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3:45
4월 9일 오후 2시부터 환경재단 레이첼 칼슨 홀에서는 "발암물질정보센터 및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 출범식이 열린다. 이제 한국사회가 직업성 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벗기고, 제대로 된 발암물질 정보의 소통과 적극적 직업성 암 예방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앞으로 여러번에 나누어서 발암물질정보센터 및 감시네트워크 출범 배경과 의의, 그리고 사업계획을 나누도록 하겠다.
Ⅰ. 발암물질과 직업적 노출
1. 발암물질의 확인과 평가
가. 발암물질 확인과 평가의 의미
암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원인물질의 확인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를 비롯한 몇몇 국가의 보건기구들은 발암물질 확인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미 알려지거나(known), 의심되는(suspected)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나 민간차원의 활동과 노력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발암물질의 확인은 위험도평가(risk assessment : hazard identification, exposure assessment, risk characterization) 및 위험도관리(risk management) 등 후속 작업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단계이며, 이를 통해 어떤 정책대안이 가장 중요한지, 어떤 조치가 가장 적절한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발암물질이란 일반적으로 특정연령층에 고유한(age-specific) 암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인자, 혼합물, 노출환경을 일컫는다. 발암물질 확인 작업은 인간역학연구, 장기간의 동물실험, 기타 메커니즘 관련 연구결과들에 대해 과학적 평가를 기반으로 하며, 각각의 데이터들은 전반적인 평가를 함에 있어서 개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나. 발암물질 확인과 평가를 위한 국제적 시도
1)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는 CIE(The Carcinogen Identification and Evaluation Group)를 주축으로 1971년 이래로 IARC Monograph program을 운영하면서 인체 발암물질에 관한 평가보고서(Monographs on the Evaluation of Carcinogenic Risks to Human)를 발간하고 있다. 현재까지 화학물질, 화학물질 그룹, 산업공정, 혼합물질, 물리적 인자, 생물학적 인자 등 900종 이상을 대상으로 인간발암성에 대한 역학연구와 실험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하였고, 400종 이상에 대한 발암성을 확인하였다. IARC Monograph는 전 세계 50개국 이상,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관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등급 |
발암성 분류기준 |
발암위험요인 |
Group 1 |
인체발암성물질(Carcinogenic to humans) |
105종 |
Group 2A |
인체발암성예측/추정물질 (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 |
66종 |
Group 2B |
인체발암성가능물질 (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 |
248종 |
Group 3 |
인체발암성미분류물질 (Not classifiable as to carcinogenicity to humans) |
515종 |
Group 4 |
인체비발암성추정물질 (Probably not carcinogenic to humans) |
1종 |
전체 |
935종 |
IARC에서는 후보발암물질에 관한 발암성평가를 할 때, 연구 결과와 해당 연구자 및 관련 전문가를 소집하여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동의를 얻어 결론을 도출하는 전문가 회의를 수행하고 있다. 이때 전문가들은 지식과 경험을 고려하고, 분명히 또는 명백히 이익에 간여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선택된다. 평가과정은 ①화학물질의 노출과 사용현황평가 ②인간발암위험평가, ③동물발암성 평가, ④발암성과 메카니즘에 대한 관련연구 평가 등 각 분야별로 전 세계에서 모인 15~30명의 전문가들로 Working Group을 만들어 그룹내 및 그룹간 평가?검토, 전체회의에서의 결정 등 종합적인 평가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역학연구와 동물실험결과를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으며, 이외에 유전독성, 돌연변이성, 대사 및 메카니즘 관련 연구를 추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4). 이러한 인간 발암물질에 대한 평가 과정은 그 완결성이나 정확도에 관한 한 국제적으로 신뢰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2) 국립독성프로그램(NTP, National Toxic Program)
NTP는 2년에 한번 발암물질보고서(RoC, the Report of Carcinogen)를 발간하고 있다. RoC는 미국보건복지부(the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가 공중보건법(the Public Health Services Act)에 따라 연방의회에 제출하는 문서로서, 여기에서는 화학물질, 혼합화학물질, 암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기술공정과 관련된 노출환경 등을 확인하고, 금속류, 농약류, 약물류, 자연 또는 합성화학물질에 대해 광범위한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①발암성, 유전독성, 생물학적 메커니즘, ②잠재적 인간노출, ③노출을 제한하기 위한 현행 법규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평가과정에는 NTP 소속의 과학자뿐만 아니라 기타 연방 보건기구나 규제기구, 비정부 연구소 등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참여한다. RoC 리스트는 노출과 이로 인한 발암위험에 대한 정량적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잠재적인 위험을 확인하고 있다.
