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SK에너지 연구소 건설현장에서 ‘소리가 나니 안전에 유의하라’고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말했을 때, 이미 안전보건은 물 건너간 것입니다. 지난 15일 발생된 산재참사는 너무도 끔찍한 살인입니다. 현장에서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시공회사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하여 작업을 중지시키고 위험을 진단한 후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겠습니까? 절대로 사람이 죽었을리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살인입니다.
산업재해를 놓고서 회사에게 살인 책임을 묻는 것이 이상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우리가 이상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 산재사망을 발생시킨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산재사망을 기업의 살인으로 봅니다. 후진국에서는 산재사망을 하늘의 탓이나 노동자 실수로 보지만, 선진국에서는 안전한 기업을 만들지 못한 사업주 책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법만 지켜도 노동자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주가 법과 상식을 무시한 채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모는 현장에서 산재사망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기업주의 비윤리적 안전무시 경영태도에 민감하게 대처해야만, 기업이 안전을 말로만 떠들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재사망을 기업의 살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설마, 진짜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누가 알았겠냐구요? 사람 목숨을 앞에 놓고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되지요. 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설마가 사람잡는’ 일이 비일비재 하기 때문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설마’하며 넘어갈 것을 ‘만약에 모르니까’ 하면서 단도리하는 법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법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재해의 경험 속에서 ‘최소한 필요한 조치’를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를 놓고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최소한의 의무도 지키지 않은 몰상식한 기업의 ‘살인행위’로 보는 것이 옳을까요?
경찰과 노동부의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없습니다. 2008년 1월에 발생한 이천산재참사로 40명의 목숨이 스러졌건만, 코리아냉동2000의 사업주는 겨우 벌금 2000만원 받고 풀려났으니까요. 40명이 죽었을 때 2000만원인데, 판교에서 3명 죽었다고 어디 눈이나 깜짝 하겠습니까? 물론, 이건 노동부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법원이 기업주들에게는 지나치게 온정을 베풀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구속하고 실형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큰 기대는 없습니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떠들고 다녀야겠습니다. 판교의 산재사망은 살인이었다고 말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아 산재사망이 발생하였으니, 살인죄로 처벌하라고 떠들고 다녀야합니다. 대충 떠들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이 힘을 합쳐서 기업의 살인을 제대로 처벌하라고 외치며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양심과 상식에게 기업의 살인에 눈감지 말자고 호소해야 합니다. 기업살인법이건 산재사망 기업주 처벌 특별법이건 어떤 것이건 좋습니다.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없어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분들 중에서 부디 더 이상 돌아가시는 분이 없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안 에스케이케미칼 연구소 신축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흙 속에 파묻힌 일꾼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11명이 죽거나 다쳤다. ⓒ 한겨레신문 성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