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독립

2012.03.04 03:07

조회 수:5635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시위 관련자를 재판하는 판사에게 전화를 했느니, 재판에 개입했느니 하면서 사그라지던 불꽃이 다시 일 조짐을 보이면서 그 촛농이 대법원장에게까지 튈 분위기다.

하필이면 대법관 임명을 전후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촛불시위 관련자 유죄판결, 조중동 광고중단운동자 유죄판결, 미네르바 구속 등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안정화시키는 판단들을 계속했다.

대법원에서는 재빨리 진상조사단을 꾸려서 법원장의 재판개입 의혹을 조사한다고 하나, 한편에서는 사건 진행에 따라 사법파동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사법파동은 유신 바로 직전인 1971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가 판사들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서울지법 판사 2명이 증인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도로 출장을 갔는데 판사들의 여비와 체제비를 변호사가 부담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판사들이 출장을 가는 경우 법원에서는 터무니 없는 여비만을 지원했기 때문에 판사들은 자비를 털어 출장을 가고 사건을 조사했다고 한다. 월급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자기 돈으로 사건조사를 해야 하니 변호사가 조사를 요청해도 아마 대부분의 판사들은 출장조사를 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재판에 유리한 증거를 내야 하는 변호사로서는 판사들에게 출장비를 지원해서라도 판사가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판사가 사건 관련자로부터 금품을 제공받는 것은 지금 시각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지금은 판사가 직접 출장까지 가서 사건을 조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증인을 법원으로 오게 한다. 증인 여비는 물론 변호사, 즉 사건 당사자가 부담한다.

한편 1971년 사법파동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된 판사는 시국 공안 사범에 대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검찰에 미운 털이 박혀 있었다. 그때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고,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 전원이 재판에 압력을 가하려는 검찰의 행태에 항의하여 집단사표를 냈다. 그러나 검찰은 다시 영장을 청구했고, 이에 전국 판사의 3분의 1이 넘는 153명이 사표를 냈다.

사법부는 가끔씩 불거지는 전관예우 말고는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사법부도 연공서열, 권위주의, 폐쇄적 조직분위기 등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 재판개입사건도 사실상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근무평정과 승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인사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파악하고 이것을 고치기란 매우 어렵다. 그동안 사법부는 여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있었고 자신에 대한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연초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법관을 평가하겠다고 하자, 사법부는 어떻게 사건 당사자가 법관을 평가하냐며 펄쩍 뛰었고 평가결과도 애써 무시했다.

헌법은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한편, 법관의 신분도 직접 보장하고 있다. 선거가 아닌 시험을 통해 선발된 법관의 신분을 이처럼 보장하는 이유는 우리 국민과 헌법이 법관과 사법부에 신뢰를 보내고 깨끗하고 올바른 재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사법부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법원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변화, 성장해 왔다. 그러나 높아만 가는 국민의 기대에 스스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간섭과 압력을 받아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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