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새롭게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제임스 셔먼 ⓒ 주한미군 홈페이지
스티븐 하우스씨로부터 캠프캐롤 지하에 고엽제를 매립했다는 증언이 나온 지 40여 일이 지나서 한미공동조사단은 중간결과 발표를 했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실망이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고엽제 매립 여부 및 현재의 오염 수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한미공동조사단의 활동 시작단계부터 제기되었다. 공병단 조사보고서와 퇴역군인 및 군무원들의 증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해당지역에 대한 토양조사를 미군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엽제와 관련한 내부 조사기록이 있지만, 미군은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한국측에서는 공동조사단만 꾸렸을 뿐,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불평등하고 애매모호한 소파협정의 문제가 또 다시 드러난 것이다.
폐암·방광암·혈액암·신장암 등 발생시킬 수 있는 끔찍한 수준
다행히도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미군이 고엽제 매립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몇개 보고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992년 공병단 보고서에 따르면 제초제 드럼통을 묻기는 했으나 다시 파내어 이동시켰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나, 그리고 "2004년에 삼성물산에 의뢰해 조사해보니 딱 한 군데에서만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는데 농도가 1.7ppb로 매우 낮았다"는 발언이었다. 이를 통해서 두 보고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연히 이 두 가지 보고서에 대한 공개요구가 거세게 일어났고, 미군은 결국 보고서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공개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고엽제가 아닌 새로운 내용으로 충격을 던져주었다. 캠프캐롤이 100종의 화학물질을 취급·저장·폐기했는데, 이 과정에서 토양과 지하수 발암물질 오염이 심각하다는 조사결과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티씨이(TCE) 같은 발암성 유기화합물은 음용수 기준의 1100배가 지하수에서 검출되었고, 비소는 2400배 넘는 수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미 금지된 농약 디디티(DDT)도 토양과 지하수에서 검출되었다. 캠프캐롤 지하수는 폐암·방광암·혈액암·신장암 등을 발생시킬 수 있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보고서 내용을 전달받은 왜관주민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수십년간 마셔온 지하수가 발암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된 것이었으며, 친구라 믿었던 미군이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숨겨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왜관 주민들은 한미공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한다. 고엽제의 매립여부도 중요하지만, 수십년 간 발암물질 지하수를 마셔온 것에 대해 조사하지 않는 한미공동조사단에 기대할 것이 무어냐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미군은 '불통'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한국의 환경규제는 수준이 낮았으며, 환경오염의 두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았다. 한국 국방부조차 지키지 않는 환경법을 미군이 지킬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변했다. 그 증거는 왜관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관주민들은 보수냐 진보냐, 친미냐 반미냐를 따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다. 진실규명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제는 미군이 태도를 바꿀 때이다.
발암물질 지하수, 미군은 마시지 않고 주민들 마시게 방치
수십년간 엉망으로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불법매립에 무단방류로 캠프캐롤 인근 지하수와 토양을 끔찍하게 오염시켰다. 자신들은 발암물질 지하수를 마시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마시는 것은 방치했다. 미군이 범죄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주민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도 미군은 이를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결과를 발표할 때가 아니라, 미군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주한미군사령관이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국민들은 한미공동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군이 사과할 시기를 더 이상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