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3:13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 '강태선의 살림살이'에서 퍼왔습니다. 기사는 강태선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글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기사 게재에 흔쾌히 동의하신 강태선 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퍼온 주소는 http://blog.ohmynews.com/hum21 입니다.
부산 범일동서 터진 최악의 산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전문의 일부>
그 4.19가 있었던 해, 1960년은 헌법전문 맨 처음에 명기될 만큼 큰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1960년 3월, 전국은 대통령선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그 해 3.1절 다음 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가 터졌다.
1960년 3월 2일 오전 부산 범일동 국제고무공업주식회사에서 화재로 노동자 62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동아일보 1960. 3. 3~5 자에 보도된 당시 사건의 정황과 경찰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제고무공업주식회사는 군화를 생산하는 업체로 화재는 제2공장 포화부(고무풀칠 작업부서) 2층에서 시작되었다. 불은 아침 7시45분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화부 2층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충천하였다.
불은 2공장 포화부에서 일하던 300명 정도의 직원(대부분 여성)들을 덮쳤다. 1공장으로 통하는 두 개의 문은 도난을 염려하여 잠겨 있었으며 1층으로 통하는 유일한 계단은 나무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여기에 책임자급인 이모씨가 그나마 비상구를 막아서면서 ‘아무도 놀라지 말고 동요하지 말라’고 하면서 길을 막아섰다.
보도엔 이 사람은 놀라서 달아나는 직공들 앞에 서서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면서 막대기를 두드렸다고 한다. 신입 여직원이 담배를 피우다가 인화성 휘발유에 불이 닿았다는 증언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나왔다. 경찰은 담배를 피웠다는 102번 여공과 출입구를 막아선 책임자 등 8명을 연행하여 사건진상을 조사하였다."
화재 원인은 정말 담뱃불?
당시 화재가 시작된 포화부에서 사용한 고무풀이라는 것은 대부분 ‘톨루엔’을 주성분으로 하는 고무용 접착제이다. 직원 두 명에 고무풀 하나를 사용했다하니 족히 100통은 넘었을 것이다. 추정컨대 작업장은 평상시 수백 피피엠의 톨루엔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고무풀을 열어두기라도 한다면 작업장 바닥을 비롯하여 비교적 밀폐된 있는 곳은 충분히 국소적으로 폭발하한에 육박하는 톨루엔 농도가 조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불이 나기 위해 굳이 담뱃불까지 필요없다. 왠만한 정전기 스파크라면 폭발적 발화를 일으킬 수 있다. 2007년 발생한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에서도 고무풀에서 발생한 톨루엔이 미상의 점화원에 의해 폭발에 가까운 화염으로 전개되면서 엄청난 참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즉 사고가 대형화된 것은 불량한 작업환경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상구는 하나 밖에 없었고 그 또한 관리감독자가 출입문을 막아섰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었다면 아마 사업주가 입건되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있었으나 생긴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법이 작동했을 가능성은 없다. 아마 사건은 형법상 ‘실화’ 쯤으로 애매한 직원들만 처벌 되고 말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건 뒤, 불에 탄 백 여명의 청춘과 그 유족들의 삶은 갈기 갈기 찢겨졌지만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 가수 남인수의 '한 많은 네 청춘' 앨범 사진. 원제가 <사백환의 인생비극>으로 국제고무공업 화재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 가수황제 남인수전승보전회
남인수의 ‘한 많은 네 청춘’이라는 곡의 원제가 ‘사백환의 인생비극’으로 바로 이 사건을 곡으로 만든 것이란다. 망각은 또 다른 재해를 부른다. 예나 지금이나 주류 사회는 산재를 잊으라 한다.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잊지 않는 것, 사실 그것만으로도 예방은 이미 된 것이다. 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49년 전 오늘(3. 2) 산재역사를 돌이키는 이유다.
- "한 많은 네 청춘" 가사(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 남인수 노래)
열 여덟 꽃봉오리 열 아홉 꽃봉오리
눈물의 부산(釜山) 처녀 고무공장 큰 애기야
하루에 사백 환에 고달픈 품삯으로
행복하겐 못 살아도 부모봉양 극진터니
한 많은 네 청춘이 불꽃 속에 지단 말이냐
새파란 그 순정은 수줍은 그 순정은
그리운 님의 품에 하소연도 못하고소
새벽 별 바라보며 얼마나 울었더냐
남과 같이 봇 배운 게 가슴속에 한이더니
피지도 못한 사랑 재가 되어 갔단 말이냐
도난을 우려해 문을 잠그고 이 때문에 대형참사가 일어났던 것이 1993년 5월 태국 케이더 심슨 인형을 만드는 장난감 공장 화재와 매우 비슷하다. 케이더 역시 도난을 '우려'해 문을 바깥에서 잠궜다. 화재가 발생했지만 노동자는 도망갈 수 없었다. 결국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중 174명이 여성노동자였다. 이 사건은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제가 열리는 계기였다.
5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몰랐다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불꽃 속에 재가 된 62명 여성노동자의 명복을 50년이 지난 뒤에야 빌어본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