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례 알면서도 이러나?

2012.03.04 17:48

조회 수:5262

2011년 1월 21일 금속노동자 iLabor.org 김혜선 노무사의 기고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금속노동자 iLabor.org에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선스2.0:영리금지를 따릅니다.



노조전임자는 노동조합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산재보험법 적용대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업무상 재해 신청이 불승인된 사건이 최근 있었다. 과연 노조전임자 활동 중 재해를 당하거나 과로 등으로 질환이 발생한 경우 산재인정이 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산업재해’라 이야기 하는 것은 법 규정상 ‘업무상 재해’로 불리며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노동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의미한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부상과 질병, 장해 및 사망이 ‘업무상 사유’에 의한 것인지 여부이다. ‘업무’라 함은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근로계약을 기초로 형성된 노동자가 본래 수행하여야 하는 담당업무와 그에 부수되는 행위, 담당업무의 개시, 수행 또는 계속에 필요한 행위 등이 포함된다.


법원 판례는 “근로자가 사업주와의 근로계약에 기하여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당해 근로업무의 수행 또는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전임자가 노동조합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연 ‘업무’일까? 이에 대해 노동부는 “노조 전임자가 수행하는 제반업무는 산재보험법에서규정하고 있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1994.8.24. 노동부 재보68607-822)”고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은 노조전임자에 대해 산재불승인을 하고 있다.




c_20110124_1814_4140.jpg

          ▲ 경주지부간부들이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금창화ITW대림사무장 산재불승인규탄"선전전을 하고 있다. ⓒ iLabor.org





하지만 법원은 전임자가 노동조합의 업무를 전임하게 된 것이 사용자인 회사의 승낙에 의한 것이며, 재해발생 당시 ‘근로자’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질병이 노동조합의 업무수행 중 육체적 정신적 과로로 인해 발병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입장과 다른 셈이다.


산재법 적용을 받기위해 해당 상병이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에 앞서 산재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 지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법원은 노동부 입장과 다르다. 이때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를 의미하므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지위를 가지고 있는 노조전임자에게 적용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게 법원 생각이다. 하지만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노조전임자의 경우 산재법 상 보험료 산정 기준이 되는 임금을 지급받는 자가 아니므로 산재법 상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노동부 재보 68607-822. 1994. 8. 24.).


그러나 법원은 “노동조합 업무는 사용자의 노무관리와 밀접히 관련된 업무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만하고 안정된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단체협약에 따라 노동조합 전임자를 인정하여 그로 하여금 근로자의 지위는 여전히 보유한 채 근로계약상의 본래 업무 대신 노동조합 업무를 담당하도록 승낙한 경우에는 비록 그 노동조합 전임자가 재해 당시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않는 노동조합 업무만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지라도, 근로계약상 본래의 업무에 종사하는 일반근로자와 다름없이 산재보험법 상 보험급여의 수급권자로 보는 것이 근로계약관계에서 생기는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산재보험법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된다”(대법원 1994. 2. 22. 선고 92누14502판결)고 하여 노조 전임자의 경우에도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산재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즉 법원은 △ 노조 전임자의 업무가 사용자의 승낙(또는 단체협약)에 의한 것이라는 것 △노조전임자도 근로자의 신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노조전임자의 업무와 사용자 업무의 밀접성 등 을 기준으로 노조전임자의 노조업무 수행 중 입은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부 및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입장이 다른 조건에서 노동자들은 불승인 결정이 날 것을 알면서도 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고, 불승인 통지를 받은 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공단의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 보수적 성향을 가진 법원보다도 더 좁은 산재인정기준을 가지고 실무처리를 하는 근로복지공단. 이 공단이 ‘근로자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라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공단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에 반하여 내부적인 운영지침으로 전임자에 대한 근로자성을 부인하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산재법의 입법취지 자체를 간과하는 태도로 심히 부당하다. 공단은 산재법 취지에 걸맞게 노조전임자의 산재인정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그 설립 목적이 무색하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


번호 제목 날짜
319 교대노동과 수면장애 file 2012.03.04
318 “내가 산재 당해 봐서 아는데…” file 2012.03.04
317 두 통의 문자와 산재보험 file 2012.03.04
316 미군의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다 file 2012.03.04
315 독성물질 침입과 우리 몸속 화학물질 [2] 2012.03.04
314 미국과 삼성의 ‘낡은’ 시선 file 2012.03.04
313 암·기형아 등 유발하는 공포의 발암물질, 고엽제 file 2012.03.04
312 유성기업 투쟁과 주간연속 2교대제, 금속노조 file 2012.03.04
311 과학수사와 산업보건 file 2012.03.04
310 “세금 왕창 걷어 많이 쓸 때” file 2012.03.04
309 "화학물질, 회사에서 주는 대로 쓰면 안 됩니다" file 2012.03.04
308 121주년 노동절과 노동시간 단축투쟁 file 2012.03.04
307 자살사고의 산재인정 기준 문제 file 2012.03.04
306 정종환 국토부 장관 발언이 소신인 이유 file 2012.03.04
305 산업재해인가 인간 학대인가 file 2012.03.04
304 도쿄전력과 민영화 file 2012.03.04
303 "보건관리자제도, 적절한 용어·외국제도 이해를 전제로 논의해야" file 2012.03.04
302 모든 직장에 보건관리자를 file 2012.03.04
301 위험해! 피해! file 2012.03.04
300 20년 전 탄가루 섞인 가래와 보상 file 2012.03.04
299 업무사고로 실명된 선반공 산업재해 아니다? file 2012.03.04
298 고 김주현씨 사건으로 본 자살사건의 산재인정 기준 개선과제 file 2012.03.04
297 "화학물질 정보, 어려울수록 쉽게 전달해야" [2] file 2012.03.04
296 교통사고 산재, 노동부의 적극적 대책 필요 file 2012.03.04
295 “새해엔 아름다움보다 건강을 신자” file 2012.03.04
294 노조 전임자 산재인정기준 무엇이 문제인가 file 2012.03.04
293 산재은폐, 국민 모두에게 부담 file 2012.03.04
292 공공기관의 재해예방 노력 file 2012.03.04
291 “뇌·심혈관계 업무상재해 인정기준 개선해야” file 2012.03.04
» 법원판례 알면서도 이러나? file 2012.03.04
Name
E-mail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