가 아니거든~~

2012.03.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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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범 교육실장, 일과건강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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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가 만든 잠수부용 헬멧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유해한 물질로부터 호흡기를 바로하기 위해 보호장구가 필요하다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D 23년부터 79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기록된 플리니(Pliny)라는 사람이 동물의 오줌보를 이용해서 로마 광산의 유해물질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최초이다.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을 물에 적셔서 파우더를 차단하는 마스크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적인 공기공급식 기구(SCBA 등)의 최초 형태는 1700년대에 만들어졌다. 물론 그 이후에 보호구들은 디자인이나 재질면에서 모두 점점 복잡해졌다. 하지만, 호흡보호구는 두 가지 원리로 기능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하나는 노동자가 유해한 물질을 마시지 않도록 공기를 걸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공급해 마시도록 하는 것이다.

 

1. 공기정화식 보호구
1814년, 딱딱한 용기 안에 분진을 걸러주는 필터가 들어있는 형태의 마스크가 개발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공기정화식 호흡보호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854년 스코틀랜드에서는 활성탄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숯이 유해한 증기를 걸러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1915년 세계 1차 대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었고, 화학물질을 걸러주고 전투가 가능하도록 호흡보호구 디자인 개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1930년에는 합성수지가 내장된 분진용 필터가 개발됨으로써 효능이 증대하였고, 싼값에 마스크가 보급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이 분진마스크의 장점은 분진을 잘 걸러주는데도 불구하고 숨 쉬는 것이 많이 편해졌다는 점이었다.

 

2. 공기공급식 보호구
1823년 존과 찰스 딘 형제(John and Charles Deane)는 소방관들이 연기에 대항할 수 있는 마스크를 발명했다. 1819년에 어거스트 지브(Augustus Siebe)는 잠수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기공급식 헬멧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이 원리를 이용한 다양한 공기공급식 마스크들이 개발되었다.

 

3. 전쟁과 가스마스크
어찌되었건 호흡보호구의 경우, 특히 화학물질을 걸러주는 가스마스크는 “방독면”으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 무기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적이 가진 방독면이 소용없는 화학무기를 생산하는 것, 적이 가진 화학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방독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프랑스의 이프르 전에서 처음 사용했던 염소가스는 19세기 이래로 화학왕국이던 독일의 대규모 소다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온 염소였다. 소다는 비누, 섬유, 제지, 유리 등의 원자재로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었지만, 그 부산물인 염소는 당시만 해도 표백제 이외에는 마땅히 쓸 데가 없었기 때문에, 독일군 수뇌부는 일석이조라 생각하며 적극 이용했다. 그러나 연합군 측 방독마스크가 질적으로 향상되면서 염소 가스를 이용한 공격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독일은 염소에 일산화탄소를 반응시킨 포스겐을 개발한다. 공격 효과가 현격하게 뛰어난 포스겐은 의약품의 중간원료로, 독일이 자랑하는 합성염료 화학부문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던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 기체로 된 질식성 가스는 고성능 방독 마스크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독일은 비소를 넣은 구토성 가스에 생체 점막과 피부를 썩게 만드는 황산까지 첨가한 염증성 이페릿 가스의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하며, 이로써 사상자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출처_물건의 세계사, 가람기획)

 

“방독면 [防毒面, gas mask] 중독성 화학제·연막·생물학 작용제·방사능 작용제 등을 흡입하거나 부착되지 않게 안면을 가리는 보호구. 방독 마스크라고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독가스를 사용하게 되자 방호대책으로 최초의 방독면이 연합군에 의해 개발, 사용되었다. 오늘날 화생방무기가 주목을 받게 되자, 방독면 상대무기도 독가스로부터 화생방무기로 확대되어 용도가 넓어졌다. 민간에서도 탄광·공장에서 유독 가스나 증기, 유독성 미립자 등으로 오염된 환경 속에서 작업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방독면의 이용범위가 넓어졌다. 또한 소화작업·폭동진압용으로 소방관·경찰관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출처_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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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마스크 박물관 홈페이지의 첫 화면(http://gasmasklexikon.com)

 

기록상으로 1917년 세계1차대전에서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미군의 30 %인 70,552명은 독일군에서 사용한 다섯 가지 가스 때문으로 알려졌을 정도이다. 화학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한 군대는 영국군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걸프전 등에 이르기까지 화학무기와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방독마스크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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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 생화학전을 준비하는 모습

 

우리의 노동은 전쟁이 아니다
이렇게 방독마스크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산업현장에서도 사용되게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 사용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많은 현장에서 사용하는 3M의 방진마스크 조차 1960년대에 개발된 것이다. 당연히 산업현장용 방독마스크 개발은 그 뒤의 일이다. 이쯤에서 한 번쯤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만 하다.

 

“처음 작업장에서 방독마스크를 지급한 사업주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것을 착용한 노동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쟁을 치루는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평상시 하던 노동을 더 안전하게 할 뿐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현장에서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들 중에는 매우 유해한 화학물질들이 존재한다. 석유화학 사업장 중에는 전쟁당시 사용되었던 물질들을 의약품의 중간원료로 생산하기도 한다. 또한 수많은 발암물질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방독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해한 물질을 마시는 것을 보면 아찔할 때가 많다. 그러나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는 유해물질을 일부러 분사하여 노동자를 죽이려는 적군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화학포탄을 대비해야 하는 두려움도 없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생산물량 위주로 공정을 운전하면서 언제 터질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것과 유해한 물질이 존재하는데도 충분한 공학적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아 유해물질을 마시지 않고서는 일할 수 없는 “방치된 현장”이 있을 뿐이다.

 

최소한 방독면을 나누어주는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해야 할 조치는 취한 다음”이라는 전제가 분명히 지켜져야만 한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의 제29조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노동부는 국방부가 아니라는 점만 깨달으면 된다. 그것만 깨닫는다면 건설현장에서 보호구 착용을 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잡아내기 이전에 얼마나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함으로써 더 많은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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