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3:06
고바야시 시노부씨(62세). 아내의 과로사를 산재로 인정받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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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예상했던 대로 이 자리에는 변호사와 의사도 있지만, 활동가들과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또 누가 있을까. 자료를 뒤적거리자 또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내가 앉은 줄 맨 끝에서 밝게 웃으시면서 말씀을 하시던 60세 정도의 여성분이다. 그런데, 이 분은 공무원이던 아들을 잃으셨구나...
자식을 과로자살로 잃었지만, 슬픔을 딛고 승리한 어머니
2002년 한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다가 자살하였다. 부모는 자식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자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방공무원재해보상기금 니이가따현 심사지부에서는 2006년에 공무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고인의 성격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이 심사하여 유족의 주장을 전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1월 26일, 사고발생으로부터 6년 반이 흘러서 간신히 공무재해로 인정받았다. 이번 판결은 인과적 흐름을 인정하는 새로운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판결의 중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판결요지 |
업무의 과중성을 인정하여 성격적 요인을 부정하다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 부정하다 고강도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인정되다. |
어느 덧 회의는 마무리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얘기가 여러번 나오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얼마 전에도 과로사로 인해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적 있다. 미망인이 산재신청을 해서 승소를 한 것이 2008년의 일이다. 그런데 토론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는 듯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도요타 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도요타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지원하는 이들의 답답함이 오죽하겠는가. 우리도 한국타이어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답답한가. 그런데, 일본의 활동가들은 노동조합과의 공동 활동은 거의 없을테니, 목마름과 답답함이 더욱 클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나라의 노동자 건강권 운동은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 대책투쟁,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때 부터 보건의료전문가와 사회의 양심적 운동세력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외곽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안전보건 운동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판단하에,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안전보건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안전보건단체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안전보건담당자로 채용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노동조합의 일상활동으로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의 의미를 적극 해석하고, 현장 활동 방안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왔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많은 부러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한국이 갖지 못한 모습에 감동하고 부러워하게 되었다. 일본의 장점은 개개인의 자발성에 근거한 다양하고 풍부한 노력에 있다. 조직이 움직이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의미를 깨닫고 자발적으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모습은 활기차보였다. 사명감이 충만하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운동 모습이 나는 너무 부러웠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활동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을 놓고, 젊은 활동가들이 없어서 대가 끊길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일본을 그렇게 걱정하는 것은 주제가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시작한 소중한 전문가 선배들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소에서 자동차회사에서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며 일어섰던 현장의 선배들은 어디에 있을까? 사명감에 충만했으며, 보람있는 인생에 즐거워했던 우리의 선배들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의 젊음은 대가 끊긴 젊음이 아닐까?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바로 오늘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는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이 판에서 자신의 전망을 발견하고 보람을 느끼며 후배들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일본의 활동가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노동조합도 조직율이 겨우 10 %에 불과하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에는 노동안전보건담당자가 1명 임명되어 있다. 금속노조에는 4명이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상근하지만, 다른 조직들은 1명이 있거나 또는 아예 없다. 일본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위안을 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다. 영국의 민주노총인 TUC에서는 1년에 1만명의 활동가들에게 안전보건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영국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 중에는 20-30년간 안전보건활동을 한 사람들도 많고, 노동조합은 강의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서 신규활동가들이 계속 자라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산별노조로서 지역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챙기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그들에 비한다면 한국의 노동조합 안전보건 활동은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나는 천성적으로 낙천가이다. 비록 마음속으로 이렇게 좌절하더라도, 금방 딴 생각을 갖는다. 하루하루 앞에 놓인 일들에 묻혀있을 것이 아니라 30년 후를 바라보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금새 마음을 고쳐먹는다. 일본에서 만난 피해자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활동가들이 내게 준 소중한 고민에 대해 나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듯하다. 기계적으로 일본을 따라하거나 영국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길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의 길에서 만나온 멋진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미 나에게는 많은 것이 있다.
다음 글로 일본방문기는 마무리하고자 한다. 일본의 평화운동가들 집회에 참석한 경험, 그리고 일본의 ‘녹색병원’을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