NTP에서 발암성을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현재 총 246종에 대해서 발암성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등급 |
발암성 분류기준 |
물질수 |
K |
인간발암성으로 알려진 물질 (Known To Be Human Carcinogen) |
58종 |
R |
합리적으로 인간발암성이 예상되는 물질 (Reasonably Anticipated To Be Human Carcinogen) |
188종 |
소계 |
246종 |
3) 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미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NIOSH)에서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구분 없이 총 131종을 잠재적 직업성 발암물질(potential occupational carcinogen)로 규정하고 있다.
2. 국제적 시도와 우리나라 노력의 비교
발암물질을 정의하기 위한 국제적 시도와 우리나라의 노력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IARC의 발암물질 목록과 우리나라 노동부의 발암물질 목록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IARC의 물질 중에서 직업적으로 의미있는 물질만 추려내어서 비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IARC의 Group 1, 2A, 2B에 해당하는 물질 총 419종이 모두 직업성 발암물질은 아니다. IARC의 2008년 세계암보고서(World Cancer Report 2008)에서는 직업적 노출이 중요한 발암물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29개 물질을 인체발암성물질(Group 1)로, 28개 물질을 인체발암성예측/추정물질(Group 2A)로 분류되어 있다. 이외에도 총 110개 물질에 대해서는 직업적 노출이 가능한 물질로서 인체발암성가능물질(Group 2B)로 규정하고 있다( Siemiatycki, 2004). 한편, IARC는 특이하게도 발암물질 뿐 아니라 직업이나 산업 자체도 암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19개 직업이나 산업에 대해서는 별도로 Group 1 또는 2A로 규정하여 발암성을 경고하고 있다. 종합하면, IARC 목록 중에서 직업적 노출이 문제되는 발암물질은 167종이고, 고위험산업은 19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 소관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과 노동부 소관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발암물질의 목록에 대해 정의하고는 있다. 그런데 환경부와 노동부 모두 적극적으로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하지는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발암물질 목록에 들어가는 물질의 숫자가 외국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노동부고시 “화학물질 및 물리적인자의 노출기준”에서는 총 56종의 물질을 발암성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노출기준이 있는 물질은 39종, 노출기준 미제정물질은 17종이다. 아울러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서 정하고 있는 발암인자는 방사선 피폭, 검댕과 타르, 염화비닐, 크롬, 벤젠, 석면, 실리카 등 7가지이고, 건강관리수첩 발급대상 발암물질은 베타나프틸아민 및 그 염, 벤지딘인산염, 석면, 비스에테르, 벤조트리클로라이트, 염화비닐, 크롬산, 중크롬산 및 이들 염, 삼산화비소, 제철용코오크스, 베릴륨 및 그 화합물, 특정 분진 등 14종이다.
발암물질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의학적 근거들이 확인되면서 노동자가 직업상 노출되는 것을 금지, 허가, 관리되어야 할 발암물질이나 발암인자를 정기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직업성 암 예방과 발암인자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발암인자의 목록을 공식적으로 작성하여 공표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항이다. 국제단체나 외국의 보건관련 기구들은 발암물질의 확인과 평가를 암 예방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최근의 연구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쳐 공표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의 발암물질관리는 외국에서 규정하고 있는 발암물질을 그대로 도입하여 적용하는 데 머물고 있으며, 확인과 평가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IARC에는 지정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부는 발암물질로 지정하지 않는 물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물질이 발암물질로 지정되지 않아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 다루지는 못한다. 4월 9일 발족식 장소에서는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이므로 꼭 참석 바란다.
