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통의 문자와 산재보험

2012.03.04 19:07

조회 수:7330

c_20110725_2054_4708.jpg
최근 산재법 재개정 요구가 불붙고 있다. 산재관련 소송이 증가하는 것도 관련법과 관련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일과건강




지난 14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로부터 두 통의 문자를 받았다.

 오전 9시14분. “7월9일 한국지엠지부 문○○ 조합원 허리 다쳐 고민하다 자살,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암 신청자 유○○ 노동자 사망, stx조선 문○○동지 감전 사망, 대우조선 우즈벡소비르 추락사해 바다에서 3일 만에 사망한 채 발견. 최근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지 여러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후 3시48분. “stx조선 김○○씨 15미터 아래로 추락 사망사고 발생. 강판 제거를 위한 고정핀 제거작업 중 고정핀이 제거된 강판을 밟아 추락. 현장은 전면 작업중단. 현재 통영지사에서 중대재해 척결 무기한 농성 2차 진행 중.”

일면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루 5명의 부고 소식을 한꺼번에 듣는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허리를 다쳐 고민하다 자살한 노동자와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우리나라 산재보험 체계가 가진 한계를 보여 준다. 이론상으로는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정보를 독점한 사업주에 비해 정보 취득에서 약자인 노동자가 직업병을 입증하는 현재 방식은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치료 또한 제대로 받지 못한다. 삼성백혈병 피해자와 유족들도 4년째 직업병 인정을 다투다 최근에야 행정소송에서 부분 승소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재빠른 항소 덕에 또다시 기약할 수 없는 법정 다툼을 이어 가게 됐다.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도 억울하다. 말할 수 없는 사망자는 언론보도와 경찰조사 중대재해 보고 과정에서 ‘작업자 부주의’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한다. 고정핀이 제거된 강판을 밟아 추락한 노동자가 자신이 추락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을 지나가진 않았을 게다. 일부러 다치고 병들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는 없다. 이는 사업주가 일하는 현장의 위험요소나 유해요인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다.

그나마 노조가 있고 안전보건 활동이 있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억울함이 덜하다. 노조가 역할을 못하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중소·영세 소규모 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낯설기만 하다. 울산에서 만난 한 안전보건 활동가는 하청노동자들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사망재해가 아닌 이상 산재신청을 꺼린다고 전했다.

최근 산재보험 제도개혁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다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중 산재도 건강보험처럼 병원에서 자동으로 산재보험 처리를 하고, 산재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아닌 근로복지공단이나 제3의 기관이 하는 방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재보험 제도를 잘 몰라도 편하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산재보험이 사회보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산업재해자수는 9만8천645명이다. 산재사망자 2천200명을 포함한 숫자다. 하루 평균 264명이 다치고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다. 물론 통계에 잡히는 노동자에 한해서다. 7월14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이현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센터 연구원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7월 18일자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되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319 교대노동과 수면장애 file 2012.03.04
318 “내가 산재 당해 봐서 아는데…” file 2012.03.04
» 두 통의 문자와 산재보험 file 2012.03.04
316 미군의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다 file 2012.03.04
315 독성물질 침입과 우리 몸속 화학물질 [2] 2012.03.04
314 미국과 삼성의 ‘낡은’ 시선 file 2012.03.04
313 암·기형아 등 유발하는 공포의 발암물질, 고엽제 file 2012.03.04
312 유성기업 투쟁과 주간연속 2교대제, 금속노조 file 2012.03.04
311 과학수사와 산업보건 file 2012.03.04
310 “세금 왕창 걷어 많이 쓸 때” file 2012.03.04
309 "화학물질, 회사에서 주는 대로 쓰면 안 됩니다" file 2012.03.04
308 121주년 노동절과 노동시간 단축투쟁 file 2012.03.04
307 자살사고의 산재인정 기준 문제 file 2012.03.04
306 정종환 국토부 장관 발언이 소신인 이유 file 2012.03.04
305 산업재해인가 인간 학대인가 file 2012.03.04
304 도쿄전력과 민영화 file 2012.03.04
303 "보건관리자제도, 적절한 용어·외국제도 이해를 전제로 논의해야" file 2012.03.04
302 모든 직장에 보건관리자를 file 2012.03.04
301 위험해! 피해! file 2012.03.04
300 20년 전 탄가루 섞인 가래와 보상 file 2012.03.04
299 업무사고로 실명된 선반공 산업재해 아니다? file 2012.03.04
298 고 김주현씨 사건으로 본 자살사건의 산재인정 기준 개선과제 file 2012.03.04
297 "화학물질 정보, 어려울수록 쉽게 전달해야" [2] file 2012.03.04
296 교통사고 산재, 노동부의 적극적 대책 필요 file 2012.03.04
295 “새해엔 아름다움보다 건강을 신자” file 2012.03.04
294 노조 전임자 산재인정기준 무엇이 문제인가 file 2012.03.04
293 산재은폐, 국민 모두에게 부담 file 2012.03.04
292 공공기관의 재해예방 노력 file 2012.03.04
291 “뇌·심혈관계 업무상재해 인정기준 개선해야” file 2012.03.04
290 법원판례 알면서도 이러나? file 2012.03.04
Name
E-mail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