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3:33
카마타 사토시(鎌田慧)는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중의 한명이며, 1970년대에 도요타에서 임시직 노동자로 일했고, 그의 경험을 책으로 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책은 1982년에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가 다시 도요타 본사를 방문하여 작성한 보고서가 2004년 7월 2일 「주간금요일(週刊金曜日)」에 실렸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주에 이 보고서가 재팬포커스(Japan Focus)에 번역되어 올라왔다.
도요타는 일본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이다. 2004년에 1조 1천6백만엔(100억 달러)의 이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금액은 세후 금액으로 순이익이다. 일본 자본주의에서 한 기업이 1조엔 이상의 순이익을 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동차 판매는 제너럴모터스의 몫이다. GM은 도요타보다 130만 대의 자동차를 더 판매하고 있으며, 총 매출액은 227억 달러나 많다. 하지만, 도요타는 순이익에서 GM을 앞선다. 즉, 도요타는 비용절감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이윤의 측면에서 도요타를 앞서는 기업들도 있다. 1위는 엑슨모빌이다. 하지만, 석유회사와 은행을 제외하고 제조업 회사만 따진다면 도요타는 1위이다. 도요타의 이윤추구를 위한 모토는 “마른걸레도 다시 짠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번 도요타에서 쥐어짜고 있는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지적해왔다.
1만명 가까운 임시직 노동자
도요타 본사는 일본의 중심인 나고야에서 기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도요타시에 있다. 이 도시는 예전에 코로모라고 불렸다. 코로모는 승려들이 입는 옷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도시의 이름을 바꿔버렸다. 일본에서 회사의 이름이 붙은 도시는 도요타시 밖에 없다. 아침에 도요타 본사 앞에 서 있으면 흰색 셔츠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기술자들이다. 거리를 가로질러서 도요타기술센터로 가는 길이다. 그들이 출근하는 길에 시민들을 거의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정장을 다 갖추어 입을 필요가 없다. 이런 것 자체가 세계일류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인 듯하다.
도요타시
본사로부터 대각선 상에 공장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트럭의 차체와 기타 부품이 생산된다. 나는 아주 기다란 캐리어카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31년 전, 약 6개월간 나도 이 문을 통과했다. 피곤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말이다. 나는 이른바 임시직 노동자로 일을 했다. 트랜스미션을 조립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절망의 자동차 공장 : 임시직 노동자의 일기(自動車絶望工場-ある季節工の日記)”라는 책에서 다룬바 있다.
불어로 번역된 저자의 책, 도요타 - 절망의 공장
거리에 서서 공장의 전경을 슬쩍 보기만 해도 지난 시절 나의 피곤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어떤 향수같은 것도 느꼈다. 다시 한 번 안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같은 커다란 문이 설치되어 있고,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다니던 시절의 월급은 초과근무와 심야교대근무 수당까지 합쳐서 7만9천엔이었다. 요즘 환율로는 720달러이다. 최근 신문광고를 보니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25만4천엔(약2천300달러)라고 한다. 31년 전에 비해 세배 정도 높아졌다. 1972년 도요타의 경영실적이 지역일간지였던 주니치신문(中日新聞)에 실린적 있었다. “일본 최고의 기업 320억엔의 이윤 창출, 최고의 영업실적 확실”이라는 제목이었다. 1970년의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는 30년 역사상 최고의 이윤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 1조가 넘는 이윤을 낸다고 하니, 내가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30배의 이윤을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30년 전 도요타의 노동자는 4만1천명이었다. 현재 6만5천명이라니 겨우 50 %만 증가한 셈이다. 겨우 이 정도의 인력 증가에도 불구하고 30배의 이윤을 내고 있다. 도요타에서는 ‘노동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지독스럽게 ‘인간을 절약’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지난 기간 동안 급격히 증가한 것은 나와 같은 임시직 노동자들이다. 내가 일하던 시절에 임시직 노동자는 3000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만명에 이른다. 도요타 회장인 오쿠다 히로시가 올해 3월에 얘기한 것이니 틀림없다. 이 말은 어느 기자회견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다가 나온 말이다. 최근 미츠비시자동차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미츠비시의 남는 인력을 도요타가 고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글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용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저임금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고용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기 위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쿠다 회장은 일본경제단체연합의 의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독자들 중에는 최고의 이윤을 자랑하는 도요타에서 불안정고용의 문제가 압축되어 있는 임시직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거북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순진한 생각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 도요타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든다. 자신들이 거두는 이윤의 70 %는 북미를 비롯한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슬픔의 도시에서 비밀의 도시로
나는 도요타에서 일하는 내 오랜 친구들을 최근에 만났다. 그들은 내게 도요타의 해외공장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훈련교관으로 파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장에는 노동자들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임시직을 채용하면서 자동차 조립라인의 경험이 있어서 즉각 투입될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 채용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임시직의 고용은 최소 4개월이지만, 최대 2년 11개월까지 가능하다. 과거 계절노동자나 이주노동자로 불리던 단기임시직 노동자들이 최근에는 장기 임시직 노동자로 바뀌고 있으며, 도요타의 거대한 이윤을 위해 남김없이 착취당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곳곳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의 50 %는 잉여인력으로 취급받고 있다. 컴퓨터 수리 같은 직군은 대규모로 아웃소싱되어서 정규직노동자의 반 밖에 안되는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려먹고 있다. 생산직 현장에서는 새로운 임금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임금체계는 기존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를 파괴하고, 기술에 근거한 임금체계로 전환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30대나 40대에 최고임금을 받게 되고, 51세 이후부터는 임금이 감소하게 된다. “임금이 동결되는 것보다 더 나쁜 거야. 사실상 임금이 감소되는 것이지.”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반대로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노동자들에 비하면 많이 받고 있잖아. 어떻게 우리 회사만 이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만약 한 노동자가 노동조합 지회의 간부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답변은 이런 식이다. “너가 지금 받는 임금을 주면서 너를 고용할 수 있는 다른 직장이 있겠어?” 이것은 일종의 “노사화합”에 의한 결과이다. 미츠비시 자동차의 경제적 곤란은 이러한 태도에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계속 움츠러들기만 하고 있다.
