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2:37
이 기사 필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이수정 입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만 ○○세 까지만 응모가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KBS가 올 해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응시연령제한 제도를 폐지했다”
“9급 공무원 응시연령 제한은 차별”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차별의 한 요소다. 얼마 전 ○○마트에서 “만 20세~45세”로 나이를 제한한 계산직 모집 광고를 봤다. 골프장 경기도우미는 “만 42세가 정년”이라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굴지의 대기업’, ‘재벌권력’으로 군림하고, 스스로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고 자신하는 S기업의 사장단 인사 기준도 “1948년 이후에 태어난 만 60세 미만”이었다. 고용관계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발생하는 나이차별은 노동자의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막거나 경력단절 등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고용관계에서 나이 차별을 경계하고 금지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우리나라에는 2009. 3. 22.부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연령차별금지법)로 기업에서 채용, 임금, 승진, 해고 등 고용과 관련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법에서 사용하는 고령자는 ‘55세 이상인 자’를 말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7년 조사한 노사 연령차별 인식 ⓒ 한국노동연구원
올 3월부터 연령차별금지법 시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제4조의4 (모집/채용 등에서의 연령차별 금지) ① 사업주는 다음 각 호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모집/채용
2.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3. 교육/훈련
4. 배치/전보/승진
5. 퇴직/해고
② 제1항을 적용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하여 특정 연령집단에 특히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연령차별로 본다.
2007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자료를 보면 노동자와 기업체 인사담당자 사이에 연령대별로 나이차별에 인식차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인사담당자는 92.8%가 ‘나이차별이 없다’고 답한 반면 노동자의 63.2%는 ‘나이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50대 이상 연령으로 갈수록 차별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증가했다. 고령자일수록 배치, 승진, 업무 분장 등에서 나이차별을 많이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고령자고용촉진법」 법명을 연령차별금지법으로 개정하면서 모집?채용 뿐 아니라 임금, 복리후생, 승진, 교육 등에서 나이차별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은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령 노동자들의 주요 일터 중 하나인 감시단속업무 경비. 노동부는 최근 이들의 임금을 더 감액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 cfs8.tistory.com
법 취지 무력화하는 최저임금법?기간제법
그러나 현행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4조에서는 “만55세 이상의 고령자”는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노동자나 단시간 노동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이 법의 제정을 통해 ‘2년을 초과하여 계속 고용한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또 현 정부는 ‘60세 이상의 노동자가 동의하면 최저임금을 10% 낮추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 역시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최저임금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노동부는 “60세 이상 노인 313만 명 중 절반을 넘는 170만 명이 100만원 미만이어도 좋으니 일자리만 있으면 좋겠다”는 고령 노동자의 열망(?)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이미 ‘수습기간 3개월 이내 범위에서 10% 감액’, ‘감시단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하여 20% 감액’ 할 수 있도록 정해 아파트 경비업무를 하는 고령 노동자는 이미 이 법의 감액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알고 보면 장밋빛 차별
법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고령자의 노동능력을 폄하하거나 노동자로 인식하는데 인색하다.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임금의 경력자인 ‘고령자를 퇴출 후보 1순위’로 삼고, ‘일정 연령이 지나면 생산력을 이유로 임금을 깎아도 된다(임금피크제)’는 것에 큰 이견이 없다. ‘임금피크제’는 오히려 고령자의 고용창출과 고용안정을 위해 ‘좋은’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연령차별금지법을 추진하면서 “연령차별금지 법제화가 이뤄지면 능력 있는 고령자들이 나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밝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을까?