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3:29
아타미에서 다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돌아갔다. 시간도 빠듯했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도시락을 사서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먹었다. 가장 싼 것을 골랐는데도 600엔이 넘는다. 관광지라서 그런가보다. 나야 젊어서 상관없다지만, 이사징님께는 국물있는 것을 드시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죄송스럽다.
박현서 이사장님
서둘러서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이유는 오후에는 ABC기획위원회 총회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회장소는 신주쿠 근처에 있는 남녀공동참여추진센터(男女共同參與推進センタ) 3층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참석자 숫자가 많지 않았다. 총회장소에는 약 15명 정도 앉아있었다. 예상이 적중한 것은 참석한 분들의 머리카락 색깔이었다. 흰머리가 대부분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보기에 70은 넘으신 분들이셨다. 내 또래가 한 명 있어서 척 보기에도 꽤나 튀었다. 총회가 진행중이었으므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신쥬쿠 남녀공동참여추진센터 건물 모습
한 여성분께서 계속 말씀을 하신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부위원장이셨다. 자료를 보니 731부대를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사업의 추진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ABC기획위원회에서는 지난 1년간 731부대전시회를 7회, 독가스전시회를 4회 진행하였으며, 총 3000명의 인원이 관람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중에 저지른 죄악에 대해 증거를 남기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731부대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세계인류가 잊지 않도록 중국에 있는 731부대 유적을 복원하고 전시관을 만들어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리고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이 또 있다. 버려지거나 숨겨진 독가스병기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731부대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하자고 호소하던 부위원장
부위원장의 말씀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하였다가 기념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연의 제목은 “伊藤ハム工場の地下水汚染は遺棄毒ガスか!”이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이또 햄 공장의 지하수오염은 버려진 독가스 때문!”이 된다. 강사는 平塚독가스문제연구회(平塚毒ガス問題硏究會) 의 키타 고이치로(北 宏一朗)씨였다. 이 분은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이고, 현재는 은퇴하여 전쟁독가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강의 내용은 이러했다. 작년 10월, 이또 햄 공장의 지하수에서 고농도의 시안화합물이 검출되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환경성에서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팀에서는 햄공장의 염소처리과정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생산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문제가 된 햄공장의 동쪽 300 미터에 있던 군부대의 독가스 생산시설 때문에 시안화합물이 발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할 당시, 일본군에서는 당시 보유중이던 독가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놓고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미국에 사실대로 보고하자는 입장도 있었지만, 그냥 조용히 폐기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언젠가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 사용하게 될 수 있으므로 지하에 보관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독가스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모른다. 특강을 맡은 강사는 당시 군부대가 있었던 기록과 지도를 들고 나와 현재의 햄공장 위치와 비교해주었고, 독가스 시설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이 청산가리 같은 시안화합물이었음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본에서 독가스를 재사용할 것이라고 믿은 군인들이 지하에 시멘트로 방을 만들고 독가스를 옮겨놓았을 수 있는데, 그 가스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시멘트를 부식시키고 외부로 흘러나오고 시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고이치로 기타 씨는 열심히 강연을 해주셨다. 지도와 사진을 높이 들고 설명하는 고이치로씨의 모습.
약간 멍한 느낌이 들었다. 60년도 넘은 과거의 문제를 이들은 오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동이 미래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근처의 중국음식점으로 가서 뒤풀이를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회원이 되겠냐고 물어왔다. ABC기획위원회는 일본 전국에 회원이 약 250명 된다고 한다. 농담 삼아 회원자격 시험만 없다면 회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회원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
나는 수첩을 꺼내서 이렇게 적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어제 누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일본의 민중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와 자본과 자본의 권력을 미워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기 계신 여러분은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을 슬퍼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슬픔을 저는 이제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2월 22일. 김신범.
그리고 내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께 건네었다. 한글을 읽을 수 없는 그녀와 동료들은 무척 궁금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일본의 세 번째 밤이 저물었다.
코이치로 씨가 준비한 자료들, 나는 그 정성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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