도요타는 현장에 위기의식을 퍼뜨렸고, 그 목적은 임금을 낮추는 것이었다. 내가 도요타에서 일할 때에도 관리자들은 맨날 똑같은 소리를 했었다. 니산 자동차가 우리를 따라잡고 있다. 미국시장을 진출해야 하는데 GM은 너무 강력하다. 미츠비시처럼 끝나지 말자. 도요타는 이런 식의 선전을 통해서 임금을 묶어놓고 있다. 그 덕분에 도요타의 현금보유고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26개국의 생산설비를 운영하면서 총 22조엔의 자산(2000억달러)가치를 자랑하고, 2조2천억엔의 현금을 도요타 은행에 보유하게 되었다. 매년 임금협상은 이루어지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회사는 경쟁력을 먼저 생각한다는 얘기만 나눈다. 노동자들과 하청회사는 이러한 평화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 한다.
완전히 노동조합이 무력화되었고, 회사내에 견제세력이 존재하지 않게 됨에 따라서, 도요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이런 문제가 외부로 알려져서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한다. 노동부에서는 도요타에게 추가근무를 무급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중지를 요구하였으며, 나고야세무서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탈세가 적발되기도 하였다. 이 뿐이 아니다. 일본의 자동차정비인증기준에 따라 누설시험을 해야 하는데도 이를 하지 않았다. 도요타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었지만, 쩨쩨하며, 임시로 무마하는 일이 많으며, 실수가 많고, 불명예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도요타는 세계적 기업이라기 보다는 지역의 군소기업 마인드에 머물고 있다.
나는 오랜 친구들과 대화하던 끝에 3월의 이른 아침에 발생된 사고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프레스기에 압착되어 33세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였다. 자살이었다. 과로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망한 노동자는 개발부의 엘리트 기술자였으며, 노동조합의 간부였다. 내 친구들은 지난 10년간 도요타에서 노동자들의 우울증이 심각하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정신건강관리에 대한 기사가 노동조합 신문에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 27일의 한 노무관리회의 보고서에서는 정신질환 발생율이 높은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보고서는 비상상황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지난 달에 노동조합의 회의가 열렸고, 노동조합의 적극적 대응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동안 노동조합에서는 정신질환의 에방대책을 마련하고, 정신질환을 조기발견하고, 정신질환으로 병가를 떠난 노동자들에 대한 지속적 추적관찰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평가이다. 심지어 작년 봄에 있었던 노사의 교섭결과는 회사에게 아부한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신건강이 위협받는 것은 단지 개개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회사의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개개인의 적극성을 감소시킬 것이며, 소중한 노동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인데도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었다.
회사의 유일한 목표는 도요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율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나는 토구치 마사시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도요타 노동자의 아들이며, 어렸을 때부터 회사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오늘도 어디에서 사망사고가 났다’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서 커온 사람이다. 그의 나이는 67세이다. 그는 7선 시의원으로 도요타를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요타시에 살고 있지만, 누군가 나에게 도요타는 어떤 기업이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아무도 도요타라는 기업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답니다.”
31년전, 토구치는 자신의 동네를 “슬픔의 도시”라고 불렀다. 시장이 도요타의 인물로 당선되었고, 40명의 시의원 중에서 9명이 도요타 공장 출신이었다. 도요타시의 노동자 중에서 83.7 %는 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며, 도요타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95.5 %는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도요타시의 세무서를 방문한 적 있다. 세무서를 찾아가서 지방세 중에서 도요타로부터 충당되는 금액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았다. 세무서에서는 그런 통계를 내본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만약 자료를 작성해서 대답을 해야된다고 해도 도요타의 승인이 없이는 말해주기 곤란하다고 했다. 31년 전 도요타시의 기업세 중에서 81 %는 도요타 자동차로부터 나왔다. 1997년에는 68 %였다. 그리고 지금은 비밀이다. 아무래도 도요타시는 비밀의 도시가 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