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14:28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 기념일에 정오교통에서는 "정오파업 승리를 위한 연대의 밤"이 민주노동당 중랑갑지구당과 함께 치러졌다. 먼저 5·18 기념행사를 가졌다. 묵념하는 동안 음악 대신 정오교통 정문 앞 큰길을 지나는 버스와 자동차에서 나는 경적소리, 배기음을 들으며 20여년전의 항쟁과 조경식 동지의 분신을 생각했다.
간단하게 행사를 마치고 정오교통 조합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분임토의를 시작했다. 택시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엇이고, 정오에서의 탄압과 착취는 무엇이 있었는지 얘기를 들었고, 택시노동자의 삶에 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너 나가" 형님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형님께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어엿한 이름이 있을테다. 하지만 왠지, 분임토의 내내 사회자에게 집중하지 않는 조합원들을 보면, 또는 박수쳐야 할 시점에 손을 놀리는 동지를 보면 곧장 "너 나가"라며 분위기를 휘어잡은 형님께는 그냥 "너 나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을 듯(사실은 형님께 "너 나가"란 이름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동의도 얻었다). 이제부터는 형님의 얘기다.
부가세 감면분 말야. 96년 건교부 시행령 그 때 시작된 거야. 건교부에서 부가세를 50 % 감면해 줄테니 노동자 복리증진을 위해 써라 그런 거지. 근데 지금까지 하나도 쓰인 것 없어. 나 역시 일원 짜리 한 장 받은 적 없어. 근데 사장놈은 옷도 사주고 그랬다는 거야. 그렇지 천 오백원 짜리 옷 받아 봤지. 우리 정오교통에서 입고 다니는 이 옷 말야. 근데 이게 단체협약에 있는 거라구. 복리증진에 썼다고? 좋다, 그래봐야 30만원인데...
내 아우 조경식 동지가 깡다구로 너 죽고 나 죽자고 한 거야. 96년부터 그래왔던 거야. 경식이 분신하고, 지금 사람들이 울산에서 와, 전국에서 와. 난 싫어. 내 싸움은 내가 할거야. 그리고 자기가 나서서 싸우지 않고 남 싸우는 거 이용해서 뭐 좀 주워먹으려는 놈들 싫어.
근데 왜 정오교통만 죽어야 하느냐... 내 아우만 죽어야 하느냐... 씨를 뿌려야 하는 거야. 정오는 전국 택시의 씨앗인 거야. 나무를 잘라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되는 거야. 씨앗이 뿌리를 내리면 되는 거야.
경식이 이 새 끼가... 내가 깡다구가 세냐, 너가 세냐. 그 전날까지 우린 그랬지. 내 불찰이야. 오늘 면회 가서도 "형 왔다" 그러고 좀 얘기하려고 했는데. 가슴에서 뭐가 팍 올라와서, 허 ∼. "너 뒤지면..." 그러고 나오는데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내가 수많은 일을 겪었어도 사람이 죽는 건, 이건 아니구나. 눈물이 흘렀지.
그렇게 불을 질러가지고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 하는데, 이 현실이 무진장 어렵다는 걸 정오식구들이나 당원들이나 직시해야 돼.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싸움. 여기 있는 우리 식구들. 민노당 동지도 다 우리 식구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싸움은 반드시 있는 자가 이기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뭉쳐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18일 조경식 동지에게 문병 갔던 동지들로부터 조경식 동지가 사람을 알아보더라는 반가운 얘기를 들었었다. 오늘 형님이 다녀오신 게로구나. 말씀하시는 동안 계속 막걸리 냄새가 나더니만 다녀오시면서 한 잔 하신 게로구나. 형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저기 저 빨간 잠바 입은 놈 있지? 그 놈이 경식이가 그렇게 불지르고서 며칠을 술만 쳐먹고 헤롱거리는거야. 야 이 새 끼야 그러면서 혼냈는데... 저 놈이 병원에 갔다왔던거지. 나도 술먹었어. 술 안먹고는 안되겠어서 술 먹었어. 그랬더니 저 새 끼가 이젠 지가 선배래. 문병선배... 경식이한테 "형 왔다" 그러니까 눈동자가 움직이고 쳐다보더라구. 마취는 이제 안할거야.
19일 다시 방문한 정오교통 회사 곳곳에는 어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1식 2찬이지만 동지들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에는 "껑식아 돌아와라. 니 밥 한 번 먹어보자 !"고 큼지막하게 써붙어 있었다. 조경식 동지. 부디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시기를. 우리 다시 주먹 불끈 쥐고, 악덕 사업주, 불합리한 제도와 싸울 수 있기를 다시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