유럽과 우리나라는 전체 암 중에서 직업성 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3. 다양한 업종과 발암물질 노출
정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하였다면, 어떤 산업과 직군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암을 예방하거나 보상하기 위한 적극적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 정부에서는 발암물질 노출노동자의 통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에서는 소속된 국가들에의 기존의 발암물질관련 정보를 통합하여 데이터베이스(Carcinogen Exposure, CAREX)를 구축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소(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 FIOH) 주도로 진행되었으며, 여기에서는 국제산업표준분류(ISIC code)를 이용하여 세부적으로 총 55개 산업별 발암물질 노출노동자수를 추정하였고, IARC의 발암물질 목록 중 85개 인자별, 주요 발암물질 20개 인자별 노출노동자수를 추정하고 있다. 전체 고용된 노동자의 23%인 3천2백만 명의 노동자가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있으며, 최소 2천2백만 명의 노동자가 IARC Group 1에 노출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유럽의 이런 노력은 궁극적으로 발암물질관리를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Priority)를 정하고, 발암물질노출과 직업성 암의 연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후속 역학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물론, 국내의 연구자들 중에서도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를 추정하려는 시도를 한 경우는 있다. 조수헌(1997)의 연구에서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실시한 제조업에 대한 환경조사를 토대로 목분진, 니켈 등 9종의 발암물질에 대한 노출노동자수를 추정하여 약 3만7천명의 노동자가 노출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만, 일부 제조업만을 대상으로 하였고, 선택된 발암물질에 대해서만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하였다.
선택된 발암물질 |
제조 |
사용 |
부산물 |
전체노동자수 | |||
사업장수 |
노동자수 |
사업장수 |
노동자수 |
사업장수 |
노동자수 | ||
목분진 |
0 |
0 |
4 |
106 |
1,720 |
14,268 |
14,374 |
니켈 |
1 |
11 |
292 |
1,374 |
13 |
6,297 |
7,671 |
크롬 |
0 |
0 |
311 |
2,311 |
8 |
6,320 |
8,631 |
벤젠 |
8 |
285 |
531 |
2,894 |
20 |
1,317 |
4,496 |
코우크스배출물질 |
3 |
801 |
54 |
518 |
1 |
16 |
1,335 |
석면 |
0 |
0 |
46 |
718 |
4 |
44 |
762 |
비닐크로라이드 |
3 |
95 |
5 |
127 |
5 |
26 |
248 |
벤지딘 |
3 |
52 |
14 |
118 |
0 |
0 |
170 |
비소 |
0 |
0 |
4 |
43 |
0 |
0 |
43 |
전체 |
18 |
1,244 |
1,261 |
8,209 |
1,771 |
28,288 |
37,730 |
피영규(2008)의 연구에서는 2004년 노동부 주관으로 수행된 제조업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물질의 제조, 취급, 사용실태에 대하여 사업장수, 취급량, 노출노동자수를 파악하였다. 여기에서는 총 161종의 물질에 제조, 사용, 취급시 약 50만 명의 노동자가 노출되고 있다고 산출하면서, 발암성, 생식독성, 변이원성 물질이 중복되어 해당되는 경우를 감안하지 않아 다소 과대평가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10). 하지만 이 결과에 따르면 발암물질에 대한 직업적 노출은 거의 전 산업분야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내외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제조 |
사용 |
발생 | |||||
사업장수 |
취급량 |
노출노동자수 |
사업장수 |
취급량 |
노출노동자수 |
사업장수 |
노출노동자수 |
481 |
30,004,930 |
9,595 |
48,257 |
135,325,243 |
480,592 |
140 |
4,718 |
그렇다면,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를 파악하기 위한 우리나라와 외국의 노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외국의 경우 산업별, 발암물질별 노출노동자수를 추정하는 방법에 있어서 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환경측정결과나 일부 실태조사를 토대로 파악된 노출노동자수를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잠재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노동자수를 추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발암물질별로만 결과가 나타나고 있어 산업별, 직업별 등 보다 세부적인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로서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연구자의 사명감에 의한 조사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겠다. 즉, 직업성 암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정책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발암물질을 정의하지도 않고, 조사하지도 않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글이 좀 어렵게 작성되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으나, 아직 역량이 부족한듯하다. 4월 9일 토론회에서 뵙는다면, 훨씬 쉽게 전달해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다음 시간에는 "Ⅱ. 직업성 암의 문제, 얼마나 심각한가?"라는 제목으로 얘기를 들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